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미국 1세대 환경운동가 웬델 베리

2014.05.19 21:14 입력 2014.05.19 21:15 수정
글·사진 |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

“산업화된 농업은 실패한 농정… 땅·식품·인류 병들게 해”

“한 나라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국민이다. 국민을 피폐해지도록 버려둔다면 아무리 큰 돈도 그 나라의 파멸을 막을 수 없다.” 작가이자 산업화된 현대 농업의 부작용을 바로잡는 데 생을 바쳐온 환경운동가 웬델 베리의 호소다. 통치의 목적은 국민이 안전하게 매일 생활해갈 수 있는 기본을 제공하는 것이며, 그 결과 대다수의 국민이 건강할 때 그 정부의 통치는 성공적이었다고 기록될 것이다. 그 안전의 출발선에 주요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식량권이다. 지금 우리의 식량 안전도는 어느 정도일까?

가족들이 한 해 먹을 양식과 매끼 밥상에 올릴 채소를 키우고 과일과 약재를 마련하던 농사는 산업화에 박차를 가한 지 50년도 안되어 시장에 팔아 돈을 만드는 상품이 되었다. 생명을 키운다는 농부의 숭고한 자부심은 숱한 농산물 가격 파동으로 구겨졌고, 국민의 건강권과 연결되는 농정을 책임지는 국가의 규제는 시장의 흐름, 돈의 압력으로 헐거워졌다. 식량 자급률도 23%로 떨어졌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그나마 산업화 속에서 겨우 버티던 소농들을 다시 선택의 기로로 몰고 갔다. 빚을 내 규모를 키워 경쟁력을 갖추든지 아니면 농사를 접든지 선택해야 했다. 그렇게 미국의 중소농가들은 터전을 떠났다. 이제 미국의 농가당 경작지는 130㏊이다. 우리 농가의 100배에 해당한다. 사람이 떠난 미국 농토에서는 기계와 비료가 생산을 떠맡는다. 대기업화된 영농업체가 연방 곡물 지원금의 80%를 받으면서 농업정책을 좌우하고 자국뿐 아니라 국제 곡물시장에서도 경쟁의 우위를 점하면서 멕시코·세네갈·한국의 농민까지 위협한다. 하지만 산업화된 미국의 농업을 자국민이 먼저 실패한 농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토양침식, 대지오염, 식품오염을 불러왔고 초국가기업이 된 종자회사의 유전자 조작 씨앗, 화학 비료와 농약 등은 세계인의 식탁까지 위험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미국 소비자들은 소규모 가족농이 대안이라고 말한다. 이들 소비자의 목소리가 세를 불려가자 대형 식품 마켓들은 따로 가족농가 생산 제품을 진열하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이 다시 되살리고 싶어 하는 중소 농가의 비율이 한국은 66%에 이른다. 대부분 가족농 중심의 생계형 농업이다. 그런데 지난 정부에 이어 현 정부도 농업 산업화를 부르짖는다. 기계화를 통해 노동중심 농사를 벗어나자면서 대기업의 농업 진출을 허용하고 있다. 우리 농업이 가야 할 길은 어디인지 묻기 위해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작가이자 농부인 웬델 베리를 만난다. 대화는 오랜 겨울을 물리고 수선화부터 목련까지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뜨리던 지난 4월13일 켄터키주 포트 로열에 있는 그의 집에서 이뤄졌다.

켄터키주의 자택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웬델 베리. 그는 교수직을 버리고 농부가 됐다.

켄터키주의 자택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웬델 베리. 그는 교수직을 버리고 농부가 됐다.

▲ “미국 경제정책 농민들 빚더미에 쫓겨 땅에서 떠나게 만들어
농민들 빈자리 대기업 영농업체들이 유전자 조작·농약 등 산업 보조물로 채워
세계인의 식탁 위험에 빠뜨리고 토양오염·침식 등폐해 일으켜”

안희경 = 선생님댁 비탈 아래 양들이 머무는 축사를 봤습니다. 새끼 양들이 어미 옆에서 평화롭게 놀다가 제가 다가가니 가까이 오더군요.

웬델 베리 = 어젯밤에 마지막 양을 받았습니다. 이제 새끼들이 다 나온 거죠. 곧 어미 양들과 같이 풀밭으로 옮겨갈 철이 왔습니다.

안 = 주변을 차로 둘러봤는데 선생님 땅이 다른 농가보다 너무나 조건이 나빠 보여서 놀랐습니다.

베리 = 네, 언덕배기 경사지예요. 겨우 쓸모를 갖춘 정도죠. 꽃과 채소 중심으로 밭농사를 짓고 풀밭에 가축을 놓아 먹입니다. 우리 당나귀가 코요테하고 들개로부터 양떼를 지키죠.

안 = 대규모 수확을 할 수 없는 조건인데 현대의 산업화된 농업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으셨나요.

베리 = 저는 가족이 먹고사는 데 우선을 두고 농사를 짓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곳으로 와서 올여름이면 50년이 되는데 그동안 밭을 매서 채소랑 딸기류를 거두었죠. 고기는 돼지와 함께 닭을 쳐서 고기와 달걀을 먹을 수 있었고요. 우유는 젖소 두 마리를 길러 충당했습니다. 양고기를 얼려서 시장에 팔거나 새끼 양을 분양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경비가 많이 들지 않는 건 말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경사지라 기계보다 효율이 훨씬 높아요. 지금도 1996년에 산 윙글링 종자 두 마리가 저와 한 팀을 이룹니다. 하지만 나이 들면서 규모를 줄였고요. 대신 강연과 교육에 더 시간을 냅니다.

안 = 미국 농부들이나 한국 농부들 중 상당수는 빚에 치여 삽니다. 그만두지도 못하고, 이자 내고 원금 갚으려면 또 빚을 내서 계속해야 하는 실정이죠.

베리 = 저처럼 농사를 짓는 경우 빚이 엄청나게 늘지는 않습니다. 일단 농장이 작고 사람 손과 동물이 일을 하니까 비용이 적습니다. 하지만 현대 농사는 산업화가 되었지요. 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미국의 경제정책은 농부가 땅을 떠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도시에서 대규모 노동인력풀의 값싼 노동력이 되었습니다. 도시 빈민이 되는 거 말고는 방도가 없었습니다. 농촌에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농촌에서 뭘 해야 하는지 훤히 꿰는 유능한 가난뱅이가 되는 거고요. 그런 이들이 도시로 떠난다는 것은 아는 거 없는 무능한 가난뱅이가 되는 겁니다.

안 = 미국 정부도 한국 정부도 농업 보조금을 지원합니다.

베리 = 네, 곡물에 대한 보조금이 나와요. 생산물을 조절하지 않으면서 생산에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과잉생산을 부추기고 곡물가격을 하락시키는 작용을 하죠. 농산물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득이지만 생산자인 농부에겐 한숨만 보탤 뿐입니다. 그 보조금의 80%가 상위 10%, 농부라고 부르기 어려운 거대 농업기업으로 가는 구조예요. 농부를 내쫓은 땅에는 사람 대신 기계가 들어왔습니다. 농약 같은 산업적인 보조가 없으면 시장에 농산물을 내놓기 힘든 작업조건이 됐습니다. 기계가 중심인 단일 경작을 하다보니 농민이 기르는 먹거리보다 더 많은 종류를 시장에서 사오게 되고, 그 경우 농민은 생산자라기보다 소비자라고 볼 수 있죠. 오히려 자신의 수입을 잃게 됩니다. 농민의 경제는 도시의 경제, 도시 주변에 사는 산업 노동자들의 가계 경제와 다릅니다. 공자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농촌이 번영하려면, 그 안에 생산하지 않으면서 소비하는 사람이 사라져야 한다.’ 소비만 하는 조건이라면 스스로를 돌볼 수가 없습니다. 지금 미국 농가의 80%가 밀·옥수수 등 한해살이 작물만 짓습니다. 그걸 팔아 돈이 생기면 시장에서 먹을 걸 사와 생활하고요. 그 땅에 무엇을 경작할지는 시장이 결정하죠. 하지만 제대로 된 농업이 되려면 자연에 흐르는 물길을 따라, 지역 생태에 따라 땅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땅을 시장이 결정하는 대로 이용하면 금방 망가집니다. 유독한 화학물질로 오염되고 토양이 침식되고 영양분이 고갈되어 땅심이 떨어지게 되죠.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세상에는 침식 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이 지구가 얼마나 버틸지 예상을 합니다. 그들 말이 토양침식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해요. 얼마 못 갈 상황입니다. 미국 전체가 의존하는 식량 생산지 아이오와주만 해도 토양침식이 끔찍한 지경이고, 유독물질이 그대로 멕시코만으로 들어가 ‘데드 존’이 늘어났어요. 산소가 없어 아무것도 살 수 없는 구역 말입니다.

안 = 일본 농부들이 전하는 말입니다. 부족한 농부는 잡초를 키우고 보통 농부는 곡식을 키우지만 뛰어난 농부는 흙을 키운다고 했습니다.

베리 = 서구에서는 자연을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봐 왔습니다. 조력자, 함께 협동하는 지원자로 보지 않아요. 그 피해의 증거는 무수합니다. 수천t의 햄버거가 화학 성분에 오염돼 리콜되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죠. 이렇게 땅의 열매가 건강을 지키는 음식이 아니라 생산 단위의 제품이 된 배경에는 세계대전이 있습니다. 그때 전쟁비품을 만들고 전쟁기기를 만들던 회사들이 전쟁이 끝난 뒤 할 일이 없으니까 농기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화약을 만들었던 이는 질소를 비료로 전환시켰습니다. 독가스를 만들던 사람들은 대안을 찾기가 더 쉬웠어요. 제초제, 살충제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산업화된 농업에서도 가장 최악의 위험은 화학제품입니다. 종류도 아주 많고 거의 모든 땅을 뒤덮고 있어요. 이 말은 흙이 땅에서 떠난다는 의미입니다. 더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만드는 거죠.

안 = 캘리포니아 들판에서 농사 짓는 히스패닉계 농장 노동자들의 경우 위암 발병률이 뚜렷하게 증가했다는 조사가 나왔습니다. 비료, 농약, 디젤 연소 등이 주요 원인이라고 합니다. 농사 짓는 농부가 병들 정도로 산업 농업의 부작용이 뚜렷해지는데도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베리 = 그 속에 갇혀 버렸습니다. 다른 길을 몰라요. 시스템에 갇히게 되는 수많은 경로가 있습니다. 빚도 우리의 발목을 잡는데, 문제는 경비와 수입 사이에 아무런 조응이 없다는 겁니다. 농부가 지불한 생산비용은 영농사업 공급 회사들한테 갑니다. 에너지 공급자와 농약·비료·기계 공급자 등 그 가격을 결정한 기업가에게 가는 거예요. 그런데 농부들이 생산품을 팔 때도 가격은 농부가 아니라 소비자가 매겨요. 농부들은 자신의 경제를 조절하지 못합니다. 농부가 망하면 결국 땅도 파산하는 거고, 그런 경제라면 점차 어떤 것도 생산할 수 없는 불임의 땅이 될 거예요. 정부는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농촌 인구를 유지하고 싶다면, 그들이 생계를 꾸려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죠. 나라마다 사회적인 서열이 있어요. 미국에선 사다리라고 부르는데 우리 농부는 그 사다리 어디쯤 있을까요?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은 꼭대기에 있겠죠. 농부는 어느 동네를 가든, 어떤 시절이든 항상 바닥에 있습니다. 이는 세상 어딜 가나 보편적인 진실일 거예요. 이것이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가는 이유입니다.

미국의 한 대형 농장에서 트랙터로 살충제를 뿌리고 있다. 살충제, 제초제는 세계대전 당시 독가스를 만들던 업체들이 찾아낸 대안 생산물로 땅을 황폐하게 하는 주범이다.

미국의 한 대형 농장에서 트랙터로 살충제를 뿌리고 있다. 살충제, 제초제는 세계대전 당시 독가스를 만들던 업체들이 찾아낸 대안 생산물로 땅을 황폐하게 하는 주범이다.

▲ “농업 산업화 부작용 알고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농산물 가격, 시장이 매기기 때문
가족농 중심 소규모 농업으로 식량경제 구축·도시 연대 이루면
농촌 자급자립 가능하게 돼 식량안전권·건강권 지킬 수 있어”

안 = 이 기획을 진행하면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나눈 이야기가 늘 머릿속에 맴돕니다. 우리의 생활을 좌우하는 권력은 초국가적으로 작동하는데 그 권력을 규제할 정치는 국경 안에 갇혀 있고, 결국 권력에 휘둘린다는 겁니다. 초국가적인 자본의 힘이 우리 시장을 움직이니 일자리도 불안하고 소비자들도 가격결정권이 약해지고요.

베리 =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이에 대해 글을 썼어요. ‘아프리카 농부들이 나무를 팔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먹을 양식을 기르는 것을 포기했고, 대신 나무를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나무를 팔면서 세상의 법칙은 그들에게 먹고살려면 돈을 들고 오라고 강요했다. 농부들은 곡식을 사려고 돈을 벌어야 했다.’ 우리는 모두 식량을 키울 수 있고, 우리가 키운 음식으로 먹고살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슈바이처가 말한 그들은 그걸 포기한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업구조 속으로 몰려가면서 우리의 생산능력을 스스로 포기하도록 강요받아 왔어요.

안 = 어떻게 풀어갈 수 있죠? 우리가 모두 농사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베리 = 저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편지를 받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가족농이 해체된 것을 슬퍼하더군요. 그런 종류의 근심을 한다는 것은 뭔가 움직이고 있다는 겁니다. 진보는 거창한 정치적 방식으로 오지 않습니다. 진보를 부르는 변화는 개인의 마음속에서 옵니다. 캔자스에 있는 과학자들이 주축이 된 랜드 인스티튜트(The Land Institute)는 ‘50년 영농 법안’을 주장하고 있어요. 토양침식, 오염, 그리고 농촌 공동체 해체를 알리며 가정의 살림문화와 농업문화를 바꾸려고 하죠. 지금 겨우 20% 농가가 다년생을 경작합니다. 나무, 잔디, 알팔파 같은 식물인데요. 이 비율을 50년 안에 다년생 작물 80%, 일년생 20%로 바꾸려는 법안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다시 농토로 오게 돼요. 다양한 작물을 키우려면 같은 땅에 더 많은 노동력이 있어야 하니까요. 단일 작물로 유발되는 토양 침식도 막고 빗물도 지킬 수 있어 가뭄에 강하게 됩니다. 물론 이 법안이 당장 투표에 부쳐지지 않는다는 걸 그들도 압니다. 그렇더라도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마음에 무언가를 불어넣는다면 해야지요.

안 = 2년 전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유전자 조작 식품 반대 법안이 투표에 부쳐졌습니다. 그 이태 전에는 공장식 축사를 네발 짐승이 한바퀴 돌 수 있도록 넓히는 법안을 통과시켰고요.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베리 = 우리의 일은 경쟁에 기반한 시스템에서 협력에 기반한 시스템으로 바꾸는 거예요. 이웃이 없는 경쟁체제에서 이웃이 되는 협력체제로 가는 거죠. 다행히 의식화된 소비자들의 수가 도시에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식품의 질을 선택하고자 합니다. 이들은 농부들과 연대할 능력을 갖게 되고 친구가 되어가고 있어요. 그렇게 미국 전역으로 퍼져가는 연대가 매주 농부들이 직접 나와서 파는 파머스 마켓입니다.

안 = 한국의 5일장과 비슷합니다. 지역 사람들이 거래하면서 농산물에 대한 신뢰가 쌓여 가지요.

베리 = 나라 전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역이 농사짓는 농장을 후원하면서 지역경제를 건설하고 식량을 함께 책임지는 경제를 만드는 거죠.

안 = 그런데 막상 유기농 농업을 하는 분들의 고충은 심합니다. 가족 식량을 생산해 먹고산다 해도 자녀 교육이나 생활을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하니까 부부 중 한 명은 도시에서 일자리를 갖고 버티는 농가가 많습니다.

베리 = 아미쉬 공동체는 농사 지을 때 말을 주로 이용합니다. 생산에 그리 많은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죠. 만약 지역단위 식량경제를 구축한다면 농산물 운송도 일부는 말이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이는 효율적이고 저렴하죠. 한창 산업농으로 전환하던 시기에 사람들은 이제 아미쉬는 끝났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지금 그들의 숫자는 두 배로 불었죠. 이유는 그들의 생활이 번성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이웃으로 여기며 도왔어요. 자신들의 육체적인 힘을 말과 합쳤고요. 이들의 에너지는 대지로부터 온 겁니다. 비용도 많이 들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이고 자신들이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사용해 경작한다면 그리 넓은 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큰 농장을 갖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이웃이 생겨요. 땅이 넓지 않으니 그만큼 가까워지는 거죠. 작은 경작지에서 다품종을 재배하니까 일거리가 많아져요. 품앗이를 하게 됩니다. 돈이 안 들지요. 아미쉬들은 아주 쉽게 완전 유기농으로 전환했어요. 수많은 아미쉬들이 우유를 오르가닉 밸리에 납품합니다. 다른 곳보다 45㎏에 10달러씩 더 줘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미쉬들은 항상 감당할 만큼만 꾸려왔습니다. 정책에 휘둘려, 또 시장에 내몰려 새로운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낭비하지 않았던 거죠.

안 = 지금까지 말씀하신 대안들은 한국 정부가 가려는 방향과는 반대입니다. 창조농업으로 특산물 수확부터 가공까지 하며 그곳에 관광객도 유치하자고 합니다. 기계화, 산업화를 독려하고요.

베리 = 그러면 여러분은 귀중한 문화를 잃게 됩니다. 100여년 전 프랭클린 킹이라는 분이 살았어요. 미국 농대 교수였는데 중국·일본·한국을 여행하며 농사짓는 법을 둘러봤습니다. 바로 당신들의 문화지요. 농토는 매우 협소한데 거기서 4000년 동안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킹은 그 비밀을 알고 싶었어요. 답은 영양분을 재활용하는 순환이었어요. 자연의 작용을 모방해 농사를 지었던 거죠. 킹은 자신이 보고 배운 것을 책으로 남겼습니다. 1911년에 나온 <4000년의 농부들, 중국·한국·일본의 영원한 농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지금 더 열심히 봅니다. 킹의 영향을 받았고 ‘유기농의 아버지’라 불리는 앨버트 하워드 박사는 이런 말을 남겼어요. ‘만약에 당신이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알고 싶다면, 숲을 공부해야 합니다.’ 자연이 어떻게 작물을 길러내는지 배우자는 거죠. 자연은 동물들과 함께 농사를 짓습니다. 영양소를 순환시킵니다. 모든 것은 땅에서 왔다가 다시 땅으로 돌아가지요. 바로 윤회(the wheel of life)입니다. 태어나고 자라고 숙성하고 죽고 썩는 거죠. 윤회, 생의 바퀴는 굴러가야만 합니다. 바로 제자리에서요. 이것이 당신네 선조 농부들이 어떻게 그런 작은 땅에서 4000년 동안 농사를 지을 수 있었는지의 비결입니다. 한 자리에서 계속 순환하면 그 어떤 영양소도 낭비되지 않습니다. 산업국가들 대부분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을 잉여 취급하고 있어요. 오늘날 우리는 그들을 ‘멍청한 농부들’이라고 생각하죠. 우리는 생태계의 원리를 인간 경제 속으로 통합해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추구해온 오랜 노력에 대한 설명은 끝났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대안을 찾아주세요. 더 나은 길을. 어떤 대안은 여러분의 역사 속에 있을 거고, 어떤 것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 웬델 베리
교수직 그만두고 농부로, ‘산업 농업’ 폐해 알리는 작가로 활동


부인(오른쪽)과 함께 포즈를 취한 웬델 베리.

부인(오른쪽)과 함께 포즈를 취한 웬델 베리.

웬델 베리(Wendell Berry·80)는 미국의 작가이자 환경운동가, 농부이다. 그는 12편의 장편소설과 다수의 단편, 시, 에세이를 통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파괴하는 산업문명의 폐해를 돌아보도록 했다.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헌신한 1세대 환경운동가로서 미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다. 켄터키대에서 영문학 학사를 받고 스탠퍼드대에서 ‘서구문학의 학장’으로 불리는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월러스 스테그너 문하에서 창작을 공부했다. 이후 뉴욕대와 켄터키대에서 창작을 가르치다 1977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농부가 됐다. T S 엘리엇 상을 비롯한 다수의 문학상과 미국 국가인문학훈장(2010년), 미국 데이튼 평화문학상 공로상(2013년) 등을 수상했으며 미국 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이다. 저서로는 <온 삶을 먹다> <지식의 역습> <생활의 조건> <포트 윌리엄의 이발사> 등이 있다.

웬델 베리와 만나기까지 여섯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e메일을 사용하지 않는다. 특급우편도 보낼 수 없는 사서함 주소만을 갖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순 편지를 보낸 뒤 연말에 우편물이 밀려드는 시기에 보낸 것을 후회하며 포기할 즈음인 1월 말에 답장을 받았다. 4월 어느 일요일에 만나자면서 정확한 날짜는 다음 다시 연락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2월에 날짜를 정했고, 몇 번 더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문득 20여년 전 학보를 보내던 그 기다림의 시간을 다시 누려 보았다. 웬델 베리는 그렇게 온 삶으로 세상에 잊혀진 서정을 깨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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