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아고마워

천연기념물 흰꼬리수리 부부가 번식에 실패한 까닭은

2023.06.16 16:38

김기범 기자의 살아남아줘서 고마워(35) - 천연기념물 흰꼬리수리 부부가 번식에 실패한 까닭은

지난 4월 경기 안산 시화호 주변에서 번식을 시도하고 있는 흰꼬리수리의 모습. 시화호지킴이 최종인씨, 한국수달네트워크 제공.

지난 4월 경기 안산 시화호 주변에서 번식을 시도하고 있는 흰꼬리수리의 모습. 시화호지킴이 최종인씨, 한국수달네트워크 제공.

지난 4월15일 시화호지킴이 최종인씨는 경기 안산 시화호 주변 야산에서 흰꼬리수리 부부의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이들 한쌍의 멸종위기 조류는 소나무 위에 둥지를 틀었다고 합니다. 시화호 인근에서 1988년부터 야생동물들의 생태에 대해 관찰하고, 보호활동을 벌여온 최씨는 매우 진귀한 일이며, 흰꼬리수리 부부를 보호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흰꼬리수리가 한반도 중부지방에서 번식을 시도했다는 얘기를 들은 바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 국내에서 흰꼬리수리의 번식이 확인된 것은 23년 전인 2000년 전남 신안군 흑산도가 유일합니다. 이외의 지역 가운데서 이 천연기념물 맹금류의 번식 시도는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천연기념물 243호인 흰꼬리수리는 매목 수리과의 새로 몸길이는 약 84~94㎝이며, 날개를 편 길이는 199~228㎝에 달하는 대형 맹금류입니다.

흑산도에서 번식이 확인되기 전에는 한반도에 겨울을 나러 찾아오는 철새라고 여겨졌었습니다. 현재 흑산도 인근 홍도에서는 여러 마리의 흰꼬리수리가 관찰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경기 안산 시화호 주변에서 번식을 시도하고 있는 흰꼬리수리의 모습. 시화호지킴이 최종인씨, 한국수달네트워크 제공.

지난 4월 경기 안산 시화호 주변에서 번식을 시도하고 있는 흰꼬리수리의 모습. 시화호지킴이 최종인씨, 한국수달네트워크 제공.

최씨는 흰꼬리수리의 번식 시도를 확인한 후 안산환경운동연합을 통해 이 내용을 멸종위기종 담당 부처인 환경부, 천연기념물 담당 부처인 문화재청에 공문을 보내 알리고, 보호 조치를 요청했습니다. 흰꼬리수리의 번식 시도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사진가 등이 몰려들면서 방해를 받을까봐 우려해 정확한 장소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최씨는 안타까운 모습을 관찰하게 됐습니다. 흰꼬리수리 부부의 번식 시도가 수포로 돌아간 것이었는데 원인은 주변에 서식하고 있던 큰부리까마귀들이었습니다. 최씨에 따르면 흰꼬리수리가 둥지에 앉으면 큰부리까마귀 4~5마리가 계속 공격을 하면서 번식을 방해했다고 합니다. 흰꼬리수리는 다른 새나 들짐승들을 사냥하는 맹금류지만 까마귀 같은 대형 조류와는 경쟁관계이기도 합니다. 흰꼬리수리가 둥지를 트는 것에 위협을 느낀 까마귀들이 번식을 못하도록 방해한 것이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지난 4월 경기 안산 시화호 주변에서 흰꼬리수리 부부의 번식을 방해하려 하는 큰부리까마귀의 모습. 시화호지킴이 최종인씨, 한국수달네트워크 제공.

지난 4월 경기 안산 시화호 주변에서 흰꼬리수리 부부의 번식을 방해하려 하는 큰부리까마귀의 모습. 시화호지킴이 최종인씨, 한국수달네트워크 제공.

조류 전문가들은 흰꼬리수리의 번식이 실패한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보호 조치는 마땅치 않다고 설명합니다. 또 보호 조치가 가능하다 해도 인위적인 간섭을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합니다. 흰꼬리수리가 번식에 성공하려면 스스로 까마귀들의 방해를 이겨내야 하고, 그게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섭리라는 것입니다.

박진영 국립생물자원관 생물자원연구부장은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아직 나이가 어린 흰꼬리수리 부부가 번식을 시도하다보니 실패한 것일 수도 있다”며 “앞으로 시화호 인근 지역에서 다시 흰꼬리수리가 번식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처럼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는 동안 주무부처들인 환경부와 문화재청은 환경단체의 공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습니다. 현장을 확인하거나 부처 내 전문가들을 통해 보호 조치를 강구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는커녕, 공문에 대해 반응조차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사실 문화재청과 환경부가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 조류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고는 해도 실질적인 보호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화재청은 지자체들에 천연기념물 관련 업무를 맡기고 있고, 환경부도 멸종위기종 보호와 관련해 실무보다는 행정업무만 담당하고 있는 측면이 큽니다. 하지만 공문에 형식적인 답변조차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환경단체에서는 두 부처가 얼마나 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에 대해 관심이 없는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최씨는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흰꼬리수리의 번식 실패는 자연에 의한 일이어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담당기관들이 현장에 한번 나와보지도 않았다는 것은 무척이나 한심한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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