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장의 토종 반달가슴곰 ‘보담이’ 귀향 도울 곳 어디 없나요

2013.10.27 22:15

녹색연합, 기증 위해 모금… 환경부선 “못 받는다”

서울대공원 등도 거절… 중국 보호센터로 갈 수도

반달가슴곰 ‘영산강 01-02-009’는 전남 담양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10~12살로 추정되는 곰은 가로·세로 2m의 철창 우리에서 살고 있다. 배설물이 빠질 구멍도 없는 우리 바닥엔 똥·오줌이 질퍽했다. 10년 넘게 이 곰이 지켜본 것은 관리인이 가끔 우리에 넣어주는 잔반·개사료, 도축될 날만 기다리는 같은 운명의 곰들뿐이다. 사냥을 하거나 다른 곰들과 장난치고, 나무에 영역 표시를 하거나 겨울잠을 자는 본능적 행동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좁고 더러운 우리에서 스트레스가 쌓인 곰은 곧잘 매달리거나 왔다갔다하는 ‘정형행동’을 보였다. 목적 없이 반복되는 자폐증이었다.

그러던 ‘영산강 01-02-009’는 지난해 희망의 빛을 찾았다. 한국 토종으로 밝혀진 것이다. 환경부의 용역을 받아 사육곰 실태조사와 관리방안을 연구하던 충남대 연구진은 이 곰의 모계혈통이 토종 반달가슴곰인 ‘우수리종’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농가를 찾아간 환경·동물단체 사람들도 일본·대만에서 수입해온 곰들과 체격이나 털 모양이 다른 것을 목격했다. 녹색연합 윤상훈 팀장은 “한국 토종인 우수리종은 다른 나라 곰들보다 눈에 띄게 크다”며 “충남대 연구진이 지목한 이 곰은 확연히 체격이 컸고, 우수리종의 특징인 목털도 잘 발달됐으며, 가슴의 반달 모양도 선명했다”고 전했다.

우수리종 반달가슴곰 보담이가 지난 3월 곰 사육농가 우리 속에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철창에 보담이의 등록번호인 ‘영산강 01-02-009’가 기재돼 있다. | 녹색연합 제공

우수리종 반달가슴곰 보담이가 지난 3월 곰 사육농가 우리 속에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철창에 보담이의 등록번호인 ‘영산강 01-02-009’가 기재돼 있다. | 녹색연합 제공

녹색연합은 지난해 5월부터 ‘영산강 01-02-009’를 매입해 정부에 기증하기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구출되는 것은 한 마리뿐이지만, 당시 전국 53개 농가에서 사육되는 곰 998마리의 현실을 알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사육곰을 직접 관리토록 하자는 뜻이 담겼다. 모금에는 5000여명이 동참했고, 두 달 만에 매입비용 1500여만원이 모아졌다.

우수리종 곰이 시민공모를 통해 ‘보담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도 이때였다. 그전에는 등록번호(영산강 01-02-009)뿐이었다. 녹색연합은 한 시민이 “보담은 어느 누구보다 더 나은 삶을 살라는 순우리말”이라며 “성공적인 귀향으로 다른 곰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제안한 대로 보담이라고 불렀다. 보담이는 금방이라도 지옥에서 구출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보담이의 운명은 그 후로도 달라진 게 없다. 녹색연합이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에 기증해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에 활용토록 기증하려 했지만 환경부는 거부했다. 이유를 묻는 민주당 장하나 의원에게 환경부는 “정밀조사를 통해 우수리종 여부를 최종 확인해야 한다”며 “복원사업 활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개체 성향 및 행동학적 특성 등이 사전에 검증돼야 한다”고 밝혔다.

환경단체들의 시각은 다르다. 환경부가 보담이 기증을 거부하는 진짜 이유는 기증받았을 때 다른 사육곰들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딜레마에 빠지기 때문이다. 비용만 들어갈 뿐 수입은 전혀 올리지 못하고 있는 사육곰 농가들이 곰을 받아달라고 나서면 정부가 할 말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환경부 관계자는 녹색연합과의 면담에서 “보담이를 받았을 때 나머지 사육곰에 대한 입장이 이상해진다”고 밝혔다고 한다.

윤 팀장은 “곰 사육 자체가 1980년대 국가의 장려로 시작됐다”며 “환경부가 10년 넘게 곰 사육농가·환경단체와 함께 논의해온 사육곰 국가매입 방안 등을 무시하고 ‘결자해지’의 책임을 방기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규를 강화해 곰 사육농가를 고사시키려는 움직임도 농가들의 반발만 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수리종 반달가슴곰 ‘보담이’를 사육하고 있는 전남 담양의 한 농가 시설. 이 농가 우리에서 80여마리의 곰을 사육하고 있다. | 녹색연합 제공

우수리종 반달가슴곰 ‘보담이’를 사육하고 있는 전남 담양의 한 농가 시설. 이 농가 우리에서 80여마리의 곰을 사육하고 있다. | 녹색연합 제공

환경부의 기증 거부로 보담이의 운명은 다시 원점에 서 있다. 연령이 10살 이상인 보담이는 언제 웅담 추출을 위해 도축될지도 알 수 없다. 윤 팀장은 “정부가 10살 이상의 사육곰만 도축하도록 허용해 보담이의 운명도 사육농가의 처분에 맡겨진 상태”라며 “다행히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 웅담을 찾는 이가 거의 없어진 덕분에 곰 도축 자체가 드물어진 것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녹색연합은 서울대공원·에버랜드·산림청 국립수목원·지방의 시립동물원 등에 보담이를 받아줄 수 있는지 타진하고 있다. 윤 팀장은 “서울대공원과 에버랜드는 어렵다는 입장을 전해왔고, 광릉 국립수목원 내 동물원과는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국내에서 보담이를 받아줄 곳을 못 찾으면 중국의 곰 보호센터에 보내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하나 의원은 “정부가 지금까지 우수리종 반달가슴곰 복원을 위해 들인 비용이 140억원에 달하고 중국에서 곰을 수입해올 때 마리당 1080만원을 주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시민들이 매입비용을 모금한 보담이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0월 초에도 사육곰 중 반달가슴곰 우수리종이 한 마리 더 발견됐다”며 “환경부는 더 이상 보담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