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1세기가 앓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의 정체를 들추어내다

2016.12.13 21:48 입력 2016.12.14 16:32 수정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최대 위기인 ‘불평등’ 문제를 사회과학의 화두로 부각시키면서 국내에서도 ‘피케티 열풍’을 불러왔다. 피케티가 2014년 9월19일 한국을 방문해 ‘1% 대 99% 대토론회’에 참석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최대 위기인 ‘불평등’ 문제를 사회과학의 화두로 부각시키면서 국내에서도 ‘피케티 열풍’을 불러왔다. 피케티가 2014년 9월19일 한국을 방문해 ‘1% 대 99% 대토론회’에 참석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함께 모더니티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제도다. 이 자본주의는 성장이라는 빛과 불평등이라는 그늘을 동시에 안고 있다.

16·17세기에 시작된 서구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은 ‘황금시대’라 불린 제2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1960년대 말까지였다. 이 시기는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미국을 사례로 주조한 개념인 ‘대압착’ 시대이기도 했다. 대압착이란 부유층과 노동계급 간의, 노동계급 안의 불평등이 크게 줄어든 현상을 지칭한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하면서 불평등은 다시 증가했고, 이러한 경향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21세기 오늘날 불평등은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시련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시키고, 사회적 불평등은 문화적 통합을 훼손시킴으로써 우리 시대를 불안과 분노의 시대로 바꾸어 놓고 있다.

이 점에서 불평등을 분석하고 그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우리 시대 사회과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이 과제를 치밀하게, 그리고 설득력 높게 수행함으로써 불평등 해소를 사회과학의 화두로 부각시킨 이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1971~)다.

2013년 피케티가 발표한 <21세기 자본>(Le Capital au XXIe siecle)은 이듬해 영어로 번역되면서 ‘피케티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경제학 저작으로 흔치 않게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소득 재분배 정책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2014년 미국과 유럽의 지식사회는 ‘피케티 열풍’에 휩싸였다. 경제학자로서 대중들로부터 피케티만큼 큰 관심을 모은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전후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정도일 것이다.

토마 피케티의 대표저작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의 대표저작 <21세기 자본>.

■ <21세기 자본>의 주요 내용

<21세기 자본>이 세계적 이목을 끈 까닭은 두 가지다. 하나는 피케티의 지적 성실성이다. 그는 프랑스·영국·미국 등 선진국들의 300년에 걸친 장기 통계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에 내재한 불평등을 주목한다. 다른 하나는 선명한 주장이다. 역사적 분석 결과 19세기 ‘세습자본주의’가 21세기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고 그는 경고한다.

피케티의 논리는 간단하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더 높다면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지게 되고, 그 결과 소득분배가 더욱 불평등해진다는 게 그것이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시작된 후 경제성장률은 0.5%대(1700~1820)였다가 1.5%대(1820~1913)로 증가한 다음 3.0%대(1913~2013)로 높아진 반면, 자본수익률은 지난 300년간 4~5% 정도로 유지돼 왔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역사에서 자본수익률은 경제성장률을 앞서 왔고, 그 결과 불평등은 점점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피케티는 1914~1945년의 예외적 시기를 주목한다. 이 시기에 누진소득세 도입, 전쟁에 따른 파괴, 인플레이션 발생 등 우발적 요인들은 불평등을 잠시 축소시켰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불평등은 다시 강화되기 시작했다. 그 까닭은 영국 대처리즘과 미국 레이거노믹스가 추진한 감세와 선진국들의 낮은 경제성장률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피케티가 제시하는 21세기 자본주의 미래는 우울하다.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인구 성장과 기술 진보가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저성장이 지속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자본의 소득 몫이 커지고 그 힘이 더욱 강력해지는 세습자본주의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는 게 그의 전망이다. 이러한 불평등 강화에 맞설 수 있는 정책 대안으로 그는 누진적 소득세 개혁과 글로벌 자본세 도입 등을 제시한다. 특히 글로벌 자본세는 자본의 세계화 경향을 고려할 때 불가피하게 추진할 수밖에 없는 정책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피케티가 이 저작 맨 앞에 인용한 1789년 프랑스대혁명 당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제1조다. <21세기 자본>은 숫자를 다루는 경제학자로서 피케티의 불평등 해소라는 경제적 정의의 이상이 담긴 저작이다.

■ 피케티 옹호와 비판

<21세기 자본>은 영어로 번역되자마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진보적 경제학자 크루그먼은 최상위층의 부가 불평등의 매우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는 점을 피케티의 연구가 밝혔다고 높이 평가했다. 소수 엘리트가 지배하는 과두적 지배체제라는 현실 앞에 우리 인류가 위태롭게 놓여 있다는 게 피케티와 크루그먼의 경고였다.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널리 알려진 <경제학원론>의 저자인 미국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는 생산에 기여한 대가가 바로 불평등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사람들이 불로소득과 같은 부당한 이득에 반대하는 것이지 부의 불평등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라는 보수적 반론을 펼쳤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서구 사상사에서 사회적 평등에 대한 태도에 따라 좌파와 우파를 구분한 이는 이탈리아 정치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였다. <좌파와 우파>에서 그는 더 많은 평등을 원하는 그룹을 좌파로, 평등을 부정하지 않되 사회가 불가피하게 계층적일 수밖에 없다고 보는 그룹을 우파로 파악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견해에 입각한 정치세력 간 경쟁의 역사가 서구 모더니티의 정치·경제사를 이뤄 왔다.

문제는 21세기 현재 불평등의 지속가능성에 있다. 오늘날 불평등의 강화는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공동체로서의 사회를 점점 해체시켜 가고 있다. ‘1 대 99 사회’를 거부하려 했던 2011년 ‘월가 점령 시위’는 이러한 경향에 대한 시민적 저항을 상징한다. 우리 시대 화두인 불평등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21세기 자본>은 그 출발점을 제공한다.

■ 한국어판 저작은

<21세기 자본>은 장경덕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등에 의해 우리말로 옮겨졌다. 별책 부록인 ‘피케티 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에는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의 ‘해제’, 장경덕 위원의 ‘옮긴이의 글’,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의 ‘감수의 글’이 실려 있다.

■‘피케티 이론으로 한국사회 읽기’ 관련 책 쏟아져…이정우 ‘불평등의 경제학’ 등 주목

<21세기 자본>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번역된 나라가 우리나라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불평등의 점진적인 강화에 대한 지식사회와 시민사회의 관심이 높았던 때에 토마 피케티 연구가 소개된 터라 서구사회 못지않게 ‘피케티 바람’이 불었다. 이 바람은 2014년 9월 피케티의 방한과 함께 ‘피케티 열풍’으로 거세져 진보·보수 막론하고 모든 언론들이 피케티와 <21세기 자본>을 집중 보도했다.

이후 피케티와 <21세기 자본>을 다룬 책들이 적잖이 출간됐다. 그 가운데 주목할 저작의 하나가 류이근(한겨레신문 기자)의 <왜 자본은 일하는 자보다 더 많이 버는가>였다. ‘피케티와 경제 전문가 9명이 말하는 불평등 그리고 한국 경제’가 부제로 <21세기 자본>이라는 교과서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참고서라 할 만하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는 이준구(서울대 명예교수)의 <21세기 자본> 서평, 피케티 인터뷰, 피케티와 이강국(리쓰메이칸대 교수)의 대담을 통해 피케티 경제학을 소개한다.

2부는 이정우(경북대 명예교수), 이상헌(국제노동기구 사무차장 정책특보), 홍훈(연세대 교수), 신관호(고려대 교수), 이강국 인터뷰들을 통해 <21세기 자본> 깊이 읽기를 안내한다.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경제학자들과의 인터뷰인 만큼 다양한 시각에서 <21세기 자본>의 성취와 한계를 조명한다.

3부는 김낙년(동국대 교수)의 ‘피케티 방법론으로 본 한국의 불평등’, 강병구(인하대 교수)의 ‘피케티의 해법과 조세 정책’, 이유영(조세정의네트워크 대표)의 ‘금융 세계화와 최고경영자의 보수’를 통해 한국의 불평등과 글로벌 자본세 등을 다룬다.

[김호기의 세상을 뒤흔든 사상 70년] (38)21세기가 앓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의 정체를 들추어내다


우리 사회 불평등에 대해 관심을 둔 이들에게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저작으로 이정우(사진)의 <불평등의 경제학>(2010)을 추천한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성장 위주 정책을 추진한 결과 계층 간 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파악한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이 저작은 불평등의 다양한 쟁점들인 소득·교육·노동시장·노동조합·차별·토지·빈곤·복지 등을 심도 있게 분석함으로써 우리 사회 불평등 현실에 대한 입체적 이해를 제공한다. 참여정부 정책실장이라는 저자의 개인적 경험이 행간에 잘 녹아 있는, 이론과 현실의 생산적 종합이 뛰어난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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