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성경에 나타나는 질병과 치유

2014.10.10 21:28 입력 2014.10.10 21:45 수정
황상익 | 서울대 의대 교수·의사학

병도 주고 구원도 주는 신들… 예수 기적의 7할이 ‘치유’였다

▲ 구약에선… 질병·고통의 원인은 인간의 죄, 그리스 신화와 비슷한 인과응보
▲ 신약에선… 민중들의 희망으로 떠오른 예수. 한센병 환자 고친 기록 특히 많아

얼마 전 말기 암에서 ‘기적적으로’ 회복된 친지가 있다. 웬만하면 한두 차례 다른 방법에 눈길을 돌릴 법도 하건만 한결같이 주치의를 신뢰하여 꾸준히 치료를 받고는 마침내 완쾌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완치를 계기로 성당에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을 직접 치료해준 주치의에게 감사하는 마음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종교를 찾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고 또 각기 존중받아야 한다. (종교를 갖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종교에 귀의하는 이유 중에는 자신과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하고 질병에서 낫기 위한 것도 적지 않을 터이다. 이런 종류의 신앙을 기복적이라고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태도는 과연 정당할까?

역사적으로 볼 때 종교와 의술은 오랫동안 동반자 역할을 해왔다. 선사시대는 물론이고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도 의술의 종교적이고 초자연적인 특성은 퇴색되지 않았다. 이번 회에서 이야기할 기독교의 구약과 신약 시대에도 그러했다. 성경은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생활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경전이거니와 신·구약 시대의 삶을 증언하는 역사서이기도 하다. 따라서 신학적, 종교적 해석과 더불어 역사적 해석도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는 질병과 치유, 그리고 환자 이야기가 풍부해서 의학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구약성경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질병과 고통, 그리고 죽음이 개인과 집단의 죄에 분노한 신의 징벌로 묘사된다. (여기에서는 <현대인의 성경>을 인용한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체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까지만 표시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네가 진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요,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다.’”(창세기 3장)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거나 벌하지 마소서.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내리누르고 있습니다. 주의 분노로 내 몸이 병들었고 나의 죄 때문에 내 뼈가 성한 곳이 없습니다. … 내 허리가 굽고 꼬부라졌으므로 내가 하루 종일 슬픔으로 다닙니다. 내 등은 열로 후끈거리고 내 몸에는 성한 곳이 없습니다.”(시편 38장. ‘다윗의 시’)

또한 구약성경에서는 질병과 고통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도 역시 신의 몫이다. “그가 너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며 너의 모든 병을 고치시고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하시며 너에게 풍성한 사랑과 자비를 베풀고 네 삶을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하셔서 네 젊음을 독수리처럼 새롭게 하신다.”(시편 103장. ‘다윗의 시’) 요컨대 의학사적 관점에서 보면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질병과 치유의 모습은 고대 그리스 신화와 매우 흡사하다.

에스파냐 화가 무릴로(Bartolome Esteban Murillo·1617~1682)의 작품 ‘베데스다 연못에서 마비 환자를 치료하는 예수 그리스도’. 신약성경에 나오는 베데스다 연못은 고고학 발굴로 예수 당시 예루살렘에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고 예수의 치유 기적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이 연못 주위에는 로마 제국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절(117~138년)에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 세워졌다.

에스파냐 화가 무릴로(Bartolome Esteban Murillo·1617~1682)의 작품 ‘베데스다 연못에서 마비 환자를 치료하는 예수 그리스도’. 신약성경에 나오는 베데스다 연못은 고고학 발굴로 예수 당시 예루살렘에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고 예수의 치유 기적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이 연못 주위에는 로마 제국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절(117~138년)에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 세워졌다.

신약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행한 여러 가지 기적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환자를 치유케 하는 기적이다. 기적의 수는 분류 방법에 따라 약간 달라질 수 있지만, 4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37가지 기적 가운데 치유 기적이 26가지로 70%나 차지한다. “예수님이 하신 일들이 이밖에도 많이 있으나 그것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에 그 책을 다 둘 곳이 없을 것이다”(요한복음 21장)라는 구절을 보면 예수의 치유 기적은 훨씬 더 많았을 수도 있다.

예수의 공생애(公生涯) 기간이 불과 2, 3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데에는 치유 기적이 크게 작용했으리라는 해석이 있다. 반면에 예수는 사람들이 자신이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기를 원했지, 단지 병을 치료받기 위해 자신을 찾는 데 대해서는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밖에도 다양한 신학적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한 신학적 논의와는 별도로, 예수가 행한 기적 가운데 치유에 관한 것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예수 시대에 질병과 그 치유는 민중들의 절박한 문제였다.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도 건강과 질병 치료를 위해 종교를 찾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합리적 의술이 별로 발달하지 않은 2000년 전 예수처럼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존재에게 의탁하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예수는 질병 치유를 통해 고통 받는 수많은 민중들을 만났던 것으로 보인다. 성경은 그 모습을 이렇게 전한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 ‘오실 분이 선생님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어 보게 하였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가서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걷고 문둥병자가 깨끗해지며 귀머거리가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 전파된다고 하라.’”(마태복음 11장) 예수 스스로 자신의 행적 가운데 치료 행위를 가장 크게 내세우고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질병과 고통을 인간이 저지른 죄에 대한 신의 징벌이자 인과응보로 묘사했다. 그럼 신약성경에서는 어떻게 그려지는가? “예수님은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이 된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누구의 죄로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났습니까? 자기 죄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의 죄도 부모의 죄도 아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이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기 위해서이다.’”(요한복음 9장) 물론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기 위해서’라는 종교적 선포가 뒤따르지만 질병을 인과응보적 방식으로 취급하는 데에서는 벗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예수가 죄와 질병이 서로 관계가 없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제는 병이 깨끗이 나았으니 더 무서운 병에 걸리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5장)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치유를 행한 주요한 질병은 중풍(마비),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 한센병(나병) 등이다. 그리고 예수의 주된 치유 방식은 다음과 같이 ‘말씀’을 통한 것이었다. “그때 사람들이 침대에 누워 있는 중풍병자 한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왔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네 죄는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 ‘일어나 네 침구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중풍병자는 일어나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마태복음 9장) 어느 개신교 성직자는 이것을 은유적으로 해석했다. 잔뜩 위축돼 자기 속에 갇혀 있던 사람에게 예수가 용기를 불어넣어 바깥세상을 향해 나가게 했다는 것이다.

또 소경과 귀머거리, 벙어리의 치유도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통해 진리를 보고 듣고 말할 수 있게 했다는 식이다. 말씀을 통한 중풍(마비),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 환자의 치유에 대해서는 현대의학적 설명도 가능하다. 이런 질병들은 신체에 뚜렷한 병리적 이상이 없이 심인성(心因性)으로 생길 수 있고, 따라서 심리적 치료로 나을 수 있다. 예수가 가진 강력한 카리스마와 그에 대한 환자의 굳은 믿음이 병을 낫게 했다는 설명이다.

예수의 치유 중에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한센병에 관한 것이다. (문둥병은 한센병을 비하하는 말로 의학계에서는 되도록 쓰지 않지만 여기서는 성경 그대로 인용한다.)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뒤따랐다. 마침 한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와서 절하며 ‘주님, 주님께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치실 수 있습니다’ 하였다. 예수님이 그에게 손을 대시며 ‘내가 원한다. 깨끗이 나아라’ 하고 말씀하시자 즉시 그의 문둥병이 나았다. 그때 예수님은 그에게 ‘너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말고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드려 네가 깨끗해진 것을 사람들에게 증거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8장)

한센병은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질병으로, 한센병 환자는 큰 죄를 저질러 신에게서 무서운 징벌을 받은 사람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가장 비천한 취급을 받았고 목숨은 붙어 있어도 사회적으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웃시야)도 산당을 헐지 않아 백성들이 계속 거기에 가서 제사를 지내며 분향하였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벌을 내리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문둥병자가 되어 별궁에서 지냈으며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 나라를 다스렸다.”(열왕기하 15장) 아무리 왕이라도 죄의 대가로 벌을 받아 한센병에 걸리면 제대로 살지도 죽지도 못했다. 웃시야 왕은 죽어서도 왕들의 묘에 장사되지 못하고 그 곁에 있는 초라한 묘지에 묻혔다. 하지만 예수는 이런 천덕꾸러기 환자의 몸에 자신의 손을 대어 천형을 치료했다. 당시의 상식과 통념을 뛰어넘는 행동이었다.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예수는 온 몸과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진정한 의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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