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집으로 돌아간 ‘삼팔이’는 잘 지낼까…등지느러미 상처 보면 안다

2019.06.20 21:07 입력 2019.06.20 21:14 수정
장수진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대표

2016년 3월 남방큰돌고래들이 제주 모슬포항 앞바다에서 물 밖으로 뛰어오르며 놀고 있다. 왼쪽 동그라미 안은 삼팔이, 오른쪽은 나오 등지느러미. 김창길 기자·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제공

2016년 3월 남방큰돌고래들이 제주 모슬포항 앞바다에서 물 밖으로 뛰어오르며 놀고 있다. 왼쪽 동그라미 안은 삼팔이, 오른쪽은 나오 등지느러미. 김창길 기자·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제공

문자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기록은 세대를 건너 특정 인물과 사건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한다. 기록을 바탕으로 우리는 과거 왕들이 어떤 음식을 즐겨 먹었는지, 과거 유럽의 철학자가 하루에 산책을 몇 번이나 하는 습관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2019년 4월 조지타운대학 돌고래 연구팀은 ‘모든 상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라는 제목의 논문을 ‘행동생태학 및 사회생물학회지’에 게재했다. 호주 샤크베이에 사는 남방큰돌고래를 대상으로 한 이 논문은 돌고래들의 몸에 난 이빨자국 등의 상처를 바탕으로 돌고래 사회에서 나이와 성별에 따라 사회적 갈등이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논문에 따르면 수컷과 13~30살 사이 개체들이 가장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연구진은 이를 성적으로 성숙하면서 발생하는 경쟁과 협력 관계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이런 연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각각의 개체를 구별하는 것이다. 나이가 몇 살이고, 부모는 누구며, 살면서 어떤 크고 작은 사건을 겪어 왔는지 등 개별 돌고래 역사의 축적을 통해 돌고래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다. 개체 구별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이 돌고래의 등지느러미다. 해양포유류인 돌고래는 주기적으로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숨구멍을 내밀어야만 한다. 머리 뒤쪽에 있는 숨구멍이 수면 위로 나오기 위해서는 등에 있는 등지느러미 또한 드러낼 수밖에 없다.

돌고래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개체들이 가진 차이를 찾아내야 한다. 몸, 가슴과 꼬리지느러미에 있는 특징과 상처들도 개체를 구별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등지느러미가 가장 자주 수면 위에 드러나므로, 등지느러미의 상처를 기록하고 이 변화를 추적해 개체를 구별하는 것이다. 수면 위로 올라온 돌고래의 등지느러미 사진을 찍고, 사진에서 등지느러미 이미지를 확대·추출해 기존 목록과 비교한 후, 발견되었던 개체라면 발견 날짜와 내용을 기록하고, 새로 발견된 개체라면 새로운 개체 번호(또는 이름)를 부여한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도 이런 정보를 통해 2013년 돌고래 방류 이후부터 지금까지 제주의 남방큰돌고래를 구별하고 있다. 등지느러미 목록으로 얻은 정보는 누가 새로 태어났는지, 언제 새끼를 잃었는지, 낚싯줄 등에 걸리는 사고를 당했는지, 사람이 타고 있는 보트에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건 누구이며, 다른 개체와 교류를 잘하지 않고 홀로 다니거나, 서로 다른 돌고래 무리마다 접근하는 ‘인싸’는 누구인지 등을 알 수 있는 기본 자료가 된다.

이러한 기록은 축적할수록 힘을 갖는다. 첫해에는 특정 개체를 발견하는 데 그쳤다면, 해를 거듭하면서 쌓인 기록을 통해 각 돌고래의 삶을 파악하고 이들의 사회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은 누가 누군지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예를 들면 방류 훈련 중 탈출한 삼팔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제돌이나 춘삼이와 달리 등지느러미에 인위적인 어떤 표식도 만들기도 전 가두리를 탈출한 삼팔이는 야생의 다른 돌고래들과 마찬가지로 등지느러미를 이용해서 구별할 수밖에 없다. 삼팔이의 등지느러미는 뒤편의 커브가 너무 깊게 파이지도 않았고, 직선인 형태도 아니다. 등지느러미의 뒤편 아래쪽에 작게 파인 상처가 있는데, 이 상처 아래쪽 조직이 좀 더 튀어나와 있는 것을 통해 다른 개체와 구별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을 참고해 우리는 삼팔이가 여전히 야생에서 잘지내고 있으며, 누구와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지, 새끼를 낳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우리가 ‘나오’라고 부르는 돌고래도 있었다. 2016년 정치망에 혼획된 뒤 구조된 개체로, 앞으로는 이런 곳에 들어가도 무사히 나올 수 있기를 바라며 ‘나오’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나오의 등지느러미를 2018년에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고,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오의 기록에 ‘사망 추정’이라는 글귀를 더했다.

[기고]집으로 돌아간 ‘삼팔이’는 잘 지낼까…등지느러미 상처 보면 안다

언뜻 보면 다 똑같아 보이는 돌고래지만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수년째 돌고래를 따라다니며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올해는 누가 싸워서 다쳤나보다, 저 녀석은 배에 너무 가까이 접근했나보다, 살이 빠진 걸 보니 어디 아픈가’를 추정하며 한 마리, 한 마리의 변화에 울고 웃는다.

돌고래 등지느러미 목록을 배포하게 된 것은 사람들이 아이콘으로서의 돌고래가 아닌 각각의 돌고래들에게 관심을 더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관광을 가서 본 돌고래가 누구인지 찾아볼 수도 있고, 목록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관찰 기록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알면 사랑한다’는 말처럼 제주도에만 살고 있는, 얼마 안되는 바다의 이 멋진 생명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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