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 - 슬픈 근대, 뒤집힌 포스트모던

2014.05.02 20:20 입력 2014.05.02 22:22 수정
백욱인 |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지금 인터넷 세상은 가축의 왕국이다… 사색 대신 검색에 만족, 변혁 없이 즐길 뿐이다”

도쿄대 ‘전공투’ 학생들은 미시마 유키오를 힘센 ‘근대 고릴라’라고 불렀다. 그가 근대를 이야기하던 1960년대는 이제 다 지나갔다. 그 시대, 근대의 아들과 딸은 총리와 대통령이 되었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이제 ‘편평 납작한’ ‘포스트모던’의 자식들이 번성하고 있다. 패전 이후 고도성장기에 일본의 근대를 다시 세워 보려 했던 미시마 유키오. 그의 자위대 진입과 할복의 퍼포먼스는 일본의 근대를 넘어서기 위한 우국이었을까? 아니면 극우 ‘똘아이’의 쇼? 지금 우리에게 나라를 걱정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타산지석으로 쓸 수 있을까?

미시마 유키오가 1970년 11월25일 도쿄 이치가야의 자위대 건물 2층 발코니에서 할복자살을 하기 전 자위대원들에게 전후 평화헌법 폐기와 헌법 개정을 위해 궐기하라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있다.

미시마 유키오가 1970년 11월25일 도쿄 이치가야의 자위대 건물 2층 발코니에서 할복자살을 하기 전 자위대원들에게 전후 평화헌법 폐기와 헌법 개정을 위해 궐기하라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있다.

1. 근대와 소시민

나는 전후 미군 지배 아래에서 고도성장을 통해 대량으로 생산되던 소시민을 증오했다. 그들이 소비자본주의의 욕망과 ‘중산층 일체화’의 신화에 빠져드는 게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전후 대중소비사회의 일본은 구심점 없는 허구였으며 자본주의의 더러운 모습을 수면 아래 감춘 미친 빙산이었다. 나는 그들 소시민이 역겨웠고 그런 도덕관을 부숴버리고 싶었다. 나는 소비자본주의에서 대중의 혼을 갉아먹는 병든 천황의 모습을 보았다. 패전 후 일본에서 신이었던 천황은 인간으로 하락하였고 짐승에 가까웠던 신민들은 거꾸로 ‘인간’으로 상승하였다. 일본은 인간이 거주하는 평화로운 제작자와 상인들의 나라가 되었다. 내가 기꺼이 내 몸을 바칠 국가가 있고 그를 위해 죽는다면 나는 하나의 미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천박한 소비자본주의 나라를 구해낼 이상이었고 꿈이었다. 나는 천황 없는 자위대를 천황을 위한 군대로 만들고 싶었다.

“나는 안심하고 살고 있는 일본의 보통 사람이 싫었다. 나는 일본의 권력구조, 체제의 눈 속에서 불안을 보고 싶었다”(<미시마 유키오 대 동경대 전공투>, 새물결, 20쪽). 한국은 꼭 20~30년 시차를 두고 일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나 인터넷이 일상화되고 세계화가 추진되던 1990년대 후반 이후 그런 시차는 무의미해졌다. 1960년대 고도성장기의 일본인들처럼 안심하고 지내던 당신들이 다행스럽게도 요즘 대한민국 체제의 눈 속에서 불안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나약한 소비자본주의 나라의 소시민을 바꾸어 힘센 일본의 근대를 이루기 원했다. 그 꿈을 실현하려면 초인이 필요했다. 천황은 그런 초인의 메타포였다. 아마 지금쯤 당신들도 초인이 필요할 거다.

많은 한국인이 나를 그냥 “배째고 죽은 똘아이 우익” 정도로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시대착오적인 천황제를 주장했던 골빈 똘아이가 아니다. “나는 오지도 않을 미래에서 내 행동의 근거를 마련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그것을 과거에서 찾는다”(미시마 유키오, 같은 책, 67쪽). 당신들의 근대 시인 김수영도 ‘거대한 뿌리’에서 과거와 전통에 기대지 않았던가?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로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그러나 김수영의 ‘놋주발’과 나의 ‘일본도’는 다르다. 놋주발은 ‘쨍쨍’거리지만 일본도는 ‘쉬익’ 한다. 나는 시간 속에 사는 인간이지 공간에 정주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게는 당대의 혁명보다 역사가 중요했다.

끔찍한 사고와 사건 앞에서 당신들은 지금 분노하고 있지만 나는 차라리 불안을 직시하길 권한다. 이제 나는 그동안 불안해하지 않던 당신들의 눈에서 불안을 본다. “우리는/ 이제 차디찬 사람들을 경멸할 수 있다/ 어제 국회의장 공관의 칵텔 파티에 참석한/ 천사같은 여류작가의 냉철한/ 지성적인/ 눈동자는 거짓말이다/ 그 눈동자는 피를 흘리고 있지 않다/ 선이 아닌 모든 것은 악이다/ 신의 지대에는/ 중립이 없다”(김수영, ‘이혼취소’). 나에게도 중립은 없다. 난 날계란이나 찐 달걀은 먹어도 반숙은 안 먹는다. 이제 그대들도 나의 우국지심이 무엇이었나를 조금이나마 이해할까?

2. 가축 사료가 되는 사상

나는 우쭐대는 다이쇼 교양주의의 콧대를 꺾어버린 ‘전공투’에 경의를 보냈다. 나는 사상과 지식에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것만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지식인이 지긋지긋했다. 그런데 지금 인터넷 세상은 세계를 바꾸려 하기는커녕 세계를 설명하기도 포기한 채, 단지 세계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가축의 왕국이 되고 있지 않나? 나는 인터넷 세상의 그런 불안 부재를 경멸한다. 나는 세계를 설명하는 데 만족하는 지성주의에 환멸을 느낀 사람이다. 그렇다고 데이터베이스에 의해 길들여지고 있는 가축들의 반지성주의를 추수하고 싶지도 않다. 나의 반지성주의는 지성주의를 초극한 지점에서 출발한다.

인터넷 세상의 빅데이터는 모든 것을 ‘계산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계산 가능한 것은 예측 가능한 것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통제 가능한 것으로 전환된다. 이것이 데이터베이스 감시이고 통제이며 사이버네틱스가 노리는 목적이다. 이런 사회에서 ‘자유’와 ‘정의’, ‘진리’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말과 사물이 가짜로만 일치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세상의 데이터베이스 시대에는 시인의 시어도, 소설가의 이야기도 존재하기 힘들다. 그런 세상에서 나는 육체를 잃어버린 소설가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사색 대신 검색에 만족하면서 가축이 되어버린 인터넷 이용자가 시를 읽거나 생사와 관련된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환경관리사회’의 젊은 오타쿠 ‘잉여’들은 스스로 배를 가르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는 오직 ‘가스통 할배’들만 직접 행동한다고 들었다. 아름다움도, 죽음도, 에로스의 찬란함도 내가 할복할 때 모두 함께 죽어버렸다. “하시야마 슈조의 낙엽이 생활인 것처럼/ 5·16 이후의 나의 생활도 생활이다/ 복종의 미덕!/ 사상까지도 복종하라!/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이 말을 들으면 필시 웃을 것이다/ - 당연한 일이다”(김수영, ‘전향기’).

일본에서 1980년대에 등장한 만화 캐릭터 오타쿠, 인터넷 세상에서 ‘모에 캐릭터’에 열광하는 ‘덕후’들은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단순화되고 즉물화된 애완동물들이다. 2010년 내가 주는 ‘미시마 유키오상’을 받은 아즈마 히로키는 인터넷 세상을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라 칭했다. 인터넷 세상은 자기 머리로 스스로 생각하던 사람들을 반복과 작은 차이에 열광하는 가축으로 길들이고 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인 시뮬라크르를 인터넷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축적하고 교환하면서 오타쿠는 빅데이터의 애완동물이 된다. 아즈마 히로키는 데이터베이스가 지배하는 ‘아키텍처형 관리사회’에서 ‘동물이 되고 있는 오타쿠’를 보았다. “전자 밀실 안에 웅크리고 있는 나르키소스”는 “부드럽게 관리”된다.

일본의 사상은 내용 자체의 충실도가 아니라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꼭 의식적이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하여 내용에 비해 행위에 압도적인 중점이 놓여 있는 상태가 바로 일본사상의 특색이다”(사사키 아쓰시, <현대일본사상>, 19쪽). 내가 일본의 사상가 반열에 드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내 생각과 사유의 내용보다 내가 행한 퍼포먼스 행위가 더 위대하다. 자위대에 난입하는 용기, 단신으로 도쿄대에 뛰어들어가 학생들과 대담을 나누는 만용, 할복하여 자살하는 최후의 죽음까지 내 삶은 퍼포먼스로 점철되어 있다. 내 소설조차 일종의 퍼포먼스다. 나는 사상의 내용보다 수행이 앞섰던 사이비 지식인의 전위였다. 한국의 근대를 상징하는 김수영 시인은 술 먹고 집으로 돌아가다 승합버스에 치여 죽었다. 그것은 사고였다. 하지만 나는 자위대 본부에 진입하여 배를 가르지 않았는가. 시인의 죽음은 순수 사고였다. 나의 죽음은 퍼포먼스였기 때문에 그것은 사건이다. 나는 사건을 일으키고 싶었다. 나는 내가 수행해야 할 역할을 찾아 죽음으로 실천했다. 적어도 내 육체와 생각은 분리되지 않았음을 죽음으로 보여주었다. 이게 내 힘이자 매력 아니겠는가.

일본의 사상 퍼포먼스는 과거의 낡은 것과 자신의 새로움 사이에 날카로운 대립항을 제시한다. 그래서 내용 없이 돌출하는 행동과 부흥회 비슷한 강연이 사상계 진입의 지름길이 된다. 요즘은 아예 시뮬라크르 사상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시장에서 팔리고, 퍼포먼스 잘하고, 강연 무대에서 연기 좀 잘하고, 내가 새로운 것 하나 들고 나왔다고 소리치면 사상가로 등극할 수 있다. 한국도 일본과 비슷하게 퍼포먼스 없이는 사이비 사상가의 문턱에도 진입하지 못한다. 요즘은 그래도 염치가 있는지 사상가란 말은 차마 못 쓰고 스스로를 철학자라 칭하는데, 그 또한 웃기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당신들의 인터넷 세상에서는 ‘인터넷 논객’들이 출몰한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의 사무라이나 자객처럼 그들은 서로 결투를 하거나 뒤통수를 때리거나 딴지를 걸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유명해진다. 시작도 모르는 것들이 ‘끝장 토론’을 들먹이며 죽기살기로 물고 늘어진다. 대중이 열광하여 따르면서 ‘형아’가 되고, 그 ‘형아’를 쫓아다니면서 씹으면 그도 덩달아 논객이 된다. 그런 게 사상가를 대신해 대중을 이끄는 한국 인터넷 논객의 모습이다.

미시마 유키오가 자신의 서재에서 담배를 문 채 일본도를 뽑고 있다.

미시마 유키오가 자신의 서재에서 담배를 문 채 일본도를 뽑고 있다.

3. 육체와 초월

내가 도쿄대 교양학부 900호 교실로 찾아갔던 당시 도쿄대 전공투 학생들은 나를 ‘근대 고릴라’라고 불렀다. 그런데 나는 고릴라보다는 원시 인간에 가깝다. 나는 원시의 몸에 기대어 훌륭하고 힘센 근대 초인이 되고 싶었다. 나는 적어도 요즘 인터넷 세상의 포스트모던한 동물이나 가축은 아니었다. 나는 체제의 끝장을 보고 싶었다. 집권당은 더 반동적이 되고 야당은 더 폭력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끝장이 난다.

나는 육체와 칼로 세상을 초월하려 시도했다. 나는 정신이 아니라 육체를 확장하고 싶었다. 당신들은 육체 바깥으로 1㎜라도 나갈 수 있나? 시나 사유로 정신을 확장하여 세계를 포괄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들이 존경하는 시인은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김수영, ‘절망’)고 노래했다. 나는 구원이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는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나는 그와 반대의 방향을 세웠다. 육체를 강화하고 확장하여 행동하려고 마음먹었다. 그가 칭송했던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가 “아름다운 단단함”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피지 못한 미래의 씨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김수영, ‘사랑의 변주곡’)라는 사랑의 변주곡 또한 연주되지 못하는 불모의 씨다. 멋진 환상이지만 그런 단단함에서는 생명이 나오지 않는다. 사쿠라 꽃잎이 눈처럼 흩날리는 풍경을 봄마다 만나본 내게 살구씨 사랑꿈은 개꿈에 불과하다. 당신들의 시인이 죽기 얼마 전부터 죽은 전통의 ‘씨’가 아니라 살아있는 ‘풀’을 찾아나선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뒤집힌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그대들이 돌아갈 전통의 ‘복사씨와 살구씨’는 없다.

몸이 허약했던 시인은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씩 옆으로 비켜설 수밖에 없었다”(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그러나 스스로 몸을 만든 나는 내가 원할 때 절정에 설 수 있었다. “나는 바리케이드나 돌이 아주 직접적으로 자연으로 복귀하는 감각을 제공한다고 본다. 나는 전공투 어린 아이들보다 좀 더 진보한 문명을 갖고 있기에 일본도로 복귀하였다”(미시마 유키오, 같은 책, 39쪽). 데이터베이스가 모든 것을 편평하게 만드는 인터넷 세상에서 당신들이 만질 수 있는 육체와 직접적 자연으로 복귀하지 않는 한 앞으로 별 희망이 없을 거다. 조언 하나 하자. 육체와 자연으로 돌아가는 투쟁을 조직해라. 내가 배를 갈랐던 것처럼 직접 행동을 펼쳐라. 내가 말하는 자연은 짱돌과 아스팔트와 육체와 폭력이다. 나는 결국 일본도로 내 배를 가르는 육체와 자연의 연기를 실현해 보여주지 않았나. 자살을 위한 “나의 주도면밀한 준비는, 오로지 행위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최후의 인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 행위는 나에게 있어서 일종의 잉여물에 불과하다. 여기까지가 나고, 그 다음부터는 내가 아니다. 어째서 나는 굳이 내가 아니려고 하는 것일까?”(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내가 보기에, 2014년 4월의 당신들은 여전히 한심하고, 당신들에게 근대는 아직도 한대수가 노래한 ‘멀고 먼 길’이다. 이제 1970년대 당신들의 저항시인이 내게 선물한 ‘아주까리 神風(신풍)’(김지하 작)을 내가 그대들에게 고스란히 돌려드린다.

▲ 아주까리 神風 - 김지하에게

별것 아니여
일본놈 똥 먹고 피는 무궁화여
폐기처분한 유신과 고철로 만든 유람선이란 말이여

뭐가 대단혀 너 몰랐더냐
비장처절하고 아암 처절하고말고 처절비장하고
처절한 국격도 한류도 별것 아니여
미친년 미자바리 미친 듯이 핥으면서 미쳐버린
미친놈이지,

미칠 것 같은
너희들의 죽음은 식민지 땅 위에
주리고 병들고 묶인 채 외치며 불타는 식민지의
죽음들 위에 내리는 비여, 그러나 너는
역사의 죽음 부르는 너는
옛 군가여 별것 아니여
벌거벗은 女軍(여군)이 벌거벗은 내시들 틈에 우뚝서
제멋대로 불러대는 미친 군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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