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 4호기, 정비 1000일이 넘도록 메우지 못한 안전구멍

2020.03.01 21:38 입력 2020.03.01 21:43 수정

100개 넘는 구멍 발견돼 정비 시작했지만 9월까지로 또 한 차례 연장

국산화 초기 첫 한국 주도 건설 원전…부실 시공 흔적들 속속 드러나

가동중단 길어지며 한전·한수원엔 ‘악재’…재가동·안정성 의구심도

전남 영광에 있는 한빛원전 전경.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전남 영광에 있는 한빛원전 전경.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원자로를 감싸고 있는 콘크리트 격납건물에서 2017년 이후 100개 이상의 공극(구멍)이 발견됐고, 지난해는 157㎝ 깊이의 공극까지 나온 한빛 4호기 원자력발전소가 최근 정비 1000일째를 넘겼다. 상업운영을 시작한 지 25년밖에 지나지 않은 원전인데 과거 부실공사의 흔적을 땜질하느라 3년 가까이 가동을 멈춘 셈이다. 정비기간이 올해 9월까지로 한 차례 늘어났지만 지역주민들의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고 있어, 앞으로도 정상적 운영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까지도 조심스레 나온다.

1일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2017년 5월18일 계획예방정비를 시작한 한빛 4호기는 이날로 정비 1019일째를 맞았다. 원전 계획예방정비에 통상 2~3개월이 소요되는데 이미 10배 넘는 기간을 소모한 셈이다. 지난달 말 종료될 예정이었던 정비기간은 9월 말까지로 한 차례 더 연장됐다. 2018년 5월11일 계획예방정비에 돌입한 한빛 3호기도 지난달 25일 정비를 마칠 계획이었지만 5월4일까지로 3개월가량 일정이 순연됐다.

한빛 3·4호기는 원전 국산화 초기 단계에 처음으로 한국이 주도해 지은 원전이다. 현대건설이 시공사로 1990년대 초반에 공사를 시작해 각각 1995년과 1996년 준공됐다. 공사 당시부터 지역에서는 부실시공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구체적 부실은 최근에야 드러났다. 2017년에는 한빛 4호기 증기발생기 안에서 제작 당시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11㎝ 크기의 망치가 발견됐다. 공사 당시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이물질을 20년간 원전을 운영하면서도 몰랐던 것이다. 정비 과정에서 콘크리트 격납건물 문제도 발견됐다. 격납건물은 원자로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방사능이 외부로 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최후 방벽 역할을 하는 시설물이다. 그런데 한빛 4호기 정비 과정에서 격납건물 내부철판(CLP) 부식과 두께기준 미달, 콘크리트 벽 공극 등이 발견됐다. 같은 시기에 같은 공법으로 지은 한빛 3호기에서도 공극이 나왔다. 지난해 9월 기준 전국 원전 격납건물에서 발견된 공극 295개 중 한빛원전 6기에서 나온 것이 94%인 278개였고, 그중에서도 한빛 3호기(124개), 한빛 4호기(121개)에서 공극이 가장 많았다.

한빛 4호기, 정비 1000일이 넘도록 메우지 못한 안전구멍

특히 한빛 4호기에서는 주증기배관 아래쪽에 가로 331㎝, 세로 38~97㎝, 깊이 157㎝짜리 공극이 있었던 것이 지난해 7월 확인됐다. 이 공극이 나온 부분의 벽 두께는 167㎝였는데, 10㎝만 남겨두고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는 뜻이다. 콘크리트 벽 가운데에 쇠줄(텐돈)을 매설할 때 쓰이던 윤활유가 공극으로 흘러나와 벽 안쪽에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한빛 3·4호기 격납건물에 유독 문제가 많은 것은 건설 때 콘크리트 타설이 부실했고, 공기 단축을 위해 보강재를 제거하지 않고 공사를 하는 등 무리하게 설계를 변경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까지 한빛 3·4호기 보수에 들어간 돈만 586억원이다.

격납건물에 문제가 생긴다고 당장 평시 원전 안전에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자로에 문제가 발생한 것을 가정한 최악의 경우 격납건물과 내부철판이 부실하면 방사성물질이 격납건물 밖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지 못할 위험성이 커진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원자로가 괜찮으면 격납건물은 큰 의미가 없지만 사고 시를 가정했을 때는 위험도가 올라가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가동 중단이 길어지면 지난해 큰 영업손실을 본 한국전력과 한수원에는 악재다. 유진투자증권은 한빛 3·4호기 정비일정이 늘자 올해 원전 가동률 추정치를 80%에서 75%로 낮춰 잡고, 이 경우 한전의 영업이익 감소 규모는 올해 예상 영업이익의 약 18%인 6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보수가 1000일을 넘겨 길어지면서 결함이 예상보다 심각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일고 있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정비 스케줄이 더 늘어난 것으로 볼 때 기존 내부철판 두께기준이 미달되는 곳과 공극이 늘어났거나, 오랜 공극으로 방호벽 강성에 이상이 생겨 100% 보수가 불가능할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썼다. 다만 이에 대해 한수원 측은 “공극이 더 늘어난 것은 아니며 정비가 더 필요한 부분이 있어 기간이 길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9월에는 정비가 끝날 수 있을지, 정비가 끝나면 재가동이 가능할지 여부다. 한빛 3호기의 경우 한수원이 최근 설계사인 한국전력기술을 통해 공극에 대한 구조물건전성평가를 시작했지만 한빛 4호기에는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특히 한빛 4호기의 경우 정비기간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보기도 한다.

지역사회에서는 보수공사와 안전성평가에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 초기 부실공사를 막지도, 원전을 운영하면서 격납건물 결함을 확인하지도 못한 운영사와 설계사 등에 구조물건전성평가를 맡겨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빛원전 범국민대책위는 지난해 8월 국무총리실 주도로 정부 측과 지역주민이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진상조사와 안전성평가를 해야 한다고 총리실에 공식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지지부진하다. 한 지역 시민사회 관계자는 “지금까지 지역에서 그렇게 공극 문제를 많이 제기했는데도 최근까지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규제기관과 한수원이 문제를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만일 지역주민들의 우려가 불식되지 않은 채로 한빛 3·4호기 운전이 재개된다면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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