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강물

2024.06.26 20:35 입력 2024.06.26 20:36 수정

[임의진의 시골편지]몰강물

장마가 시작되자 목마르던 수국이 양껏 물을 마신다. 비에 쓸려나갈 집도 아니고, 비에 떠내려갈 ‘빼빼시’(마른 몸)도 아닌데 어찌 지내냐 걱정들을 하고 그래. “암시랑토 안해~” 답한다. 그럭저럭 정도가 아니라 단호하게, 아주 괜찮다는 말을 이 동네에선 그리한다. “도농놈의 자슥들~ 얼척이 없어가꼬 말이 안 나오네잉” 뉴스를 째려보던 아재가 넘기는 탁배기 한 사발. 찌륵찌륵 비도 내리고 부추전은 구수한 냄새. 인생 탁한 물이 흐르는 듯하면 밝고 고운 벗님 만나서 어둠을 씻는다. 여기선 맑은 물을 ‘몰강물’이라고 해. 몰강물이 하늘에서도 내리고 땅에서도 흐른다. 곽재구 시인의 ‘참 맑은 물살’ 그 시처럼 맑은 물이 쏟아진다. “참 고운 물살 머리카락 풀어 적셨네 (…) 아무 때나 만나서 한 몸 되어 흐르는 눈물나는 저들 연분홍 사랑 좀 봐”

인도에 가면 요가왕 ‘꼰다리 또꽈’, 일본에 가면 쌈박질 잘한다는 ‘깐이마 또까’, 장맛비에 걸어가는 ‘비사이로 마까’도 있다지만 대한민국에는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암시랑토 안해’를 입에 달고 사는 저이들 만나 마음을 기댄다. 물이 불어 찰랑거리는 강물 바라보며 논밭을 걱정하고, 개망초 피어난 들에 서서 멀리 사는 자녀들 두루 염려한다.

“비가 올라고 그랑가 삭신이 쑤시오잉.” 날씨예보가 몸으로 찾아오는 늙은 아미타불, 아니 엄니타불이 산중 절이 아닌 가까운 교회에 찾아가 싹싹 빌며 기도하는 내용. “우리 자석들 조깐 잘되게 해주쇼잉. 아조아조 약조를 해주쇼잉. 내가 죽고 없어도 당신이 조깐 챙겨주쇼잉. 두고두고 살펴주쇼잉.”

매미가 싸름 싸르르름 싸르름 울 듯 울며불며 애원하는 소리가 장대비 소리보다 크고 높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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