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오래되고 낡은 집, 하지만 청년들이 만든, 청년들을 품는 집

2016.12.16 21:08 입력 2020.11.17 17:17 수정

게스트하우스 ‘순천댁’

2014년 12월 문을 연 전남 순천의 게스트하우스 ‘순천댁’은 여행객들의 숙소에 그치지 않고 지역 청년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2014년 12월 문을 연 전남 순천의 게스트하우스 ‘순천댁’은 여행객들의 숙소에 그치지 않고 지역 청년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꼭 서울이어야만 하나.’

2년 전 김혜민씨(30)가 대학 시절을 보낸 마을로 다시 내려와 ‘순천댁’이 된 것은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국내 여행 바람이 불면서 순천에도 게스트하우스 ‘붐’이 일던 때였다. 전남 순천역 앞 큰길을 지나 5분 정도 걸으면 닿을 수 있는 골목, 지은 지 수십년이 넘은 낡은 주택들 사이에 2014년 12월 ‘순천댁 게스트하우스’의 간판을 단 집을 만들었다.

블로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여행객을 불러 모았다. 문을 연 지 한 달 만에 18개 침대가 꽉 들어찼다. 하루에 예약 문의하는 전화만 100통이 걸려왔다. 김혜민씨가 지역의 유명 숙소가 된 순천댁으로 청년들을 불러 이들의 사랑방으로 만든 것은 ‘서울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그의 ‘철학’을 나누고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전남 순천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순천댁’ 주인 김혜민씨(왼쪽)가 지난 2일 이곳을 방문한 청년들과 저녁을 먹은 뒤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영민 기자

전남 순천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순천댁’ 주인 김혜민씨(왼쪽)가 지난 2일 이곳을 방문한 청년들과 저녁을 먹은 뒤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영민 기자

경기 수원시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경남 산청군 지리산 중턱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던 김혜민씨에게 ‘서울’은 동경의 도시였다. 순천에서 대학을 다녔지만 그래도 ‘서울에 가야 무엇인가 이룰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가 컸다.

“계속 지방에만 살아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끝없이 서울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어요. 지방 친구들은 대부분 문화적 갈증이 있거든요. 구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은 것도 이유입니다. 하지만 상경해도 외롭고 힘든 일상을 살게 되더군요.”

게스트하우스 ‘순천댁’ 내부. 김영민 기자

게스트하우스 ‘순천댁’ 내부. 김영민 기자

대학을 졸업하고 문화 기획자를 꿈꾸던 그 역시 서울로 향했다. 하지만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친구네 집에 살면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 생계를 이어갔지만 팍팍한 서울살이는 결국 6개월 만에 힘에 부쳐 끝이 났다. 다시 목포로 내려와 사회적기업인 ‘아름다운 가게’에서 4년을 일했다. 김혜민씨는 “어릴 때부터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이런 구조에서 살 수밖에 없다면 가치 있는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고 사회적기업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거대한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부를 쌓아가는 것보다는 동네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고 싶었다. 서울이 아니어도 내가 살던 곳에서 꿈을 이룰 수 있었으면 했다. 그러다 접한 것이 청년들의 활동이었다. 실업과 좌절된 꿈, 기회의 박탈, 높은 사회의 장벽에 갇힌 청년들의 문제를 지역 단위에서 실마리를 찾아보려는 ‘작당’들이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청년허브’에서 일하면서 인연이 된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순천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해보는 게 어떠냐는 얘기가 나왔다.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사는 집에서 생계를 해결하면서 출퇴근도 자유로운 일이지 않는가. 모아둔 돈만 날리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가 꿈꾸던 가치 있는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수기엔 여행자들의 숙소가 돼 생계를 해결하고 비수기엔 지역 청년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집이면 될 것 같았어요. 지역 청년들의 생태계를 활성화해보자는 거죠. 우리 집이 청년들에게 ‘비빌 언덕’이 됐으면 좋겠더라고요.”

순천은 1주일 동안 기차로 전국 각지를 여행할 수 있는 티켓인 ‘내일로’를 이용해 전역을 누비는 청년들, ‘내일러’들의 성지이기도 했다. 순천역 근처에 집을 가지고 있던 80대 할아버지를 설득해 청년들의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기로 했다. 제재소에서 나무를 사서 침대와 책상, 탁자 등을 직접 만들었다. 마당에 무화과 나무가 있는 작은 주택에 텃밭을 가꾸고, 장독대와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이 걸려 있는 ‘순천댁’의 예스러운 풍경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마련됐다.

문을 연 후 1년 동안 게스트하우스에는 수많은 여행객이 다녀갔다.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김씨는 “게스트하우스도 어쨌든 사업이라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때까지 집중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순천 청년들과 타지 청년들이 저녁을 함께 먹으며 가볍게 서로의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틈틈이 순천 곳곳을 다니면서 지리와 문화 등 ‘지역살이’를 탐색했다.

게스트하우스로 어느 정도 정착을 하자 김씨는 본격적인 ‘청년활동’에 나섰다. 우선 청년들끼리 서로의 목소리를 공유할 자리가 필요했다. 2015년 12월 순천 문화의거리에 있는 도서관 공간을 빌려 ‘서울에 가야 해? 나 순천에서 잘 살고 싶은데’라는 주제로 오픈 테이블을 마련했다. 20여명의 청년들이 모였다. 지역에서 겪는 문화적 갈증과 생활 속 문제를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순천이 살기 좋은 곳이고 순천에서 앞으로도 살고 싶은데 청년들은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하더라고요.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일자리, 문화적인 환경이 부족하다는 데 모두 공감했어요. 청년들이 움직임이 없고 섬처럼 흩어져 있어서 외롭다는 걸 느꼈죠.”

이후 이곳에서 알게 된 청년들과 함께 ‘청년순천네트워크’(청순넷)라는 단체를 꾸렸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 남은 청년들이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뻘짓(이상한 일)도 같이 하면 잼있다(재미있다)”며 주변의 청년들을 불러 모아 8명이 멤버가 됐다. 청년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 된 ‘공무원’을 파헤치기 위해 전직 공무원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공정무역과 염색을 배우는 강좌도 열었다. 전자레인지로만 요리를 하는 경연대회와 악기연습 같은 지역의 문화행사도 만들었다. ‘순천댁’ 마당에선 한 달에 한두 번씩 동네 젊은 친구들이 함께하는 ‘고기 파티’도 열린다.

지난 2일 저녁 순천댁에 동네 청년 김동조씨(34)가 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일을 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니트족’이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비슷한 또래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삶의 방향을 찾았다고 한다. 동조씨와 함께 순천댁에 온 김성인씨(32)는 6개월 전 순천에 내려와 목수일을 하며 살고 있다. 셋은 같이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으며 청년 창업에 대해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이곳은 발길이 닿는 곳에서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머물며 살아보는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이면서 순천의 청년들이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일들을 구상하려 모이는 집이었다.

순천 청년들의 ‘작당’이 알려지자 순천시 등 공공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순천시가 지난 9월 청년기본 조례를 제정하는 데도 청순넷이 큰 역할을 했다. 시와 청순넷은 청년들의 고민을 듣는 자리와 청년정책 캠프를 통해 청년들의 구상을 정책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들을 이어갔다. 순천시의 새 조례에 따라 앞으로 53명의 청년들로 구성된 ‘청년정책협의체’가 청년 일자리와 문화, 교육과 복지 등 분야별 정책을 시에 제안하게 된다. 김혜민씨는 여기서 부운영위원장을 맡게 됐다.

김혜민씨가 순천댁 게스트하우스를 청년들의 목소리를 공유하는 집으로 만든 것은 청년들이 갖지 못한 ‘안전한 관계망’을 위해서였다. “젊은 시절엔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고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측면도 있어요. 그러다 실패했을 때, 생각대로 되지 않아 굴러떨어졌을 때 받쳐주는 것이 없으면 낙사할 수밖에 없어요. 이때 이들을 지켜주는 것이 관계망이에요. 불안하거나 외로울 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끔, 서로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그런 안전한 관계망 말입니다.”

이 지역의 청년들이 계속 순천에서 살면서 꿈을 꾸고 문제가 생겨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서로의 목소리를 나누는 장소, 그것이 순천댁이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두는 이유라고 했다. 김혜민씨는 필요하다면 ‘순천댁’을 여러 청년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셰어하우스나 책을 읽으며 숙박하는 ‘북스테이’로 바꾸는 방식도 생각해보려 한다. 무엇이 됐든 그 집은 지역의 청년들의 지역살이를 해가는 데 ‘비빌 언덕’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 시리즈 끝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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