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뉴라이트

2015.11.17 22:21 입력 2015.11.17 22:27 수정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보수 혁신’ 기치 신자유주의 옹호…진보진영 “미 네오콘과 닮은꼴”

민주화 시대를 특징짓는 경향 중의 하나는 ‘사회운동에 의한 민주화’이다. 사회운동에 의한 민주화란 자발적 결사체, 사회운동, 공론장으로 이뤄진 시민사회가 민주화를 이끌어온 주요 동력이었음을 뜻한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시민사회를 이끌어온 것은 진보적 시민단체와 시민운동이었다. 주목할 것은 2000년대에 들어와 이러한 진보적 시민사회에 맞서 보수적 시민사회가 능동화했다는 점이다. 보수적 시민사회를 주도한 것이 ‘새로운 우파’를 의미하는 ‘뉴라이트(New Right)’였다.

자유주의연대 등 뉴라이트 단체들이 2005년 11월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뉴라이트 전국연합 창립대회를 갖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자유주의연대 등 뉴라이트 단체들이 2005년 11월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뉴라이트 전국연합 창립대회를 갖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뉴라이트의 기원으로는 2004년 가을에 등장한 지식인운동인 ‘자유주의연대’를 들 수 있다. 자유주의연대의 창립을 주도한 이들은 신지호(전 국회의원), 홍진표(시대정신 상임이사), 최홍재(전 국민대통합위원회 기획단장) 등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과거에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등 진보적 사회운동에 주력하다가 뉴라이트로 이념적 방향을 선회했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좌파에서 우파로 사상을 전향하는 게 아주 낯선 풍경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선 이러한 흐름이 자유주의연대로 나타난 셈이었다.

■‘시장 보수’ 표방한 자유주의연대

2004년 당시의 시점에서 보수세력은 중대한 위기를 겪고 있었다. 1997년과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한 보수세력은 2004년 총선마저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에 패배해 19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무릇 어떤 정치세력이든 위기에 봉착하면 젊은 세력이 혁신을 내걸고 등장하기 마련이다. 한국 사회 보수세력에겐 자유주의연대를 위시한 뉴라이트 사회단체들이 그 역할을 떠맡았다.

자유주의연대가 출범하면서 내건 10개 개혁의제들은 뉴라이트가 겨냥한 보수 혁신의 주요 내용을 보여준다. 첫째, 과거 청산보다 미래 건설에 초점을 맞춘다. 둘째, 국가주도형 방식에서 시장주도형 방식으로 경제시스템을 전환한다. 셋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열린 통상대국’을 건설한다. 넷째, 특권을 철폐하고 기회균등을 보장하되 결과에 승복하는 합리적 사회문화를 창출하며, 청부(淸富)를 권장하고 빈곤 해소를 추구한다. 다섯째, 법치주의, 다원주의, 사회적 공동선을 중시한다. 여섯째, 학생과 학교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교육혁신을 추구한다. 이어지는 의제들은 자유주의연대가 지향한 대외정책의 이념적 경향을 보여준다. 일곱째,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북한 대량살상무기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통해 전쟁 가능성을 제거하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한다. 여덟째, 한반도 전역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북한 인권 개선 및 민주화를 추구한다. 아홉째, 기존의 한·미동맹을 21세기 상황에 걸맞게 발전시키며, 주변국과의 우호관계를 강화한다. 열째, 문화·학술 등 연성권력(soft power)을 신장시키며, 세계 민주화에 기여한다.

자유주의연대가 제시한 개혁의제들을 다소 길게 인용한 까닭은 이러한 논리가 이후 뉴라이트를 내건 여러 사회단체들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연대는 무엇보다 시장주도형 경제시스템을 강조함으로써 신자유주의를 적극 지지했고,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를 중시함으로써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분명한 반대를 표명했다. 요컨대 자유주의연대의 출범은 우리 사회에서 ‘안보적 보수’에 맞서는 ‘시장적 보수’의 등장을 함축하는 것이었다.

■뉴라이트를 어떻게 볼 것인가

뉴라이트의 등장에 대해 보수세력은 적극 환영했다. 반공주의와 발전국가를 핵심 논리로 삼아온 한국 사회의 보수 이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자평했다. 주목할 것은 이 시기를 즈음해 등장한 박세일(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의 선진화 담론이었다. 2006년 박세일은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을 발표해 ‘공동체자유주의’와 이에 기반한 ‘선진화’를 제시했다. 공동체자유주의론과 선진화 전략은 뉴라이트의 사상적 기반과 정책 대안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으론 선진화론과 결합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뉴라이트전국연합 등의 대중운동 조직과 결합하면서 지식인운동으로 시작한 뉴라이트는 점차 정치운동이자 사회운동으로 변모해갔다.

진보세력은 뉴라이트의 논리가 기존의 ‘올드 라이트’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미국의 ‘네오콘’이나 일본의 ‘극우세력’을 연상시킨다고 비판했다. 진보적 시각에서 뉴라이트를 평가한 대표적인 연구는 정상호(서원대 교수·정치학)의 ‘미국의 네오콘과 한국의 뉴라이트에 대한 비교 연구’(2008)였다.

정상호에 따르면, 네오콘과 뉴라이트는 감세, 작은 정부,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차이점은 네오콘이 68혁명이 가져온 위기의식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했다면, 뉴라이트는 햇볕정책과 국가보안법 개정 등에 대해 보수세력이 반발한 연속선상에서 등장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네오콘이 중심 이념으로 신보수주의를 제시한 반면 뉴라이트는 핵심 가치로 자유주의를 내세웠다고 정상호는 지적했다.

흥미로운 것은, 뉴라이트가 이렇게 등장하자 진보세력 일각에서 ‘좋은정책포럼’ 등을 창립하고 ‘뉴레프트’를 표방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이러한 뉴레프트에 대한 진보세력 내의 반응은 뉴라이트에 대한 보수세력 내의 반응과 비교할 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 까닭은 뉴레프트의 등장이 기존 진보세력의 사회운동을 낡은 의미의 ‘올드 레프트’로 자리매김하는 의도하지 않은 ‘정치적 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신지호 등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하던 이들은 2008년 총선을 통해 정치사회에 진출하고 이명박 정부 아래서 여러 공직을 맡았다. 이 시기가 뉴라이트의 절정기였다. ‘시장적 보수’에 가까웠던 이명박 정부는 뉴라이트와 친화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로의 권력교체가 진행되면서 ‘안보적 보수’가 다시 국가권력의 중심을 차지하게 됨에 따라 최근 뉴라이트 세력은 과거와 같은 위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현재의 시점에서 돌아보면, 뉴라이트는 반공주의를 신자유주의로 바꾼 것을 제외하곤 자신의 이름에 담긴 ‘새로운(new)’ 모습을 제시하는 데는 대체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개인주의에 맞서는 공동체주의와 사회 해체에 맞서는 사회 통합에 있다. 시장에서의 경쟁을 특권화하려는 신자유주의가 공동체를 해체시키고, 사회 통합을 약화시켜 왔다는 점에서 뉴라이트의 핵심 논리는 아이로니컬하게도 보수주의의 기본 가치와 충돌해온 셈이다.


박세일의 ‘선진화론’

뉴라이트 사상과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이는 박세일(사진)이다. 그는 지식인이라기보다 ‘경세가’, 다시 말해 뜻을 이룰 상황이면 세상에 나아가 경륜을 펼치지만 그렇지 않으면 물러나 학문에 전력을 기울이는 이의 전형이다.

서울대 법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쳐온 박세일은 김영삼 정부에서 정책기획수석비서관 등을 맡았고,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2006년에는 보수적 싱크탱크인 한반도선진화재단을 창립해 왕성한 활동을 벌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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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세가로서의 박세일을 널리 알린 저작은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2006)이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어 ‘선진화’가 새로운 국가 목표가 돼야 한다는 데 있다. 선진화론은 두 가지 아이디어, 즉 철학으로서의 공동체자유주의와 국가 비전으로서의 선진화로 이뤄져 있다.

공동체자유주의는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자유주의를 뜻한다.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성찰적 배려와 자율적 책임을 중시하는 공동체자유주의는 한나라당 강령에도 실릴 만큼 보수의 새로운 철학으로 주목받았다.

또한 박세일은 제도와 정책의 선진화를 위한 5대 핵심 전략을 제시했는데, 교육·문화의 선진화, 시장 능력의 선진화, 국가 능력의 선진화, 시민사회의 선진화, 국제관계의 선진화가 그것이다.

선진화론에는 성취와 한계가 공존했다. 선진화론은 민주화를 넘어서는 보수의 새로운 시대정신, 즉 이념적·정책적 좌표를 제시하는 데 나름대로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박세일이 제시한 ‘부민덕국(富民德國)’은 산업화시대 부국강병의 21세기형 버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선진화론은 성장과 개방에 무게 중심을 둠으로써 분배와 복지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는 한계를 갖는다.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슬로건인 ‘선진 일류국가’의 토대를 제공했던 선진화론은 현실 속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채 정치적으로 소비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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