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본 ‘론스타 판정무효’ 가능성···“먹튀 넘어 속튀? 판정무효와 관련없다”

2022.09.12 10:31 입력 2022.09.13 09:19 수정

경향신문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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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약 2900억원을 배상하라는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중재 판정에 불복해 무효 신청을 할 지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판정이 무효될 가능성은 희박한 만큼 책임 규명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무효 판정율 1.6%…무효돼도 ‘한국 승소’ 의미 아냐

법무부는 한국 정부와 론스타간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 절차(ISDS)’ 판정 무효 신청을 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판정 무효 신청은 판정일 기준으로 120일까지여서 한국 정부는 올해 말까지 판정 무효를 신청할 수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끝까지 다퉈 볼 만하다”고 자신했지만 ISDS 중재 무효 취소가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영국 국제비교법연구소(BIICL)의 2021년 ICSID 판정 무효 보고서에 따르면 ICISD 판정 총 355건 중 전부 무효 판정을 받은 사례는 6건(1.6%)에 불과하다.

전부 무효 판정이 ‘한국 정부에 배상 책임이 없다’는 승소 판정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무효 판정이 되면 새 중재판정부가 구성돼 본안을 재판단하는 절차가 개시된다. 판정 무효 절차는 중재판정부의 판정 자체를 다시 판단하는 절차가 아니다. 중재판정부의 판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었는지 따진다.

재판소가 적절히 구성되지 않았을 때, 재판소가 명백히 권한을 이탈했을 때, 재판소의 재판관에 독직(부정 행위)이 있을 때, 기본적인 심리 규칙으로부터 중대한 이탈이 있을 때, 판정서에 근거가 되는 이유를 명시하지 않았을 때 등 5가지 사유에 해당해야 판정이 무효가 된다. 한국 정부가 공개한 판정요지서에는 “론스타가 ‘먹고 튀었다’를 넘어 ‘속이고 튀었다’”는 등의 론스타의 책임을 거론하는 소수 의견이 담겼지만 이것이 판정을 무효화하는 근거는 될 수 없다.

전문가들 “무효될 가능성 희박”

전문가들은 판정이 무효가 될 가능성은 희박한다고 전망한다. ISDS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12일 “법무부가 공개한 판정요지만을 놓고 봤을 때도 5가지 무효 신청 사유에 해당되는 게 없다”며 “이대로라면 판정 무효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법무부는 중재판정부가 론스타-하나금융지주간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 판정문을 판단 근거로 삼은 것을 문제 삼겠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중재판정부가 ICC 판정문만을 상당한 근거로 삼아 판정한 것이 아니라면 절차적 하자를 주장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ICC 판정문에 자신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이미 심리 과정에서 ICC 판정문에 대한 입장을 피력해 판정에 반영이 됐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ICC와 같이 다른 기관의 판단을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판정에 반영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당초 한국 정부가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인 론스타가 부적법 투자자여서 제소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지 않았다는 점을 패소의 근본적인 요인으로 꼽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2015년과 2018년 중재판정부에 구두 변론 참석을 신청하고 이같은 취지의 변론 요지를 제출했다. 중재판정부는 론스타와 법무부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민변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업자본인 론스타의 외화은행 인수 자체가 위법하므로 분쟁을 제기할 권한도 없다는 주장을 했다면 배상 판정을 피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한국 정부가 이를 포기했다”고 했다.

“관여자들 배임 혐의 공소시효, 지나가버릴 수도”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한국 정부가 가능성이 희박한 판정 무효 절차에 주력하기보다 책임 소재를 가려 재정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판정에서 금융 당국의 부당한 개입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에 관여자들을 배임 혐의로 고발하고 구상권도 청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효 판정 절차가 시작되면 2012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관여한 관계자들의 배임 혐의 공소시효(10년)가 지나가 버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 변호사는 “하나금융지주는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6000억원 가량 싸게 사 이득을 봤지만, 과정상 벌어진 문제에 대해선 한국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책임지게 됐다”며 “진상 규명을 통해 불법 행위 관여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법무부는 “2019년 말 기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통계상 취소신청 판단이 이루어진 사건 중 전부 또는 일부 인용 사건은 18건, 기각 사건은 61건, 인용율은 약 22.8%”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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