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 산책’ 완간한 강준만 전북대 교수

2011.01.17 21:10 입력 2011.01.18 14:02 수정

“분노 과잉의 우리 사회, 성찰이 없으니 발전이 없다”

노무현 정권 때 민주당 분당에 끝까지 반대하면서 진보진영과 거리를 두게 된 강준만 교수. 이명박 정부 들어 보수와 진보 모두 성찰 없는 증오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며 “모두 미쳐 돌아갈 때는 침묵하는 게 최상”이라며 입을 다물었던 그가 우리 사회의 승자독식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노무현 정권 때 민주당 분당에 끝까지 반대하면서 진보진영과 거리를 두게 된 강준만 교수. 이명박 정부 들어 보수와 진보 모두 성찰 없는 증오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며 “모두 미쳐 돌아갈 때는 침묵하는 게 최상”이라며 입을 다물었던 그가 우리 사회의 승자독식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책을 낼 때 나오는 기자들의 반응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그가 얼마나 읽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엄청나게 쓴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의 책 쓰는 속도는 남들 책 읽는 속도보다 빠르다.” 빨리 쓰는 만큼 날림이 아니냐는 힐난성 코멘트가 아니다. 글 쓰는 직업인으로서 탁월한 글쟁이를 볼 때 느끼는 경탄과 부러움의 표현이다. 나 같은 보통 기자들은 기사 한 꼭지 쓰기 위해 몇 시간을 끙끙 대는 게 다반사니까.

‘읽는 속도보다 빨리 쓴다’는 말은 사실 강 교수에게 과장이 아니다. 그는 얼마전 모두 17권으로 된 <미국사 산책> 시리즈를 완간했다. 이 책 시리즈 1~5권이 나온 게 지난해 3월이니 9개월 만에 12권, 한 달 평균 1.3권을 쓴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연 평균 독서량은 10.9권. 보통 사람은 한 달에 한 권을 채 안 읽는데, 그는 한 권 이상을 쓴다는 얘기다. 그럼 그런 속도로 여태껏 모두 몇 권의 책을 냈을까. 유감스럽게도 이에 대한 정확한 답이 어렵다. 저자 본인이 “모르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신문 출판담당 기자가 인터넷을 뒤져 그의 저술 분량을 헤아려보니 단행본만 200여권이다(경향신문 2010년 4월14일자 23면 보도). 교수가 된 1989년 이후 본격 저술활동에 나섰다고 할 때 지난 20년 동안 연 평균 10권 정도의 책을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로 대단한 저술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그를 이처럼 쉼없이 쓰게 만드는 걸까. 글을 쓰는 원동력은 무엇이고 속도감 있게 써내는 비법은 무엇일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신문지상에서 ‘강준만 칼럼’이 안 보이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오는 24일 미국 콜로라도대 교환교수로 가기로 돼 있어 이런저런 준비로 바쁘다며 난색을 표하는 강 교수를 전주로 찾아가 만난 까닭은 이런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함이다. 인터뷰는 전북대 연구실에서 했으나, 그에 앞서 개인 사무실을 먼저 들렀다. 강 교수는 사무실이 너저분한 게 폐허 같다며 “볼 게 못 된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가 저작하는 산실을 눈으로 보고 싶어 공개를 요청했다.

그의 개인 사무실은 전주시 우아동 뒷골목의 한 음식점 건물 3층에 있다. 바닥면적 40평으로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30만원을 주고 이용하는 방이다.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서니 일자로 촘촘하게 설치된 서고와 그 속을 빽빽이 채운 누런 봉투들이 눈에 들어온다. 신문·잡지에 난 기사를 인물 중심으로 모아놓은 스크랩 자료다. 국내외 유력인사들이 과거 무슨 말과 행동을 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물, 그러니까 강 교수의 인물 비평 글이 나오는 원천(源泉)이다. 서고 옆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여기저기 우편물과 책, 미처 정리되지 않은 자료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날 정도의 비좁은 통로 바닥에는 한 움큼씩 먼지가 쌓여 있고 콘크리트 벽 사이로는 어깨를 오싹하게 하는 한기가 스며나온다. 실내 한쪽 귀퉁이에 철제 책상이 있고, 그 위에 낡은 컴퓨터, 그 아래에 전열기가 있는 게 집필공간이다.

스크랩 자료로 가득한 그의 개인사무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스크랩 자료로 가득한 그의 개인사무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이런 곳에서 그 많은 책이 쓰여졌다니 놀랍습니다. 글쓰기 작업은 학교 연구실에서는 하지 않고 모두 여기서 합니까.

“참고할 자료가 이곳에 있고, 혼자 집중할 수 있어서 늘 여기서 씁니다. 전에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정리를 맡겼는데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내보냈죠. 그렇다보니 실내가 이렇게 됐습니다. 외부인은 이곳에 발 들여놓는 일이 거의 없는데, 어느날 제 딸이 와 보고는 처량하다는 눈빛으로 보더군요.”

- 스크랩 자료가 지금도 필요합니까. 신문, 잡지에 난 기사라면 인터넷에 다 있지 않나요.

“인터넷 시대라고 해 자료를 트럭으로 버렸다가 후회했습니다. 인터넷에 다 나온다고 하지만 실제 찾아보니 안 나오는 게 적지 않아요. 물론 자료를 버린 직접적인 이유는 보관 비용 때문이지만, 그래도 인터넷에 의존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아쉬움이 큽니다.”

- 실제 글쓰기는 어떻게 하나요.

“제가 아날로그 세대 아닙니까. 지금도 스크랩 자료를 꺼내 책상 위에 펼쳐놓고 글을 쓰는 게 가장 빠르고 편합니다. 독수리 타법으로 두들기죠.”

개인 사무실에서 나눈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차 한 잔은커녕 앉을 자리도 없고 무엇보다 추워서 이야기를 계속하기 어려웠다. 학교로 옮겨 책 이야기를 이어갔다.

- 그동안 한국인, 한국사회의 특성을 주로 연구해왔는데 <미국사 산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세계에서 미국에 유학생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작 미국을 얼마나 아느냐, 미국학 수준이 어느 정도냐 하면 좀 부실하지 않습니까. 미국사에 대한 책은 이미 많이 나와 있죠. 그러나 대부분 학술적 관점에서 하나의 주제를 잡아 좁고 깊게 판 전문서적입니다. 전체를 총괄해주는 책은 없잖아요. 그래서 이걸 내가 해보자고 마음 먹었죠. 다양한 분야를 비빔밥처럼 섞고 종합하는 게 저의 장기이니까요. 해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 17권의 책을 다 쓰고 난 다음 맺음말에 ‘미국이 제2의 한국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보시는 건가요.

“한국이 제2의 미국이라고 해야 할 것을 잘못 쓴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의 지나친 미국화를 비판하며 차라리 51번째주가 되라며 비아냥거리는 시각이 있잖아요. 저는 그 시각을 엎어보자,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 그래서 반대로 말한 것입니다. 해방 이후 우리가 미국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어요. 그런데 뭐든지 미국 영향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어떠한 역사적 경로를 거쳤든 한국 사회가 갖게 된 특성이 있는데 그게 미국 사회의 특성과 상당부분 같다는 걸 저는 발견한 겁니다. 그런데 한국의 역사가 미국보다 앞서니 미국이 제2의 한국이라는 이야기죠. 저는 그 닮은 점을 압축성장, 평등주의, 물질주의, 각개약진, 승자독식 등 다섯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다섯 가지 닮은 점에 대한 부연설명이 이어진다. 유럽의 2000년 역사를 미국이 한두 세기로 압축해 경험한 것처럼 한국도 서구의 300년 변화를 30년 만에 따라갔다는 것, 미국이나 한국이나 귀족계급이 없고 정서적 평등주의가 강해 치열한 경쟁사회라는 것, 아메리칸 드림이나 코리안 드림이나 춥고 배고픈 것을 이기기 위해 물질을 추구한다는 점 등등이다.

- 책을 어쩌면 그렇게 빨리 쓸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비법이라도 있나요.

“저는 평소 관심있는 주제를 여러 개 정해놓고 그와 관련있는 자료가 보이면 하나씩 모아둡니다. 신문에 난 기사도 씨줄날줄로 꼼꼼히 저장해두죠. 지나가다 뭔가를 보면 그 자리에서 메모를 하고요. 하루에도 몇 시간씩 자료정리를 합니다. 그렇게 비축을 해두면 정작 쓰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요. 쓰는 것보다 자료 모으는 데 시간이 더 들어갑니다.”

- 컴퓨터에 주제별로 자료목록을 만들어놓는다는 얘기군요.

“그렇죠. 현재 수백개의 주제어가 가나다 순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다 책으로 쓸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조만간 룸살롱의 역사에 대해 책을 낼 계획인데, 한참 전부터 차곡차곡 모아온 룸살롱 관련 자료가 있는 거죠.”

- 자료 수집을 하려면 뭔가를 읽어야 하지 않습니까.

“요즘은 좀 줄였습니다만, 전에는 웬만한 인문사회과학 책은 다 샀어요. 그중에 다독해도 괜찮은 책과 정독해야 할 책을 구분합니다. 다독용은 하루에도 열댓권씩 휙휙 넘기며 봅니다. 그러다 참고할 대목이 나오면 여백에 메모를 하고 주제어 항목에 어느 책 몇 페이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고 입력해놓는 거죠. 그러니까 어떤 책을 쓴다고 하면 읽기는 다 끝난 상태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읽는 시간과 쓰는 시간이 반반 정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번에 나온 책도 ‘미국사’라는 주제어로 저장돼 있던 자료들이 강준만식 화법으로 활자화되어 나온 셈이다. 이달 중에는 이런 식의 작업과정을 거쳐 완성된 또 다른 책 <특별한 나라 대한민국>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이 준비되고 생산 공정이 진행되는, 책 공장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다.

- 어느 인터뷰에 보니까 여태껏 쓴 책이 모두 몇 권인지 모른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요.

“일부러 세지 않으니까요. 부끄럽다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자랑스럽지 않아서요. 오죽 변변치 않으면 양으로 승부하나, 이런 말 들을까 싶기도 하고요. 다만 책에 대한 저의 철학이 다른 사람과 좀 다르다는 점은 있습니다. 저는 책은 소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 대한 경건함이 없는 거죠. 어떤 내용이 필요할 때 프린트해서 볼 수도 있지만 책이 더 편리하다면 책으로 만들자는 거죠. 다분히 실용적인 관점입니다. 제가 쓰는 글이 문학작품은 아니거든요.”

- 그 때문인지 교수님의 다작에 놀라고 함량에 실망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돌이켜 생각할 때 부끄럽게 느끼는 책은 없습니까.

“많죠. 한두 권이 아닙니다. 그중에는 이런 경우도 있어요. 학교 교재가 없어서 강의 노트를 나눠주고 그걸 그대로 책으로 냈는데, 가공이 모자란 상태였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이러면 안되는 건데 싶더라고요.”

- 글 쓰는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언제는 ‘분노’라 하고, 언제는 ‘재미’라 하는 인터뷰 기사를 보았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 건가요.

“분노로 썼던 때가 있었죠.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글로 쏟아져나오던 시기였습니다. 90년대 중반에 썼던 <김대중 죽이기> <서울대의 나라> <전라도 죽이기>가 대표적이죠. 그런데 분노는 무한정 지속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 다음부터는 재미가 우선이죠. 재미가 없으면 글쓰기가 불가능하겠죠.”

글쓰기의 동인이 분노에서 재미로 바뀐 시점은 강 교수의 ‘어제와 오늘’을 가르는 결정적인 분기점이다. 90년대 강 교수는 전사적(戰士的) 글쓰기의 명수였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금기, 성역에 대해 특유의 직설적 논쟁적 화법으로 비판의 메스를 들이대면서 기득권 세력의 위선과 허울을 벗기고 우상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화법이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니 신문지상에서 강준만 칼럼이 사라졌다. 그 이유를 들어보자.

“분노는 제가 부추겼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 분노가 과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임계점, 적정수준을 넘어서는 거예요. 그때부터 분노에 동의할 수가 없게 됐어요. 예컨대 이런 겁니다. 제가 조선일보 비판을 오랫동안 하면서 ‘조선일보 때문에’ 또는 ‘조·중·동 때문에’라는 식의 주장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노무현 정부 들어오니까 모든 것을 조·중·동 때문이라고 하는 거예요. 어떻게 모든 것이 조·중·동 때문이겠어요? 제가 하도 답답해 노 정부는 그 ‘때문에’ 때문에 망할 거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저보고 ‘드디어 강준만도 조중동 프레임에 빠졌다’고 합디다. 조·중·동, 문제 많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노무현 정권 들어섰잖아요. 그러면 분노보다 성찰을 해야죠. 설사 분노를 하더라도 성찰에 기반을 두고 해야 하는데, 성찰은 쏙 빠지고 보기 싫은 놈에 대한 증오만 있으니 무슨 발전이 있겠습니까.”

이쪽도 그르고 저쪽도 잘못됐다는 양비론은 그가 한때 맹렬히 비판했던 입장이다. 그런데 어느덧 그가 양비론자가 된 것이다. 이 입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선 뒤에도 큰 변함이 없다. 지금의 진보진영이 정권을 넘겨준 데 대한 반성과 성찰은 하지 않고 현 정부와 이 대통령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만 키우고 있다는 게 그의 시국관이다. 진보와 보수로 뚜렷이 갈리는 현실에서 그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게 됐다.

- 글쓰기의 방향이 바뀐 것도 그 때문이군요.

“그렇죠. 현실의 벽 같은 좌절감을 느끼게 되면서 신문 칼럼과 같은 시사적 글쓰기는 더 이상 못하겠더라고요. 대신 긴 호흡의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분야가 역사입니다. 역사의 재구성, 재해석을 통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할 수 있다면 그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쪽이 재미가 있어요. 문제는 사람들이 많이 안 읽는다는 것이지만.”

시사적 글쓰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유명 지식인이 더 이상 시사적 글쓰기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작금의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었다.

◇ 강준만의 변신
운전면허 따고, 휴대폰 사고, ‘연고주의 온상’ 동창회까지 발길


강준만 교수는 요즘 또 한번 변신하고 있다. 이번엔 정치 이념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신상 문제다. 최근 그는 자동차 운전면허를 땄다. 남들에겐 사소한 일이지만 그에게는 대단한 변화다. 지금까지 그는 자동차 운전대를 잡으면 그 시간에는 책을 볼 수 없다며 운전은 엄두도 내지 않았다. 휴대폰도 장만할 생각이다. 이 또한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가 집필에 방해된다며 e메일로만 소통해온 그의 고집에 비춰볼 때 놀라운 결심이다. 그동안 남의 차 얻어타고, 휴대폰 없이 지낸 것에 대해 “지독한 이기주의였다”며 반성한다고까지 했다.

얼마 전부터는 동창회에도 나간다. 그동안 그가 입에 거품물고 비판해온 게 연고주의이고, 그 대표적 집단이 동창회다. 글쓰기에 전력투구하느라 친구들과 연락을 거의 끊고 지내온 그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전북대 내 성균관대 출신 교수들의 모임(명륜회)에 꼬박꼬박 참석한다. “연고주의를 끊자고 아무리 외쳐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공허한 말 하지 말고 연고주의를 인정하자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대신 끼리끼리 이익만을 추구하지 말고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도록 유도하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신문의 인물 동정란에 동창회 기사를 실을 때 ‘자랑스러운 ○○인’ 같은 내용은 빼고 어느 학교 동창회가 지역사회에 기부를 얼마 했다는 식의 공익적 활동 내역만 보도하자는 것이다. 이런 걸 그는 ‘공공적 연고주의’라고 이름붙였다.

그가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가기로 한 것도 눈길에 끈다. 지난 두 번의 안식년 때 한국에 있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결정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한국인에 관한 글을 영어로 써 미국 사회에 알리겠다는 그의 계획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지켜볼 일이다.

◇ 강준만 약력

△1956년 전남 목포 출생
△서울 숭실중·고교
△성균관대 경영학과
△미 위스콘신대 박사
△전북대 교수
△인물과 사상 발간
△<한국현대사 산책(전 18권)> <한국근대사 산책(전 10권)> <대중문화의 겉과 속(전 3권)>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 <입시전쟁잔혹사> <서울대의 나라> <김대중 죽이기> <전라도 죽이기> 등 다수


<이종탁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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