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사용률 1위 한국…“자동화로 일자리 25% 사라질 10년이 변혁기”

2018.10.20 06:00

로봇, 인간의 일자리 뺏을까

독일 안스바흐에 위치한 아디다스의 100% 자동화 공장인 ‘스마트 팩토리’에서 로봇이 신발 제조 작업을 하고 있다. 아디다스 제공

독일 안스바흐에 위치한 아디다스의 100% 자동화 공장인 ‘스마트 팩토리’에서 로봇이 신발 제조 작업을 하고 있다. 아디다스 제공

기존 공장서 600명이 하던 작업
‘스마트 공장’선 160여명이면 돼

로봇과 노동시장 관련 연구 결과
“단기적 고용 증가 둔화 불가피”
전 세계 최대 8억명 실직 가능성
9억명 가까운 새 일자리도 창출

문제는 변혁기 실직하는 노동자
로봇이 바꿀 시스템 연구 절실


스포츠용품기업 아디다스는 인건비가 싼 해외로 생산공장을 이전한 지 23년 만인 2015년 독일 안스바흐로 복귀했다. 이른바 ‘리쇼어링’이다. 연간 50만켤레의 운동화를 생산하는 이 공장의 고용 인력은 주로 기계 기술자 위주의 160여명에 불과하다. 100% 로봇 자동화 공정을 갖추고 개인 맞춤형 상품을 3D 프린터로 대규모 생산할 수 있는 ‘스마트 팩토리’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에 ‘오프쇼어링’한 비슷한 규모의 신발공장에서 약 500~600명의 단순 노동자들이 생산에 60일, 운송에 60일 걸렸던 상품 제조·판매가 이곳에서는 며칠 만에 가능하다.

이처럼 인간 노동자가 적게 필요한 ‘스마트혁명’은 제조·물류 업계에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인도 첸나이에 스마트공장을 운영 중이다. 590대의 협동로봇이 일하는 이곳에서는 30초마다 한 대씩 완성차가 출고된다. 온라인 쇼핑이 급성장하고 빠른 배송이 선호되면서 물류 환경도 ‘스마트’하게 재편 중이다. 구글, 아마존, DHL 등 글로벌 물류기업들이 로봇을 확대 도입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과 자율주행 기술을 결합한 로봇들은 창고에서 물건을 인지해 픽업하거나 화물들을 상·하역하면서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니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제조업 노동자 1만명당 로봇 수를 말하는 ‘로봇밀집도’에서 한국은 531로 세계 1위다(2015년 기준). 세계평균(69)을 크게 웃도는 것은 물론이고 2위 싱가포르(398)나 3위 일본(305)과도 차이가 크다. 한국은 세계 로봇시장에서도 중국·인도를 이은 아시아의 큰손으로 꼽힌다.

로봇의 확대는 불가피한 미래다. 미래학자 마틴 포드는 “합리적인 기업가라면 인력을 절감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할 경우 거의 예외 없이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고 저서 <로봇의 부상>에서 지적한다. 기업주가 관리비용과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로봇은 그런 점에서 편리하다. 자동화가 가속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의 힘”이라는 것이다. 21세기, 노동시장의 룰이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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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의 도입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로봇과 경쟁관계에 놓인 노동자들은 일자리도 임금도 줄어든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경제학자 대런 아세모글루가 1990~2007년 산업용 로봇이 미국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더니 노동자 1000명당 1대의 로봇이 고용률을 0.18~0.34%포인트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 36만~37만개의 일자리다. 임금도 0.2~0.5%포인트 깎였다. 그는 로봇의 보급이 빠르게 진행되며 2025년에는 근로자 1000명당 로봇수가 5.25대로 늘어나게 되는데 이 경우 고용은 0.94~1.76%포인트, 임금 성장률은 1.3~2.6%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대부분의 연구에서 단기적인 일자리 감소는 공통된 결론이다. 칼 프레이 옥스퍼드대 교수의 2013년 연구에 따르면 유럽 노동시장에서는 텔레마케터, 도서관 사서, 회계사 및 택시기사 등 현재 직업의 47%가 20년 이내에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호주경제개발위원회(CEDA)는 호주 노동시장의 39.6%(약 500만명)가 수십년 내 컴퓨터에 의해 대체될 것이고, 그중 18.4%는 업무에서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사실 모든 혁신은 ‘실직’이라는 부산물을 만든다. 자동차와 택시가 나오면 마부가 실직하고, 세탁기가 보급되면 세탁부가 실직하고,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되면 필름 공장이 문을 닫는다. 그리고 사라지는 일자리 수를 능가하는 새로운 일자리가 나온다는 게 정설이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동화로 생산성이 향상되면 생산에는 적은 인력이 필요하지만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기 때문에 새로운 수요가 창출된다”며 “예로 30~40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모든 직업이 컴퓨터의 영향을 받았지만, 과거와 현재의 직업을 비교해보면 사라진 직업은 1% 미만이다. 오히려 새로 생긴 직업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컨설팅업체 매킨지가 지난해 11월에 일자리의 미래와 관련해 내놓은 보고서도 맥락이 같다. “자동화되는 속도에 따라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최대 8억명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보다 더 많은 최대 8억900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창출될 것”으로 예측했다. 매킨지의 예상에 따르면 한국은 2030년까지 전체 일자리의 25~26%가 자동화로 사라지게 될 운명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백종현 한국포스트휴먼학회장(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은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여겨온 ‘창의성’도 AI의 발달에 따라 더 이상 인간만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아주 많은 것을 기억해서 적절히 조합하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 음악 같은 예술 분야도 일정한 규칙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로봇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드니 브룩스 전 MIT 교수는 AI와 로봇의 위협이 과장됐다고 지적한다. 그는 “컴퓨터가 사람 수준의 인지능력을 갖고 느낄 수 있기까지는 가야 할 길이 너무 멀다. 그렇게 되려면 500년은 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AI가 특정 업무 수행은 잘할 수 있지만 사람처럼 이것저것 모두 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45년 기계의 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온다는 건 소설 같은 얘기”라는 것이다.

대신 로봇이 ‘지저분하고, 위험하고, 지루한’으로 의미가 바뀌는 3D(dirty, dangerous, dull) 노동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많다. 예로 수도꼭지를 만드는 국내 한 중소기업의 경우 도금과 연마 작업에 로봇을 도입해 자동화했다. 사람이 수도꼭지를 도금액에 담그는 작업과정에서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위험을 줄이고, 제품을 연마하는 지루한 작업도 협동로봇이 대신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처럼 위험한 사고 현장에 사람 대신 로봇을 투입하는 것도 미래 로봇의 활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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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 간극 더 커질 듯

문제는 이 같은 변혁기에 실직하는 노동자들의 미래다. 매킨지는 보고서에서 전 세계 일자리의 14%에 해당하는 최대 3억7500만명은 완전히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던 제조업 부문은 공장 이전과 기술 발전으로 타격을 입은 데다 정보기술(IT) 부문은 일자리 창출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설상가상이라고 할 수 있다.

허 선임연구위원은 “디지털로의 이행기에는 고용 증가가 둔화되는데, 재능 있는 소수의 인재가 부유해질 기회를 잡는 것과 달리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없다”면서 “전통산업은 예전만 못하고, 새로운 산업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도적 불확실성이 크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선진국의 모델을 벤치마킹해 산업 성장이 가능했다면 지금은 예전의 방식으로는 일자리도 안 생기고 소득도 올라가지 않는다. 노상헌 서울시립대 교수는 향후 생산과 유통을 인공지능과 로봇이 맡게 되면서 고기술·고임금 노동자와 저기술·저임금 노동자 간의 격차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저출산과 소득불평등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기술은 뛰는데 사회제도와 인간 기량이 따라가지 못해 중간 계층의 소득과 일자리가 정체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부추긴다. 칼 프레이 교수는 2016년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기계에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실제 로봇이나 자동화 시스템이 어떻게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지 경험적 연구를 지금부터 차차 쌓아갈 필요가 있다”면서 “인공지능 로봇이 일자리를 없앨 것이냐, 기술이 일자리를 없앨 것이냐보다 기업들의 정책, 정부의 정책, 노사관계를 더 세심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로봇 많이 쓰나 로봇 산업은 뒤처져 핵심 부품 70~80%를 수입에 의존

갈 길 먼 한국의 로봇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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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산업로봇은 많이 쓰지만 로봇산업은 뒤처져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입로봇에만 의존하면 산업이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로봇산업은 로봇에 사용되는 부품과 소프트웨어, 반제품 모듈은 물론 로봇 완제품으로 공장의 공정시스템을 구축하는 등의 기업을 모두 포괄하는데, 한국은 이 같은 가치 사슬에 큰 공백이 존재한다.

지능형 자율공장을 뜻하는 ‘스마트 팩토리’를 구축하려면 센서 등 사물인터넷(IoT)에서 올라오는 공정 데이터와 로봇 자동화를 연결시키는 시스템 통합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은 센서는 물론 정밀 제어와 정밀 가공, 공장 단위의 시스템 통합 기술에서 미국·독일·일본 등 선진국에 크게 뒤져 있다. 모터와 감속기 등 핵심 부품의 70~80%는 수입에 의존한다.

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로봇 활용도는 세계 1~2위를 다툴 정도지만 우리 기술로 시스템을 설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정 로봇도 일본의 ‘파낙’(FANUC)에서 거의 100% 납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로봇 기업의 수는 2100개가 넘지만 97%가 중소기업이다. LG전자나 두산·한화·현대차 등 대기업들이 최근 로봇 개발을 점차 강조하고 있다. 특히 LG전자는 지난 5월 국내 산업용 로봇 제조사인 로보스타를 인수하는 등 로봇 기업 인수·제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자동차의 10분의 1 수준인 로봇시장이 2025년에 이르면 절반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전일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은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등이 구슬이라면 그걸 꿰어 4차 산업혁명을 실현시키는 것은 로봇”이라며 “로봇산업 활성화를 위해 중소기업의 판로를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로봇 보급사업을 벌여 공공 수요를 만들고 중소기업이 여기서 경험을 쌓으면 해외 진출에 유리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수출 활성화를 위해 시험인증을 상호인정하는 협약을 여러 국가와 맺을 필요도 있다.

최근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은 독일의 시험인증 기관인 ‘TUV’을 비롯해 중국·미국 등의 시험인증 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TUV와는 일부 상호인증을 하고 있어 국내에서 일부 시험을 통과하면 독일에서 동일한 시험을 받을 필요가 없어 시장 진출이 유리해진다.

성장 가능성이 큰 재활로봇의 경우 1억원 이상의 비싼 가격이 단점인데 현재 정부는 이를 의료수가에 반영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문 원장은 “국내 중소부품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건 대기업이 국내 부품을 외면하기 때문”이라며 “대·중소기업 간 상생체계도 시급히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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