“론스타, 속이고 튀었다···한국 정부도 부당개입” ISDS 판정요지 살펴보니

2022.09.06 17:14 입력 2022.09.06 19:01 수정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브리핑실에서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 절차(ISDS)’ 판정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브리핑실에서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 절차(ISDS)’ 판정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법무부가 한국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10년을 끌어온 국제투자분쟁 판정요지서를 6일 공개했다. 중재판정부는 판정요지서에서 “론스타가 ‘먹고 튀었다’를 넘어 ‘속이고 튀었다’고 볼 수 있으나 한국 금융 당국 역시 부당하게 매각 승인을 보류해 양측 책임이 동일하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이날 한국 정부와 론스타간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 절차(ISDS)’ 사건 판정문을 요약해 공개했다.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판정부는 지난달 31일 판정문을 법무부에 송달했다.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억1650만달러(약 2900억원)를 배상하라고 일부 패소 판정했다.

법무부가 공개한 판정요지서에 따르면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두 차례 부당하게 미루는 바람에 외환은행 매각 가격이 떨어져 손해를 입었다’는 론스타의 주장을 절반만 인정했다. 중재판정부는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관련 형사 유죄판결 확정을 받았던 점에 비춰 보면 소위 ‘먹튀(Eat and Run)’ 비유를 더 발전시켜 ‘속이고 튀었다(Cheat and Run)’고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2011년 10월 주가조작 사건 파기환송심 유죄 판결로 론스타 측이 외환은행 대주주 지분을 더 이상 보유할 수 없게 되면서 한국 금융 당국이 외환은행 매각 가격 인하를 도모할 수 있는 여지를 줬다”고 했다.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 역시 외환은행 매각 가격을 인하하기 위해 승인 절차를 부당한 의도로 지연시켰다고 봤다. 중재판정부는 “한국 금융 당국은 매각 가격 인하가 이뤄질 때까지 승인 심사를 보류하는 ‘Wait and See’ 정책을 취했다”며 “정당한 규제 목적이 아니라 정치인들과 대중의 비판을 피하려는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가격 인하를 달성할 때까지 승인심사를 보류한 것은 금융 당국의 규제권한을 자의적이고 악의로 행사한 것”이라며 “론스타가 가격 인하를 수용한 것은 한국 금융위원회의 부적절한 가격 개입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중재판정부는 론스타가 증거로 제출한 론스타-하나금융지주간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 판정문도 판단 근거로 들었다. ICC 판정문에는 외환은행 매각 전 하나금융지주 관계자가 론스타 관계자에게 “외환은행 매각 가격을 인하하면 한국 금융위원회의 정치적 부담이 낮아질 것”이라고 언급했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 대목이 한국 정부의 ‘부당한 개입’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 것이다. 반면 소수의견은 “가격 인하 압력 행위를 한국 금융 당국에 귀속시킬 수 있는 직접 증거는 없고, 전문과 추측만으로는 국가책임 귀속을 인정할 수 없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중재판정부는 “한국 금융 당국과 론스타 모두 외환은행 매각 가격 인하에 직접적이고 중요하게 기여했다”며 론스타와 한국 정부에 절반씩 책임이 있다고 결론내렸다. 그에 따라 하나금융지주와의 매각 지연 등으로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의 절반인 2억1650만달러(약 2900억원)를 한국 정부가 낼 손해배상금으로 산정했다.

법무부는 중재판정부의 판정 무효 청구와 집행정지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법무부는 한국 정부의 입장도 반영되지 않고 한국 정부가 사실관계도 다퉈보지 않은 론스타-하나금융지주간 ICC 판정문을 토대로 중재판정부가 판정한 것은 ‘절차 위반, 권한 초과’로 취소 무효 사유가 된다고 보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판정은 금융위의 부당한 개입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금융 당국이 애초 산업자본인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뒤늦게라도 따져보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했다. 송기호 변호사는 “가능성이 낮은 판정 무효 청구보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관여한 관계자들의 불법 여부를 조사해 구상권 청구 등 법적 책임을 묻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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