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1987년·2015년 우리가 왜 서쪽으로 갔을까요

2016.12.09 20:33 입력 2016.12.09 20:39 수정
황선도 한국수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울릉도 오징어의 비밀

무리지어 유영하는 오징어 떼. FIRA 김광복 연구원 제공

무리지어 유영하는 오징어 떼. FIRA 김광복 연구원 제공

칠흑 같은 밤이다. 그러나 밖이 환하다. 선원들이 모두들 갑판 불빛 아래서 오징어를 낚는다. 오징어 잡는 걸 보니 한참 지난 과거가 생각이 났다. 대학 선상실습 때 일이다. 그때도 여름밤에 배가 바다에 닻을 내리고 있으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갑판으로 나와 오징어 낚시를 하였다. 낚시 한번 해보지 않은 초보자들도 오징어는 곧잘 낚아 올렸다. 난간에 밝힌 전구 밑으로 몰려든 오징어는 낚싯바늘에 낚였다는 표현보다는 서로 엉겨 붙어 올라왔다. 심지어 잡혔다가 떨어뜨린 오징어가 3초도 안되어 다시 낚였다. 이를 본 한 여학생 왈, “참새 머리보다도 더 멍청하네∼”라고 놀렸다. 그러나 이 초짜 해양학도는 오징어가 양성 주광성, 즉 빛을 쫓는 성질이 있어 어두운 밤중 밝은 불빛에 달려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한 소리다.

우리가 울릉도 오징어라고 부르는 놈의 공식 우리말은 살오징어이고 학명은 토다로데스 퍼시피커스(Todarodes pacificius)이다. 영어로는 커먼스퀴드(Common squid), 일본어로는 스루메이카(スルメイカ)라고 부른다. 연체동물은 분류체계가 복잡하여 종합적인 도감이 부족한 실정이지만, <한국패류도감>(민덕기 편저, 2014)을 기준으로 보면 살오징어는 연체동물문(門, Phylum Mollusca), 두족강(綱, Class Cephalopoda), 살오징어목(目, Order Teuthoida), 살오징어과(科, Family Ommastreohidae)에 속한다. 오징어의 길이는 다리 길이가 변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변형이 적은 외투의 길이 즉, 동장을 기준으로 한다. 살오징어는 다 자라면 동장이 30㎝ 이상이다. 외투는 원통형이고 꼬리부분은 원추형이다. 외투 등쪽 중앙에 넓고 검은 띠가 있다. 양쪽 지느러미를 펼치면 긴 마름모꼴이다. 지느러미는 외투의 꼬리 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며, 그 길이는 외투장의 30% 정도이다.

살오징어는 3개의 산란군으로 나뉘는데, 1∼3월에 산란하는 겨울발생군과 6∼8월 여름발생군, 그리고 9∼11월 가을발생군이 그것이다. 살오징어는 수심 200m 이하, 10~21도의 해저 수온, 염분 19.00% 이상의 환경에서 산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오징어가 품고 있는 알의 수인 포란수는 30만~50만개이며 알은 타원형으로 크기는 장경 0.8㎜, 단경 0.7㎜이다. 부화하면 보름 정도 유생으로 떠다니다가 변태를 하여 제대로 모양을 갖춘 어린 오징어가 된다. 태어난 지 1개월이 지나면 4∼5㎝로 자라며, 6개월이 지나면 동장 14∼19㎝, 체중 70∼160g으로 성장한다. 11∼12개월이 되면 동장 22∼27㎝, 체중 230∼430g으로 자라 수명을 다한다.

살오징어는 부화 후 10개월이 지나면 산란개체군 절반이 산란한다는 생물학적 최소형 크기인 동장 20㎝까지 성장한다. 오징어는 일생에 걸쳐 1회 산란하고 죽는다. 즉, 오징어의 수명은 1년으로서 생식주기를 되풀이하지 않고, 고도의 운동능력과 특수한 섭이방식 그리고 효율적인 소화를 하여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오징어는 낮에는 수온 5∼15도의 100∼200m 저층에 있다가 밤에는 수온이 높은 20∼50m 표층으로 부상하는 일주기 수직이동을 반복하기 때문에 내온성이 강해 5∼6도의 온도차가 있어도 충분히 견딘다.

1990년대 국립수산진흥원(지금의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신입 연구원으로 일할 때는 전국의 수협 위판장에서 수집한 어황자료를 분석해서 어획상황을 분석하고 어황예보를 하는 것이 업무였다. 어황예보란 기상청의 날씨예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듯싶다. 주간 단위로 전국에서 보고된 어황자료는 정확도가 다소 떨어지긴 하지만 직접 조사자료와 비교할 수 없이 방대한 자료이다. 여러 장소에서 보내온 수십년간 축적된 자료는 어떻게 과학적으로 분석하느냐에 따라 좋은 연구결과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젊고 의욕이 넘쳐 좌충우돌하고 다니던 어류 박사가 오징어 어황자료를 가지고 한편의 논문을 쓰게 되었다. 해양환경 변동에 따른 오징어 분포 특성에 관한 논문이 그거다.

살오징어는 우리나라 동해안을 비롯하여 남해, 서해와 일본 연안 및 동중국해를 포함하는 북서태평양의 전 연안 해역에 분포하며, 계절에 따라 남북으로 회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느러미 달린 물고기가 아니라 유영력이 크지 않을 것 같은 오징어가 그렇게 먼 거리를 이동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1980년부터 1994년까지 평균을 낸 월별 어장 자료를 분석하였더니, 오징어는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3월에 남해안에 분포하다가 4월 이후 동해로 북상하기 시작하여 8월 성어기에는 가장 북쪽인 대화퇴 해역에서 어장을 형성하고, 9월부터 남하하기 시작하여 겨울부터 봄철까지의 한어기에는 남쪽에서 월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적으로 동해 연안에서만 이루어졌던 오징어채낚기어업은 1975년 이후 자동조획기가 개발됨에 따라 먼바다까지 확장되었고, 현재는 동해 연안과 울릉도, 독도, 대화퇴 및 대마도 사이의 해역에서 오징어 조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오징어 어획량은 1920년대 중반에서 1940년대 후반까지는 1만t 이하의 수준이었다. 1950년 초반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어획량이 감소한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 증가하여 1963년에는 10만t을 넘었다. 이후 어획량은 감소하여 1977년에는 1만8000여t까지 낮아졌다가 1990년 이후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1996년 25만t으로 최고로 어획하였다가 2015년 15만t으로 다시 감소하는 등 변동을 보였다.

[전문가의 세계 - 漁! 뼈대 있는 가문, 뼈대 없는 가문] ③ 1987년·2015년 우리가 왜 서쪽으로 갔을까요

오징어 어획의 풍흉을 좌우하는 일차적인 요인은 자원 밀도이겠지만, 산란량과 가입량을 나타내는 재생산력도 큰 영향을 미친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조업 어장으로 들어오는 오징어 어군의 내유량과 내유시기에 영향을 미치는 해양 환경 조건을 들 수 있다. 북상하는 난류 세력과 남하하는 한류 세력이 만나 형성되는 수온전선대가 조업 어장 내에서 동서 방향으로 형성되면 북상하는 오징어에게는 수온장벽의 역할을 해 어군이 밀집됨으로써 어황이 좋아졌다. 반대로, 수온전선대가 연안을 따라 남북 방향으로 길게 형성되면 오징어 어군은 수온전선대를 따라 북상하는데 방해를 받지 않게 되므로 조업 어장이 북측 해역으로 올라감으로써 남측에서는 어황이 좋지 않아졌다. 이른바 ‘수온장벽’ 설이지만, 현재까지도 북측의 자료를 확보하기 어려워 검증되지 못해 ‘설’로서만 남아있다. 오징어의 경우 비늘이 없이 피부로 노출되어 있어 작은 수온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앞으로 남북한 공동연구과제로 남겨 두어야 하는 실정이다.

2015년 여름 동해에서 넘쳐나야 할 오징어가 서해에서 풍어였다는 뉴스를 접했다. 반면에 동해는 물이 차서 오징어가 잡히지 않아 어민들이 울상이라는 소식까지 보태졌다. 그러나 내게는 이 뉴스가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1987년에도 서해에서 오징어가 대풍이라는 소식이 신문지상을 도배한 적이 있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연구소에 근무할 때 이 뉴스가 사실인가 궁금하여 오징어 어황자료를 분석한 적이 있다. 1980년 이후 한국 연안을 동해와 서해로 나누어 어획량 변동 추이를 보면 동해에서는 1980년에 3만5000t에서 감소하기 시작하여 1986년에는 1만t 미만까지 낮아졌고, 1987∼1988년까지도 2만t 이하 수준이었다. 그러나 서해에서는 그와 반대로 1980년 중반까지 1만여t 수준에서 증가하여 1987년에는 2만t이 넘는 호황을 보여 동해보다 많은 어획량을 보였다. 그러나 1993년에는 다시 동해에 사상 유례 없는 호황이 나타났고 반면 서해는 2000여t 수준에 그쳐 동해와 서해가 서로 역전 현상을 보였다.

그렇다면 2015년 여름 서해 오징어의 풍어는 1987년 상황의 재현인가? 동해의 오징어가 서해로 갔다는 말인가? 나는 이것이 궁금하다. 20년 전 내가 논문에서 제시한 수온장벽설과 함께 남쪽바다에서 산란한 가을발생군과 겨울발생군의 북상 재가입에 영향을 주는 해류 수송 변동의 가능성도 열어두고 연구해볼 일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20년이 지났으니, 그만큼의 자료도 축적되었다. 이제는 오징어가 서쪽으로 간 까닭을 알아야 할 때이다.

오징어잡이 배. 경향신문 자료사진

오징어잡이 배. 경향신문 자료사진

오징어는 동해안에 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가는 생선이다. 반쯤 말린 오징어를 동해안에서는 ‘피데기’라고 부른다. 덜 건조한 오징어를 가리키는 경상도 사투리이다. 오징어는 배에서 잡자마자 널어 말린 것을 으뜸으로 친다. 어창에서 며칠씩 묵혀두거나 냉동했다가 말린 오징어는 하품이다. 이것을 구별하는 포인트는 오징어의 몸통 가운데 세로로 나있는 검붉은 줄이다. 이 줄은 오징어가 죽은 지 2~3일이 지나면 없어진다. 그러니까 말린 상태에서 이 줄이 굵고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오징어는 신선한 것이라는 증거이다.

마른오징어를 체축과 직각 방향으로 찢으면 잘 찢어지지만, 체축 방향으로 찢으면 잘 찢어지지 않는 것을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몸통 부분의 근육을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보면 체축과 직각 방향으로 폭이 넓은 근섬유층이 발달해있고, 체축 방향으로는 폭이 좁은 근섬유층이 늘어서 있다. 폭이 넓은 근섬유층의 결에 따라 잘 찢어지는 것이다. 마른오징어를 불에 구우면 체축과 직각 방향으로 오그라지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마른오징어를 집어 들면 손에 밀가루 같은 하얀 가루가 묻어나는데, 이게 바로 타우린이다. 오징어는 성숙하면 많은 양의 타우린이 생기는데, 오징어를 말릴 때 표피에 배어난 것이다. 오징어를 구울 때 나는 오징어 특유의 냄새도 타우린 때문이다. 오징어에 함유된 타우린은 간장 해독 작용이 있어 술안주인 동시에 숙취 해소로 아주 적합한 식품이라고 우기면 지나칠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상에 시원한 오징어국을 올려놓는다. 무를 숭숭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살짝 풀면 얼큰한 국물이 된다. 그뿐이겠는가?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란 이야기가 있었으니, “오징어 껌 씹고 있네∼.” 마른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었던 옛 추억이 떠오른다. 치과의사들은 어린이의 치아를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단단한 음식을 씹도록 권하고 있다. 마른오징어를 먹을 때 치아 맞물림으로 치아를 단련하고 하악골을 강하게 할 뿐만 아니라 뇌에 자극이 전달됨으로써 두뇌 발달을 돕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오징어는 지금 나에게 딱! 필요한 수산물이다. 건강한 몸짱 만들어 껌 대신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짝다리 한번 짚어보자.

▶필자 황선도

[전문가의 세계 - 漁! 뼈대 있는 가문, 뼈대 없는 가문] ③ 1987년·2015년 우리가 왜 서쪽으로 갔을까요


해양학과 어류생태학을 전공했고, 수산자원생태로 이학박사가 된 토종과학자이다. 20년간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일하면서 7번이나 이사하는 등 주변인으로 살았으나, 덕분에 어느 바닷가든지 고향으로 여긴다. 지금은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으로 해양생태계 복원과 수산자원 조성을 위해 일하는 ‘물고기 박사’다. 50여편의 논문을 썼고 저서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가 유명하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