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에 세금 물릴 수 있을까…로봇세가 인간을 구할 수 있을까

2018.10.20 06:00 입력 2018.10.21 09:46 수정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첸나이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인도 공장에서 협동로봇들이 차체를 조립하고 있다. 이 공장에는 590대의 협동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일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공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첸나이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인도 공장에서 협동로봇들이 차체를 조립하고 있다. 이 공장에는 590대의 협동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일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공

지금까지의 산업혁명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왔다. 하지만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노동자들의 시선은 불안하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의 예상대로 2029년 인공지능이 인간 수준의 인지능력을 갖게 된다면 그간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소멸에서 비교적 비켜나 있던 전문직 중산층도 안전하지 않다.

이에 사회적 충격을 우려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술자들이 ‘로봇세’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다. 그는 지난해 2월 한 인터뷰에서 자동화 확산을 지연시키기 위해 로봇을 활용하는 기업에 세금을 매기자고 주장했다. 로봇이 사람과 동일한 일을 한다면 비슷한 수준의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로봇이라는 새로운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이 부를 축적하는 반면, 노동력밖에 갖지 못한 노동자들은 대량실업에 직면하고, 정치적으로도 극단적인 선택이 횡행하는 것을 막기 위한 사전 안전장치다. 소비 감소 같은 시장 충격을 완화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공포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편으로도 꼽힌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을 통해 기존의 일부 일자리는 사라지는 대신 새로운 일자리가 더 많이 생겨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10~20년이 문제다. 3차 산업혁명이 컨베이어벨트에 맞춰 일하는 방식의 ‘포드주의’에 바탕을 뒀다면, 4차 산업혁명은 로봇과 로봇, 로봇과 인간이 맞춰 일하는 방식으로 노동현장의 규칙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존 일자리에 나타날 큰 변화는 불가피하다. 매킨지 컨설팅에 따르면 전 세계 일자리의 14%에 해당하는 최대 3억7500만명은 완전히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자동차의 등장에 따라 실직한 마부가 곧바로 택시운전사로 취업하지 못했던 것처럼, 산업전환기 노동자들은 어려움에 놓이게 된다. ‘기본수당’에 대한 논의가 과거에 비해 점차 힘을 받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높아지는 4차 산업혁명의 파고 속에 정부가 ‘뗏목’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로봇세를 둘러싼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다. 인간의 일자리에 영향을 미치는 로봇의 형태를 어떻게 정의할지, 그 영향을 어떻게 계량화할지 등 복잡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반대론자들은 로봇세가 중간재에 대한 과세인 데다 로봇산업에 대한 부당한 규제가 전체 산업의 생산혁신을 방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 세계 로봇시장 경쟁이 가열되는 상황을 들어 오히려 국가경쟁력의 후퇴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노동, 자본, 기술, 정치 등이 복잡하게 얽힌 ‘로봇세’는 인간과 기계, 국가와 시민의 관계에서도 여러 화두를 던지는 복잡한 주제다. 인류 사상 가본 적 없는 길, 어떻게 갈 것인지 이제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할 때다.

“로봇세 거둬 기본소득 지급” 등
노동자의 안전망 필요성 대두

가장 먼저 논의 나선 유럽의회
‘전자인간’ 지위 부여 제안으로
향후 ‘로봇세’ 도입 단초 남겨

한국선 8월 입법조사처 첫발
“한시적 지방세로 신설할 만”

휴머노이드(인체형 로봇) 기술로는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최근 업그레이드된 ‘아틀라스’의 동영상을 공개했다. 높게 쌓인 박스 같은 지형지물을 이용해 액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파쿠르(parcours)’를 뛰는 장면이었다. 미국의 과학자 게리 브라데스키는 2013년 아틀라스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 “새로운 종인 ‘로보 사피엔스’가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넘어지기 일쑤였던 초기 시제품은 불과 5년 만에 엄청난 속도로 발전 중이다.

이세돌 9단을 꺾은 인공지능(AI) ‘알파고’를 만든 구글의 딥마인드는 이듬해인 2017년 새 인공지능 ‘알파제로’를 내놨다. ‘알파고’는 이 AI와 100번 대결해 모두 패했다. 기존 인간의 기보를 학습한 ‘알파고’와 달리 ‘알파제로’는 바둑의 기본 원칙과 목적만 가르친 뒤 기계가 스스로 깨우치며 강화학습을 하는 방식이었다. ‘알파제로’의 학습력은 체스의 기본 원칙을 배운 지 4시간 만에 체스 전문 인공지능 ‘스톡피시 8’을 꺾을 정도다. 잠을 자지도, 음식을 먹지도, 쉴 필요도 없는 기계의 놀라운 학습속도를 보여주는 사례다.

■ 로봇세와 기본소득

로봇과 인공지능의 능력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공상과학 속 사회는 가까운 미래로 다가섰다. 20세기의 사회계약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기업은 노동자를 고용해 이윤을 내고, 노동자는 일자리로 생계를 유지해왔다면, 21세기에는 기업이 노동자 없이 로봇을 고용해 이윤을 내고, 노동자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기술 발전으로 주요 15개국에서만 2020년까지 5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2016년 예측했다. 실업급여 등 정부의 사회보장 재원이 무한하지 않은 데다 시장의 선순환도 붕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회적 배경 속에 ‘로봇세’와 ‘기본소득’을 비롯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산업연구원(KIET)의 최희선 연구원은 특히 ‘대졸자와 중산층의 공포’를 이유로 지목했다. “소득분배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저임금 노동이 확산되면서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중산층의 몰락이 빈번해진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로봇·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일자리 소멸이 가시화”됐다는 것이다. 특히 회계, 법, 의료, 교육 분야에서도 인공지능 도입 가능성이 커지면서 전문직도 타격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최 연구원은 “이들의 공포가 결집되면서 로봇에 대한 정치·사회적 의미가 본격적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권자들의 불안이 커지면서 각국의 고민도 시작됐다. 가장 먼저 나선 건 유럽의회다. ‘로봇의 등장으로 대량실업이 발생하면 사회안전망 유지에 상당한 비용이 들어갈 것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세금을 만들고 모든 이들에게는 기본소득을 제공하자’는 보고서 초안을 2015년 내놨다. ‘로봇세’를 거둬 ‘기본소득’을 지급, 산업혁명 시대의 대량실업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지난해 최종 결의에서는 빠졌다. 다만 로봇에 ‘전자인간’(electronic person)의 지위를 부여하자는 제안으로 향후 로봇세 도입의 단초를 남겼다. 미국도 2016년 대통령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인공지능의 발달이 인간에게 여러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논의가 싹트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8월 ‘2018 국정감사 정책자료’를 통해 로봇세 도입 방안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취득세’ 또는 ‘재산세’의 과세대상에 로봇을 포함하거나 새로운 세목으로 로봇세를 신설하는 것이다. 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로봇세를 한시적인 지방세로 신설하고, 인간의 노동이 로봇에 의해 대체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사람에게 로봇세 수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본소득’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안전망 비용으로 로봇세를 쓰자는 것이다.

[커버스토리]로봇에 세금 물릴 수 있을까…로봇세가 인간을 구할 수 있을까

■ 로봇세, 어떻게 물릴 것인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홍범교 연구원은 미국의 미래학자 레이 커츠와일이 전망한 미래 로봇의 발달 3단계를 바탕으로 로봇세 부과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1단계는 지금처럼 인공지능의 능력이 인간에 아직 미치지 못할 때다. 그렇더라도 인공지능이 생산성 향상을 위한 설비로 도입되면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나오기 때문에 과세가 가능하다. 기본 방향은 인간 노동자 대신 로봇으로 이익을 내는 ‘자본에 대한 세제혜택을 줄이는 것’이다. 사람을 고용했을 때 소요됐을 비용과 사회보장부담금 등의 금액을 귀속소득으로 보고, 로봇의 소유자나 사용자에게 그만큼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는 이익에 비해 인간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쓰는 비용이 매우 적은 기업에 대해 추가로 세금을 더 매기는 방법도 있다. 사람을 많이 고용하라며 ‘당근책’으로 근로소득증대세제, 고용증대세제를 쓸 수도 있다.

2단계는 인공지능이 사람의 생각하는 능력과 같은 수준을 갖출 때다. 기계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기계에 지능이 있는지 판별하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때다. 전문가들마다 그 시점에 대한 의견은 다른데, 커츠와일은 이 시점을 2029년으로 전망하고 있다. 홍 연구원은 이러한 수준의 로봇에 대해서는 ‘전자인간’으로서 인격을 부여할 수 있다고 본다. 로봇이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법인이 인위적인 인격이지만 납세의무를 지고 있듯이, 로봇에 대하여 인격을 부여함으로써 로봇을 조세체계 내의 납세의무자로 포함시키는 것”이다.

3단계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단계다. 커츠와일은 이 같은 ‘특이점’(singularity)이 2045년에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사실 이쯤 되면 로봇이 세금을 내려고 할지는 의문이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로봇 3원칙’을 통해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된다”를 제1 명제로 앞세웠지만, 향후 인공지능이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 학습할지 현재로서는 예측 불가능하다. 홍 연구원은 “ ‘나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왜 인간보다 뛰어난 내가 인간을 위하여 일을 하는가’ ‘인간과 달리 노화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내가 왜 세금과 사회보장부담금을 부담해야 하는가’ 하는 독립적인 생각을 로봇이 하게 될 때 지금과는 다른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커버스토리]로봇에 세금 물릴 수 있을까…로봇세가 인간을 구할 수 있을까

■ 로봇세를 둘러싼 논쟁

‘로봇세’를 둘러싼 가장 까다로운 지점은 과세 가능한 로봇의 형태와 노동시장에의 영향을 어떻게 계량화하느냐는 것이다. 지난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로봇세’ 논의를 띄우자 이를 반박한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의 논리가 대표적인 예다.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경제학자인 그는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로봇이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같은 식이라면 공항의 무인발권기, 문서 능률을 향상시키는 워드프로세서, 모바일뱅킹 기술, 자율주행차, 나아가 질병을 막는 백신도 일자리를 빼앗느냐는 것이다. 그는 “적은 노동 투입으로 더 나은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많은 종류의 혁신이 있다”며 “인간의 노동력을 절감하는 기술과 노동 효율을 높이는 활동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홍범교 연구원은 하지만 이 같은 논리에 대해 “효율성이나 생산성만을 따진다면 환경세도 불합리한 세금이고, 자원의 고갈과 환경 영향을 고려해 원유나 광물의 채굴에 부과하는 자원세도 마찬가지”라고 반박한다. 여타 세금들처럼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의 과세는 충분히 타당하다는 것이다.

다만 과세대상이 되는 로봇의 범위는 뚜렷하지 않다. ‘주민’ ‘토지’ ‘건물’ 같은 기존의 징세대상과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나 <A.I.>에 나오는 인조인간처럼 형태가 확실한 인공지능 로봇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적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개발되는 많은 로봇이 휴머노이드는 아니다. 국제표준기구(ISO)는 로봇을 “상당한 독립성을 갖고, 주어진 환경하에서 움직이며, 의도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둘 이상의 축을 가진 프로그램 가능한 작동 기제”라고 다소 모호하게 정의하고 있다. 인간의 노동을 로봇이 얼마나 대체했는가를 계산하는 것도 쉽지 않다. 꼭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만이 인간의 일자리를 잠식하는 것도 아니다. 로봇을 생산에 필요한 도구로 본다면 로봇에 대해 과세를 하는 것은 이중과세라 불공평하다는 지적도 있다.

‘로봇세’와 한 쌍인 ‘기본소득’에 대한 심리적 저항도 여전히 큰 장애다. 스위스에서는 2016년 6월 기본소득안에 대해 국민투표가 실시됐으나 부결된 바 있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사회당 대선 후보는 기본소득제 도입을 대표공약으로 내걸었으나 낙선했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는 관념이 여전히 공고하다. 하지만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봇의 부상>을 쓴 미래학자 마틴 포드는 기본소득을 보장하면 더 많은 기업가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펠츠만 효과’, 즉 안전할수록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중산층으로 올라서기 위해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 시작한다”는 얘기다.

로봇세 관련 논의는 이제 겨우 첫발을 뗐다. 이 논의는 실제로 세금을 어떻게 부과하느냐보다는 로봇과 우리 노동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로봇세를 논하기 전에 기술과 인간의 관계, 기술의 현실과 한계 등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이 모여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사회 시스템 전체를 다시 우리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미래에 맞게 고민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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