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원기회복 대명사, 낙지

2017.04.19 21:53 입력 2017.04.19 21:57 수정
이학박사 황선도

나, 낙지…병든 소도 일으킨다고 자산어보에 써있지, 팔이 길어 ‘롱암옥토퍼스’라 불리지, 암컷은 알 부화시키고 생이 끝나지

낙지, 누구냐? 너는!

[전문가의 세계 - 漁! 뼈대 있는 가문, 뼈대 없는 가문] ⑦  원기회복 대명사, 낙지

<올드보이>는 우리나라 영화사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명작 중 하나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03년에 무려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이후 미국 할리우드에서 이 영화를 리메이크했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명장면 중 하나로 소름끼치는 낙지 신을 들 수 있다. 평범한 직장인 오대수(최민식 분)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길을 가다가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해 이상한 독방에서 감금된다. 그가 그곳에서 15년간 오로지 군만두만 먹고 고난의 나날을 보내다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내보내져 우연히 들른 일식집에서 산 낙지를 우걱우걱 먹는 장면이 있다. 굳이 소름끼친다고 표현한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는 산 낙지가 별미이지만, 서양에서는 낙지를 먹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굉장히 혐오스러운 괴물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서양인들에게 낙지를 산 채로 먹는 장면은 놀라움 그 이상의 공포였을 것이다.

남도에서는 소가 새끼를 낳거나 여름에 더위를 먹고 쓰러졌을 때 큰 낙지 한 마리를 호박잎에 싸서 던져주면, 이를 받아먹은 소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 그만큼 낙지가 원기회복에 좋다는 것이다. 실제로 예전에는 산후조리용 음식으로 낙지를 넣은 미역국을 최고로 쳤다. 국물이 불그스레 우러나며 달콤하고 깊은 맛을 내니, 임산부들이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겠다.

둘 중 수컷 낙지는? 낙지는 눈이 있는 등 쪽을 보면서 좌우 각 4개의 팔을 나눈다. 가장 길이가 긴 아래쪽 팔이 1번이다. 수컷의 경우 왼쪽 3번 팔이 오른쪽 3번 팔과 비교해서 유난히 짧고 끝이 뭉뚝하다. 이 팔은 교접완(交接腕)으로 교미할 때 쓰는 기관이다. 암컷 낙지의 경우 좌우 세 번째 팔은 모두 끝이 뾰족하고, 길이 차이가 크지 않다. 따라서 왼쪽이 수컷, 오른쪽이 암컷이다.

둘 중 수컷 낙지는? 낙지는 눈이 있는 등 쪽을 보면서 좌우 각 4개의 팔을 나눈다. 가장 길이가 긴 아래쪽 팔이 1번이다. 수컷의 경우 왼쪽 3번 팔이 오른쪽 3번 팔과 비교해서 유난히 짧고 끝이 뭉뚝하다. 이 팔은 교접완(交接腕)으로 교미할 때 쓰는 기관이다. 암컷 낙지의 경우 좌우 세 번째 팔은 모두 끝이 뾰족하고, 길이 차이가 크지 않다. 따라서 왼쪽이 수컷, 오른쪽이 암컷이다.

낙지는 다리가 많고 발달되어 있어 다리가 부실한 모든 증상, 즉 각기나 신경통 치료에 특효라고 한다. 어린아이들의 팔다리가 힘이 없이 축 늘어져 있을 때 낙지를 기름에 발라서 매일 한 마리씩 정오에 먹으면 좋다는 주술 같은 요법도 전해온다. 낙지에는 필수아미노산인 타우린(Taurine)과 히스티딘(Histidine) 등이 들어 있어 간 기능을 좋게 해주고 적혈구 형성을 도와 몸에 힘이 나게 한다.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산 낙지를 먹고 괴력을 발산하는 데는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 셈이다.

이미 정약전 선생은 낙지가 힘을 내는 식품이라고 언급하였다. <자산어보>에는 낙지를 ‘석거(石距), 낙제어(絡蹄魚)’라고 묘사하여, ‘큰 놈은 4~5척이고 모양은 문어를 닮았으나 발이 더 길다. 머리는 둥글고 길다. 갯벌 구멍 속에 들어가기를 좋아한다. 9~10월이 되면 배 속에 밥풀처럼 생긴 알이 있어 즐겨 먹을 수 있다. 겨울에는 틀어박혀 구멍 속에 새끼를 낳는다. 빛깔은 하얗고 맛은 감미로우며 회나 국 또는 포에 좋다. 이를 먹으면 사람의 원기를 북돋운다’고 하였다. 또한, ‘말라빠지고 쇠약해진 소에게 낙지 서너 마리를 먹이면 곧 건실해진다’고도 썼다.

현대학문으로 돌아와 살펴보면, 낙지(Octopus minor)는 분류학상으로 문어과, 문어속에 속한다. 영어로는 채찍 같은 팔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휩암옥토퍼스(Whip arm octopus), 또는 팔이 길다고 해서 롱암옥토퍼스(long arm octopus)라고 부른다. 일본어로도 역시 팔이 길다고 데나가다고(テナガダコ)라고 이름 붙여졌다. 각기 다른 나라의 낙지 이름을 봐도 문어, 주꾸미와 비교해 유난히 팔이 긴 게 특징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석거, 소팔초어, 낙자, 낙쭈, 낙찌, 낙치로 불리고, 요즘은 지역에 따라 펄낙지, 세발낙지, 돌낙지, 꽃낙지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낙지의 몸통은 긴 난원형이며, 팔은 매우 길고 가늘다. 전장이 30~40㎝ 정도이며, 최대 70㎝까지 성장한다. 구조를 보면 모든 두족류가 그러하듯 몸통, 머리, 팔로 구성되어 있다. 머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몸통에 심장, 간, 위, 장, 아가미, 생식기가 들어 있다. 몸통과 팔 사이에 위치하는 머리에는 뇌가 있으며, 좌우 한 쌍의 눈이 붙어 있다. 머리 아래 부위에 나 있는 주둥이처럼 보이는 수관으로 물을 빨아들여 호흡을 한다. 머리에 붙어 있는 여덟 개의 팔 안쪽에는 흡반이 1~2열 있어 바위에 붙거나 갑각류나 조개를 움켜쥘 때 쓴다. 팔을 벌려보면 그 가운데 입이 있는데, 날카로운 턱판이 있고 그 속에 치설이 있어 잡은 먹이를 으깨어 먹는다.

연안 조간대에서 심해까지 분포하지만 얕은 바다의 돌 틈이나 갯벌에 구멍을 파고 산다. 간의 뒤쪽에는 먹물주머니가 있어 쫓기거나 위급할 때 먹물을 내어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심지어 이 먹물로 먹이생물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킨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문어류와 같이 여덟 개 다리가 방사형으로 나 있을 경우에는 좌우상하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기준을 정해놨는데, 눈이 있는 등 쪽을 보면서 좌우 각 4개의 팔을 나누며 가장 길이가 긴 아래쪽 팔을 1번으로 해서 위쪽으로 번호를 매겨 맨 위쪽 팔이 4번이 된다. 참 객관적인데, 이게 과학이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낙지의 암수를 구별하면 의외로 간단하다. 수컷의 경우, 눈이 있는 등 쪽을 바라봤을 때 왼쪽 3번 팔이 오른쪽 3번 팔과 비교해서 끊어먹은 것처럼 유난히 짧고 끝이 뭉뚝하다. 이 팔이 교접완(交接腕)으로 교미할 때 쓰는 기관이다. 그런가 하면 암컷 낙지의 경우 좌우 세 번째 팔은 모두 끝이 뾰쪽하며, 그 길이 차이가 크지 않다.

외투장(몸통길이)이 4.5㎝ 이하는 모두 미숙이고 8.0㎝가 되면 성숙한 낙지다. 무리 중 절반이 산란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지는 크기인 생물학적 최소형은 7.06㎝이다. 그러니까 외투장 7㎝보다 작은 낙지를 잡으면 낙지 가입량이 감소하는 원인이 되고, 급기야 낙지를 지속적으로 잡아먹기 힘들게 된다는 것이다. 포란수는 어미의 크기에 따라 다르나 평균적으로 130여개로 다른 문어류에 비해서 알의 수가 적은 편이다.

산란기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대게 5~7월로 알려져 있는데, 6월을 산란 성기로 볼 수 있다. 교접 후 산란하기까지는 72~98일이 걸리며, 수온이 낮을수록 늦어진다. 산란할 때 문어와 주꾸미가 꽃 모양의 난방이나 포도송이 모양으로 여러 개의 알을 붙여놓는 것과 달리 낙지는 몸에서 황록색의 부착물질을 내어 벽에 바른 다음 알을 한 개씩 매달아놓는다. 인공부화할 경우 73~90일이 걸리며, 역시 수온이 낮으면 더 오래 걸린다. 그런데, 어미가 직접 알을 관리할 경우에는 1~2일 만에도 부화된다고 하니, 엄마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렇게 먹지도 않고 온몸으로 알을 부화시킨 어미는 체중이 반으로 줄고, 2~3일이 지나 결국은 죽는다. 수컷은 교미 후 죽고, 암컷은 홀로 남아 새끼를 부화시키고 죽는다. 어느 생명이든지 어미의 자식 사랑은 숭고함 그 자체이다.

어미낙지와 산란한 알.  곽석남 박사 제공

어미낙지와 산란한 알. 곽석남 박사 제공

알 속에서 모든 기관이 발달된 새끼는 알 껍질을 찢고 발부터 나온다. 이때 체장은 4㎝, 체중은 0.2g이다. 부화하자마자 활발하게 헤엄치며 노는 것이 철없어 보인다. 인간들이 자기 혼자 큰 줄 아는 것과 매한가지이다. 그래도 낙지는 부끄러운지 낮에는 숨고 밤에 나가논다.

목포를 중심으로 신안과 무안에서 낙지를 잡는 전통적인 어획 방법으로 낙지연승(주낙, 줄낚시), 도수(맨손), 가래(삽) 등의 어구어법을 들 수 있다. 1990년대 1만t 이상 어획되었던 낙지가 2000년대 초반에는 5000t으로 60%나 감소되어 자원관리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이와 같이 자원이 줄어드는 원인은 소형기선저인망을 이용해 불법조업을 하고 생물학적 최소 체장보다 작은 어린 낙지를 잡기 때문이다. 지역적으로는 전남이 어획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다음으로 경남 30%, 충남 9% 등의 순으로 서남해 갯벌에서 주로 생산되고 있다. 계절적으로는 3~5월의 봄 어기와 9~11월의 가을 어기로 나뉘는데, 가을철 어획량이 더 많다.

세발낙지

세발낙지

발이 세 개라서 ‘세발낙지’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은 이제 없다. 무안에서 5~6월에 나는 어린 낙지의 발이 국수발처럼 가늘어서 가늘 세(細) 자를 붙여 ‘세발낙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졌다. 한편, 오랫동안 현장에서 낙지를 다루었던 김동수 박사는 논문에서 지리적으로 서로 가까운 중국 청두의 낙지와 서해안 가로림만 낙지는 유사한 반면, 이들 낙지가 거리가 떨어져 있는 서남해안 탄도만과 득량만 낙지와는 형태적 차이가 있다고 보고하였다. 수심이 깊은 곳에 사는 낙지는 갯벌에 사는 낙지에 비하여 팔이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서남해안 갯벌에 사는 낙지를 발이 가늘고 길어 ‘세발낙지’라고 부르게 된 과학적인 근거를 또 하나 제공한 셈이다.

무안에서 시원하게 국물과 함께 먹는 ‘연포탕’이나 낙지를 통째로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아 양념장을 발라 구워먹는 ‘낙지호롱구이’에 세발낙지를 으뜸으로 쳐준다. 서산에서는 ‘밀낙’이라 부르는 ‘박속낙지탕’은 박속을 긁어내 끓인 국물에 산 낙지를 살짝 익혀 먹은 후 햇밀을 갈아 만든 밀칼국수를 넣어 먹는다. 낙지 맛은 계절과도 관계가 깊다. 서남해안 세발낙지나 서해 중부의 밀낙은 음력으로 4~5월, 그러니까 늦은 봄에서 초여름의 낙지가 어리고 야들야들할 때가 제맛이다. 그런가 하면 한여름 펄 속에서 충분한 먹이를 먹으며 온몸에 맛과 영양분을 듬뿍 담고 있는 가을철 성숙한 낙지 한 마리는 인삼 한 뿌리와 같다는 옛말이 전해올 정도이다.

그런가 하면, 낙지와 비슷한데 꼭 그 낙지는 아닌 유사종으로 주꾸미를 떠올릴 수 있다. 주꾸미는 문어와는 달리 낙지와 크기도 고만고만하고 낙지보다 다리가 좀 더 짧을 뿐 생김새도 비슷하다. 문어가 동해를 대표하고 낙지가 남해에서 주로 난다면, 주꾸미는 서해에서 주로 산다. 그러니까 낙지가 갯벌 구멍 속에 납작 숨어살며 팔만 내밀어서 먹이를 찾는 겁 많고 게으른 놈이라면, 주꾸미는 발을 쭉쭉 펴며 발길질하면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호기심 많고 부지런한 놈이라고 할 수 있다.

낙지보다 짧은 팔~ 나는 쭈꾸미(X) 주꾸미(○) 랍니다

낙지보다 짧은 팔~ 나는 쭈꾸미(X) 주꾸미(○) 랍니다

주꾸미는 전체 체장이 10㎝ 내외의 소형 팔완류이며, 최대 30㎝까지 자란다. 낙지보다는 발 길이가 짧고, 다리와 두 눈 사이의 좌우에 황금빛 동그라미가 그려진 ‘금태’ 무늬가 있다. 얕은 조간대 바위틈, 모래와 자갈 바닥에 주로 살며 밤에 활동한다. 수명은 1년이다. 주꾸미는 산란할 때 바닷속 굴이나 바위 틈새 같은 오목한 곳에 들어가 포도송이 모양의 알 덩어리를 붙여놓는다. 이런 산란 습성을 익히 알고 있는 서해 어민들은 피뿔고둥의 빈 패각으로 ‘주꾸미 소라방’을 만들어 주꾸미를 잡는다.

주꾸미가 “쭈꾸미”라고 격한 발음으로 불리고 있는 것은 그만큼 세상 살기가 빡빡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화가 났을 때 발음이 세지고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우리네 삶이 조금만 더 넉넉하고 여유롭다면 오가는 말투도 순해질 것인데 말이다. 요즘 어수선한 세상. 말에서 칼날을 내리자.

[전문가의 세계 - 漁! 뼈대 있는 가문, 뼈대 없는 가문] ⑦  원기회복 대명사, 낙지

필자 | 황선도

해양학과 어류생태학을 전공했고, 수산자원생태로 이학박사가 된 토종과학자이다. 20년간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일하면서 7번이나 이사하는 등 주변인으로 살았으나, 덕분에 어느 바닷가든지 고향으로 여긴다. 지금은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으로 해양생태계 복원과 수산자원 조성을 위해 일하는 ‘물고기 박사’다. 50여편의 논문을 썼고 저서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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