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선진국’ 독일의 대홍수 1년 뒤

도시 인프라도 재난 대응도…‘기후위기’ 고려해 뜯어고쳐야

2022.08.01 22:19 입력 2022.08.02 00:14 수정

② ‘상상 초월’ 대홍수가 주고 간 교훈

<b>1㎞ 떠내려온 다리</b>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바트 노이에나르 아르바일러 지역의 아르강가에 약 1㎞ 상류에 있던 다리가 파괴돼 떠내려와 있다.

1㎞ 떠내려온 다리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바트 노이에나르 아르바일러 지역의 아르강가에 약 1㎞ 상류에 있던 다리가 파괴돼 떠내려와 있다.

1920, 2016, 1918, 1888, 1910. 지난 7월6일 찾아간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알테나흐르 지역의 한 터널 벽에는 연도와 날짜를 표기한 동판이 높이를 달리해 붙어 있었다. 제목이 적힌 맨 위 동판을 보니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홍수 최대 수위’. 알테나흐르 지역에서 발생한 홍수의 수위를 기록해 둔 것이다.

지난해 독일을 강타한 대홍수의 기록은 아직 동판으로 제작되지 않았다. 대신 동판 위 벽에 누군가 볼펜으로 쓴 ‘2021, 여기서 5m 위’라는 글이 지난해 홍수의 규모를 알리고 있었다.

지난해 여름 독일의 홍수 대응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경고 없이 홍수를 맞닥뜨린 주민 184명이 미처 대피하지 못해서, 또 뒤늦게 대피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앞으로 계속 ‘강가’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를 걱정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지난해와 같은 재앙은 언제라도 다시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선진국’ 독일의 대홍수 1년 뒤] 도시 인프라도 재난 대응도…‘기후위기’ 고려해 뜯어고쳐야

플로리안 울리히 아흐브뤼크 소방관서 책임자

홍수 경보 계획, 우리가 익숙한 수준에만 유용
주 정부, 시스템적 대응에 모든 부분에서 실패

■ 보통 홍수에만 유의미했던 대응 시스템

“지금까지 ‘평범한’ 홍수에는 대피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홍수경보 시스템은 우리가 익숙한 홍수 수준에만 유용했습니다.”

지난 7월6일 만난 플로리안 울리히는 지난해 대홍수 상황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울리히는 당시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아흐브뤼크 지역의 소방관서 책임자였다.

울리히에게 홍수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지붕 위에 고립된 가족 중 엄마와 딸은 기력이 다해 떠내려가고 아빠만 구조한 사례도 있었다. 울리히는 “주민들은 말 그대로 ‘물에 휩쓸려’ 내려갔다”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참담했다”고 말했다. 울리히는 홍수 발생 3일 전에 상위 소방관서로부터 ‘홍수를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홍수의 수준을 예상할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울리히는 “1년에 이런 메시지는 두 번 정도 받는다. 이례적인 일은 아니었다”며 “대홍수가 올 거라는 경고는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일반적인 홍수에 대비했다”고 말했다.

2017년 12월 바뀐 알테나흐르 지역의 홍수 대응 시스템은 마을 전체에 최대 3.7m 수위의 홍수가 일어난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졌다. 대규모 대피를 위한 절차는 없었다. 울리히는 “주 정부가 시스템적 대응에 완전히, 모든 수준에서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독일에서 재해와 관련한 대응은 주(연방주)의 홍수통제센터가 맡는다. 기상청에서 받은 강수량 데이터와 예보를 바탕으로 재난경보를 발령하고 대피 등을 책임진다.

지난해 홍수는 지역의 인터넷, 통신, 전기, 상하수도 등 대부분의 인프라를 파괴했다. 관측장비까지 파괴돼 모니터링이 어려웠다. 긴급재난 문자는 인터넷과 통신이 끊긴 상태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라디오 방송도 디지털 중심으로 바뀐 탓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알람이 제대로 송신됐더라도 주민들이 대피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코넬리아 바이간트 아르바일러시 시장은 “독일 사람들은 매우 개인적이라서 당국이 설득하기 어렵다”며 “만약 그때 우리가 9m 수위의 홍수가 온다는 경보를 보냈다면 사람들이 이걸 믿지 않고 장난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마을이 반응할 시간도 없이 한 시간에 2m씩 수위가 올랐다”며 “더욱이 홍수에 반응할 방법도 없었고, 경보를 낼 시간도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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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테나흐르 지역 주민 마르크 크로이츠버그

같은 위치에 집을 다시 지어도 안전할까 고민
평생 살아온 곳이지만 옮길 수 있다면 떠날 것

■ 무너진 지역을 기후위기 관점에서 쌓기

“흠…, 솔직히 아니에요.”

홍수 피해 지역인 알테나흐르에 사는 마르크 크로이츠버그는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은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크로이츠버그는 알테나흐르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왔다. 마땅한 곳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는 “옮길 수 있다면 옮기고 싶다”고 말했다.

망가진 집을 복구해 계속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은 “같은 위치에 집을 다시 지어도 될까”라는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난방 방식’을 바꾸려는 주민들도 있다. 홍수로 각 건물 지하실에 있던 난방유가 유출되면서 복구하기 힘든 피해를 본 곳도 많기 때문이다. 일부 피해 지역에서는 기후위기의 원인이 되고, 건물에 피해를 준 화석연료에서 벗어난 전기 난방 등을 고려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이제 집을 지을 때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인이 됐다. 알테나흐르에서 집을 다시 지을 때는 1층에는 차고 같은 ‘생활하지 않는 공간’만 배치할 수 있다. 거실, 방과 같은 생활공간은 2~3층에 배치해야 한다. 분석 결과 ‘100년에 한 번 올 홍수’에 대비할 수 없는 지역에서는 신규 건축이 불가능해졌다. 뤼디거 퓌어만 알테나흐르군 군수는 “알테나흐르를 ‘재현’하고 싶지 않고, ‘재디자인’하고 싶다”며 “이 지역은 기후위기의 피해를 복구하는 ‘모델 지역’ 중 하나인 만큼 건물, 에너지도 지속 가능한 지역으로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후선진국’ 독일의 대홍수 1년 뒤] 도시 인프라도 재난 대응도…‘기후위기’ 고려해 뜯어고쳐야

뤼디거 퓌어만 알테나흐르 군수

도시의 복구와 재현을 넘어서 ‘재디자인’ 필요
건물과 에너지도 지속 가능한 지역으로 만들 것

라인란트팔츠주 에너지공사는 ‘100% 재생에너지 지역’을 큰 목표로 하고 있다. 에너지공사는 홍수 이후 각 지역을 방문해 ‘지속 가능한 난방’ 개념을 주민들에게 설득했다. 일부 주민들은 난방시설을 다시 갖추는 게 급해서 다시 기름을 이용한 난방시설, LNG를 이용하는 난방시설을 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너지공사가 지열에너지를 이용한 ‘지역난방’과 히트펌프라는 낯선 개념을 거듭 설명하고, 유류 유출로 인한 피해를 실감하면서 ‘지속 가능한 난방’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에너지공사가 만들려는 시스템은 ‘지열에너지’와 ‘전력화’를 두 축으로 한다. ‘지열에너지’는 지구 내부에서 나오는 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거나 직접 난방을 한다. 땅밑으로 100m 정도의 구멍을 뚫어 파이프를 넣고, 그 안에 물과 부동액을 섞은 유체를 순환시켜 에너지를 얻는다. 이런 관을 마을 단위로 묻어서 ‘지역난방’ 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전력은 태양광, 풍력, 바이오가스 등을 이용해서 생산한다. 기존 화석연료를 사용하던 난방에서 ‘전력’을 이용하는 난방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한다.

토마스 기엘 독일 마인츠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이 시스템은 5㎾의 열을 얻는 데 1㎾의 전기가 드는 매우 효율적인 시스템”이라며 “주민들은 매우 싼 비용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40개의 지역에서 유사한 시스템이 운영되고, 모니터링되고 있다. 개념과 경험은 충분하다”며 “아르강 유역에서도 12개 마을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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