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소비와 욕망의 시대 인간성 회복 모색…사회심리학 지평 넓히다

2016.12.06 20:45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인본주의 사회심리학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933년 나치즘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프롬이 <소유냐 존재냐> 출간 2년 전인 1974년 5월 연구에 몰두하는 모습.  에리히프롬연구소(EFIT) 웹사이트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인본주의 사회심리학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933년 나치즘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프롬이 <소유냐 존재냐> 출간 2년 전인 1974년 5월 연구에 몰두하는 모습. 에리히프롬연구소(EFIT) 웹사이트

전후 서구 사상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전전(戰前) 서구 사상가들은 누구일까. 20세기 전반에 국한한다면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사회학자 막스 베버,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그들일 것이다. 20세기 후반 사상가들은 이 선배 사상가들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켜 왔다.

이들 중 특히 프로이트의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과 자크 라캉은 프로이트로부터 심원한 영향을 받았고, 철학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루이 알튀세르, 위르겐 하버마스 역시 자신의 이론을 구성하는 데 프로이트의 착상을 빌려 왔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1900~1980) 또한 프로이트의 영향이라는 자장 안에서 성장한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였다. 그는 두 얼굴을 갖고 있었다. 대중은 프롬을 매우 사랑했다. 그의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년), <사랑의 기술>(1956년),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 1976년)는 현재도 꾸준히 읽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프롬에 냉담했다. 그는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주변적 위치에 머물렀고, 그의 책들은 전문 연구서라기보다 대중적 저작들로 평가됐다.

이 기획에서 프롬을 소환하는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시민들을 위한 사상이 존재한다면 프롬은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상을 펼친 ‘시민 사상가’였다. 사상이 전문적 연구자들만의 독점물은 아니다. 둘째, 프롬을 지탱했던 것은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트주의, 그리고 인본주의였다. 어떤 사상이더라도 결국 대면하는 문제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이다. 프롬의 책들은 이 질문에 대해 여전히 주목할 만한 답변을 제공한다. <소유냐 존재냐>는 후기 프롬 사상의 대표적 저작이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1976년판).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1976년판).

■소유적 실존양식과 존재적 실존양식

<소유냐 존재냐>는 소유를 위한 삶과 존재를 위한 삶의 의미를 묻고 답한다. 프롬은 먼저 소유적 존재양식을 주목한다. 소유적 실존에서 내가 갖고 있는 그 무엇은 나를 존재하게 하는 주체이고 때때로 그것은 나를 소유한다. 소유가 사물에 관한 것이라면 존재는 체험과 연관돼 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생산적 활동의 산물이 아니라 그 활동의 질과 내면적 능동의 상태다.

프롬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소유적 실존양식이 인간 본성에 기원하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소유적 실존양식과 존재적 실존양식 모두 인간 본성에 잠재해 있는 가능성이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표출하려는 욕구, 활동하려는 욕구,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 이기심의 감옥에서 빠져나오려는 욕구 등을 포함해 존재하고자 하는 뿌리 깊은 욕구를 갖고 있다.

인간 내부에는 생물학적 소망에서 비롯된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와 타자와 하나가 됨으로써 고립을 극복하려는 존재하고자 하는 욕구가 존재한다. 어느 쪽이 우세한지는 환경적 요인에 달려 있다. 산업사회에선 이기적 행위가 총칙이 되는 반면 연대적 행위와 베풀고 나누고 희생하려는 소망은 억압된다고 프롬은 주장한다.

이 저작에서 주목할 프롬의 아이디어는 ‘사회적 성격’이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경제적 구조는 구성원에게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도록 하는 사회적 성격을 형성하게 하고, 이 사회적 성격은 다시 사회경제적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그에 따르면, 초기 자본주의에서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나타난 사회적 성격은 ‘시장적 성격’이다. 이제 인간은 자신을 교환가치로 체험하고 인품을 상품으로 제시한다.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심히 적대적으로 변화한다.

인간 성격구조의 근본적 변화만이 이러한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게 프롬의 결론이다. 현재의 고통을 의식하며, 그 원인을 인식하고, 고통 극복의 가능성을 알며, 특정 행동규범을 갖고, 생활습관의 변화를 깨닫는 게 근본적 변화의 조건이다. 요컨대, 소유의 욕구에서 벗어나 존재 지향의 욕구에 부응하는 것, 이에 기반을 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프롬의 희망이다.

■인본주의가 갖는 현재적 의미

지난 20세기 프로이트로부터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상가들로는 에릭슨, 마르쿠제, 라캉, 그리고 프롬이 손꼽혔다. 에릭슨이 자아의 성장 이론을 제시했고, 마르쿠제가 자본주의 변혁에서의 성 에너지 역할을 주목했다면, 라캉은 무의식의 주체로서 인간의 욕망을 분석했다. 프롬은 프로이트의 본능 이론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지만, 인간 행위에 본능보다 사회적 요인이 더 중요한 동기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견해로 이동했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프롬 사상에서 프로이트 못지않게 중요한 사상가는 카를 마르크스였다. 프로이트가 개인 본능을 중시했다면, 마르크스는 경제적 요인을 강조했다. 개인적·사회적 차원을 각각 주목하는 프로이트 이론과 마르크스 이론을 연결시키는 프롬의 개념이 ‘사회적 성격’이다. 사회적 성격에 따르면, 개인의 성격은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동시에 사회구조에 적응해 가면서 형성된 것이다. 이렇듯 인간 심리에 내재된 능동성을 이론화한 인본주의 사회심리학을 주조함으로써 프롬은 인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독일에서 태어나고 공부한 프롬은 나치즘이 등장하자 1933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의 삶에는 대공황과 나치즘,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 자본주의 황금기가 사회적 배경을 이뤘다. 이러한 야만과 절망의 시대, 그리고 소비와 욕망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그는 인간해방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인본주의는 보는 이에 따라 소박한 가치지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본주의는 21세기 현재에도 모더니티의 가장 중요한 가치다. 인본주의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프롬은 여전히 매력적인 사상가임에 분명하다.

■한국어판 저작은

<소유냐 존재냐>는 베스트셀러였던 만큼 여러 사람들에 의해 우리말로 옮겨졌다. 프롬에 관심 있는 이들은 현대사회에서 자아가 처한 심리적 상황을 날카롭게 해부한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함께 읽어보면 좋다.

■사상의 유행따라…지식·시민 소통 약해지자 밀려난 ‘프랑크푸르트 학파’

사상에도 유행이 존재한다.

우리 사회의 경우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엔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가 관심을 모았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엔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동구 사회주의 몰락 이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그 대신 프랑스 탈구조주의가 부상했다.

이러한 흐름에서 각 조류를 대표하는 하버마스, 마르크스, 푸코 사상에 대한 열풍이 불었다.

주목할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탈구조주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과거와 같은 선풍적 유행이 없었다는 점이다. 세계화론, 정보사회론, 사회적 자본론, 사회생물학 등 다양한 담론들이 지식사회 안팎에서 주목받았지만, 프랑크푸르트학파, 마르크스주의, 탈구조주의가 누렸던 담론의 유행은 찾기 어려웠다.

사상의 유행이 끝난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중요했다.

첫째, 우리 사회가 갖는 복합성의 증대가 어느 한 이론의 압도적인 영향을 불허했다. 인간과 사회를 분석하는 데는 다양한 이론들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둘째, 지식 담론들에 대한 시민사회의 관심이 엷어졌다. 1980~90년대에는 지식사회와 시민사회 간 소통이 활발했었다면, 21세기에 들어와선 그 소통이 많이 줄어들었다. 소통이 준 만큼 담론의 유행 또한 크게 일지 않았다.

돌아보면 사상의 유행에는 빛과 그늘이 존재했다. 유행을 타면 높은 평가를 받고 분야를 넘어선 주목을 받지만, 유행이 꺼지면 평가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자기 분야에서도 잊혀지고 만다. 이러다 보니 정작 중요한 이론들마저 유행의 구속을 받아 그 의의가 제대로 토론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프롬을 포함한 광의의 프랑크푸르트학파에 대한 관심은 그 하나의 사례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테오도어 아도르노 등의 <권위주의 성격>이나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은 한국인 사회심리를 분석하는 데 함의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유행이 끝난 탓인지 이 고전적인 연구들은 학설사를 공부하는 데 한 부분을 이루고 있거나 대학 신입생을 위한 필독서로 지정돼 있을 뿐이다.

사상의 유행 속에는 유행과 고전이 뒤섞여 있다.

소멸하는 유행의 거품 속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해 본질적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는 현대의 고전을 발견해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시민사회에 알리는 것은 인문·사회과학자들에게 부여된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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