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용왕님, ‘바다 토끼’ 간은 드시면 안돼요

2017.06.22 21:56 입력 2017.06.22 22:13 수정
이학박사 황선도

‘특별한 맛’ 군소·군부

군소는 서양에서는 토끼와 닮았다고 해서 ‘시헤어(sea hare)’, 즉 바다토끼라고 부른다. 토끼가 풀을 뜯어먹듯이 군소도 해조류를 뜯어먹고 산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형상이 알을 품은 닭과 같다”며 “영남 사람들이 먹는다”고 소개돼 있다. 해녀들은 군소를 잡으면 일단 배를 갈라 색소를 완전히 빼는데, 색소에 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박수현 국제신문 기자 제공

군소는 서양에서는 토끼와 닮았다고 해서 ‘시헤어(sea hare)’, 즉 바다토끼라고 부른다. 토끼가 풀을 뜯어먹듯이 군소도 해조류를 뜯어먹고 산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형상이 알을 품은 닭과 같다”며 “영남 사람들이 먹는다”고 소개돼 있다. 해녀들은 군소를 잡으면 일단 배를 갈라 색소를 완전히 빼는데, 색소에 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박수현 국제신문 기자 제공

내게 추억이란 ‘엄마’이다. 살아오면서 산해진미를 먹어봤어도 나이가 들면서 결국 찾는 건 ‘엄마의 손맛’이었다. 같은 이치로 처음 비린내를 맡게 해줬던 어부는 내게 ‘갯가 엄마’이다.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언젠가 뱃일 끝에 투박한 손으로 데치고 썰어 초고추장을 듬뿍 묻혀 먹여줬던 추억을 찾아 나선다.

내가 다니는 기관의 사보를 만들 때 국제신문 박수현 기자에게 원고를 청탁한 인연이 있다. 그는 직접 바닷속으로 들어가 수중사진을 찍고 기사를 쓰는 기자다. 그에게 들은 군소에 얽힌 옛날이야기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별주부전>과는 달리 도망 나오지 못하고 용궁에 눌러앉아 사는 토끼가 있다는 이야기다.

먼 옛날 용왕님이 큰 병이 들었다. 토끼 간이 이 병에 특효라 해서 충직한 신하 별주부가 육지로 나가 온갖 감언이설로 토끼를 꼬드겨 용궁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토끼는 자기 간을 뭍에 두고 왔다고 재간을 부려 나가서 가져오겠다면서 육지로 도망쳤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후속이 있었다고 하는데, 충복인 거북이의 집요함으로 결국 토끼는 용왕님에게 간을 빼주고 용궁에 눌러앉아 호위호식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명색이 과학자인 내가 이 사실을 믿으란 말인가. 박 기자는 실제로 바닷속에서 그 토끼를 만났다고 하면서 직접 찍은 사진을 증거로 내밀었다. 내 눈에는 토끼를 꼭 빼닮은 군소가 보였다.

현명한 독자들은 눈치챘겠지만, 박수현 기자의 글을 내 멋대로 각색한 것이다. 그는 현장감 풍부한 해양생물학자이다. 군소가 토끼로 보인 이유를 설명했다. 군소의 머리에는 두 쌍의 더듬이가 있는데, 작은 것은 촉각을, 큰 것은 냄새를 감지한다. 이 중 큰 더듬이가 토끼의 귀를 닮아 영락없는 토끼처럼 보인다고…. 그래서 군소를 두고 어떤 어부들은 ‘바다토끼’라 부르고 있다. 영미권에서도 군소를 ‘시헤어(Sea hare, 바다토끼)’라 한다.

군소를 바다토끼라고 부른 것은 단지 겉모습뿐 아니라 토끼가 풀을 뜯어먹듯이 군소가 바다풀인 해조류를 뜯어먹는 식습관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바닷속을 유영하다보면 모자반 밑동이나 엽상체에 올라타 있는 군소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군소는 땅 위에 사는 토끼만큼 다산(多産)의 동물이다. 박 기자는 봄·여름 바닷속을 다니다 보면 자웅동체로 암수한몸인 군소들이 서로 껴안고 여러 마리가 함께 연쇄교미를 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해조류가 붙은 바위틈에 라면 가락같이 생긴 노란색이나 주황색의 알 덩어리를 몇 주에 걸쳐 여러 차례 낳는데, 한 마리가 산란한 알이 수억개에 이른다. 만약 이 알들이 모두 성장해서 재생산에 나선다면 1년 만에 지구 표면은 2m 두께의 군소로 덮이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산란된 군소 알의 대부분은 물고기나 불가사리, 해삼 등에게 먹잇감이 되어 사라지니 어쩌면 다행이다.

다이빙을 하면서 바닷속을 누비는 사람들은 현장을 읽는 관찰자요, 연구자이다. 바닷속을 직접 취재하는 박 기자나 다큐멘터리 <대양을 담은 바다, 조수웅덩이>를 만든 임형묵 감독이 그들이다. 이들은 바다생물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사진에 담기도 한다. 육상에서와 달리 바다에서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그런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있다. 군소는 위기가 닥쳤을 때 오징어나 문어가 먹물을 뿜어내는 것처럼 보라색 색소를 뿜는다. 갑자기 바닷속을 뒤덮는 이들 색소는 포식자에게 상당히 혐오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더욱이 물속에서 군소를 잡았을 때 물컹한 촉감은 어지간히 비위가 강한 사람이라도 저절로 손을 놓고 말 정도이니, 거친 자연에서 저마다 살아가는 방법은 있기 마련이다.

박 기자는 군소라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 하나를 더 전한다. 옛날 어느 어촌에 민생고를 듣고자 찾아온 군수와 어민들 간 면담 자리가 있었다. 미역을 채취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어민들이 수확이 예년만 못하다며, “그놈의 군소 때문에 못살겠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군소’를 ‘군수’로 잘못들은 신임 군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군소의 먹잇감은 미역, 다시마, 모자반 등의 해조류다. 군소가 많이 번식하는 해에는 포자를 내야 할 해조류조차 다 먹어치워 그해 작황을 망치곤 한다. 이를 두고 해조류를 갉아먹는 군소에게서 가혹한 세금에다 사리사욕을 위해 백성들의 뼈와 살을 갉아먹는 탐관오리인 군수를 연상한 것은 아닐까.

군부는 생김새는 딴판이지만 군소와 같은 연체동물이다. 움직임이 느려 굼뜨다는 뜻의 ‘굼보’였다가 ‘군부’로 바뀌었다고 한다. 군부는 두꺼운 각판을 가지고 있다. 어민들은 돌바닥에 벅벅 문질러 껍질을 벗긴다. (오른쪽 사진) 임형묵 다큐멘터리 감독 제공

군부는 생김새는 딴판이지만 군소와 같은 연체동물이다. 움직임이 느려 굼뜨다는 뜻의 ‘굼보’였다가 ‘군부’로 바뀌었다고 한다. 군부는 두꺼운 각판을 가지고 있다. 어민들은 돌바닥에 벅벅 문질러 껍질을 벗긴다. (오른쪽 사진) 임형묵 다큐멘터리 감독 제공

군소(Aplysia kurodai)는 우리나라 전 해역의 얕은 수심에서 산다. 주로 대형 갈조류를 섭식하는 초식자이지만 해조류가 풍부하지 않은 곳에서는 바다 밑바닥에 고착해 사는 저서성 규조류도 섭식한다. 군소는 분류학상 연체동물문 복족강 후새하강 무순목 군소상과 군소과에 속한다. 연체동물이며, 넓고 편평한 발이 배 안에 들어 있어 복족류이다. 이들 복족류로는 소라나 전복, 달팽이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복족류이지만 단단한 껍데기인 조가비가 없고 거의 퇴화된 종잇장 같은 작은 껍질이 몸 안에 숨겨져 있다.

후새류는 복족류에 속하는 분류군인데, 아가미가 심장보다 뒤에 있어 이런 이름을 붙였다. 군소는 몸 양쪽에 날개 모양의 근육이 있고 뒤쪽으로 갈수록 약간 갈라져 있다. 가끔은 등 쪽에 접혀 있던 지느러미 같은 것을 펄럭이며 헤엄을 치기도 하지만 대체로 바닥에 붙어 기어 다닌다. 몸 색깔은 주로 흑갈색 바탕에 회백색을 띠지만 주변 환경에 따라 차이가 심하다.

<자산어보>에서는 군소를 ‘굴명충(屈明蟲)’이라고 소개했다. 굽어지는 모습을 관찰한 것 같다. 정약전 선생은 “형상은 알을 품은 닭과 같으나 꼬리가 없다. 머리와 목이 약간 높으며 고양이 귀와 같은 귀가 있다. 배 아래는 해삼의 발과 같으며 역시 헤엄을 칠 수 없다. 색은 짙은 흑색이며 적색 무늬가 있다. 온몸에 피가 있으며 맛은 싱겁다. 영남 사람들이 먹는데, 여러 번 아주 깨끗이 씻어 피를 제거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고 묘사했다. 이미 군소가 알을 낳는 난생이며 기어다니는 다리를 가진 복족류임을 간파했다. 실학자인 만큼 관찰로만 기술하지 않고 백성이 이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는데, 그 맛이며 색소를 깨끗이 빼내야 함을 인지했다. 실학은 곧 과학이요, 과학은 곧 실학이어야 함을 과학자인 나에게 가르친다.

군소를 잡아 올린 해녀들은 군소의 배를 갈라 색소를 완전히 빼낸 후 데쳐 건조시킨다. 크기가 40㎝에 이르는 군소도 이렇게 하면 계란 크기 정도로 쪼그라든다. <삼시세끼>에서 유해진과 차승원이 잔뜩 기대하면서 군소를 삶았다가 쪼그라든 모습을 보고 “이거 다 어디 갔냐, 누가 이랬냐!”며 경악했을 정도이니 짐작이 갈 것이다. 군소 몸의 대부분이 수분이기 때문이다. 대한내과학회지 보고에 따르면, 군소 내장과 알에는 디아실헥사디실글리세롤과 아플리시아닌이라는 성분이 있다고 한다. 디아실헥사디실글리세롤은 군소 알의 지방 성분으로 먹으면 구토와 설사를 유발한다. 아플리시아닌은 알과 내장에 있는 성분으로 사람의 간에 염증을 일으켜 독성 간염을 일으킨다고 추정된다. 이 성분들은 가열해도 남기 때문에 요리하기 전에 반드시 내장과 알을 완전히 빼야 한다. 내장과 색소를 빼내고 데친 군소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데, 문어보다 쫄깃한 식감이 있다. 독특한 질감과 향 때문에 일부 바닷가 사람들이 즐긴다.

군소와 같은 연체동물이고, 이름도 비슷한 군부(Acanthopleura japonica)가 있다. 군부는 군소와 생김새가 전혀 딴판인데, 같은 연체동물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겉보기와 다르게 말랑말랑한 몸을 가지고 있다.

임형묵 감독은 조간대(만조 때와 간조 때 사이 구간) 생태 소개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군부가 살아 있는 생물인가?” 의문을 품는다고 한다. 언뜻 보면 화석처럼 굳어버린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세히 보고 있으면, 이들도 꽤 부지런히 움직인다”고 말한다. 그래도 믿지 않으면, 주변의 호박돌을 하나 뒤집어서 보여준단다. 대개 그런 돌 아래에는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군부들이 붙어 있는데, 돌이 뒤집혀 밝은 곳에 드러나면 재빨리 어둠을 찾아 숨어들어 간다.

조간대를 연구하는 임형묵 감독은 군부 이름의 유래를 이렇게 전한다. “군부는 움직임이 느려 굼뜨다는 뜻의 ‘굼’자가 붙어 ‘굼보’였다가 ‘군부’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그는 덧붙였다. 군부는 특이한 생김새 때문에 이름이 아주 많다. 갯바위에 딱지처럼 붙어 있어 ‘딱지조개’라고도 한다. 신발 같다고 ‘신짝’이나 ‘짚세기’라고 한다. 손톱이나 발톱 같다고 ‘할미손톱’ ‘돼지발톱’이라고도 한다. 바위에서 떼어 놓으면 몸을 동그랗게 구부리는 모양을 보고 ‘등꼬부리’ ‘배오무리’ ‘할뱅이’라고도 한다. 결국 이름을 붙일 때 생김새가 우선이요, 습성이 그 다음이다. 옛날 선조든, 현재 사람이든, 그리고 과학자이든, 어민이든 생각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

<자산어보>는 군부를 ‘귀배충(龜背蟲)’이라고 소개했다. ‘굼범(九音法)’ 또는 ‘딱지조개’라고도 부른다. 정약전은 “형상은 거북이 등과 유사하고 색도 비슷하다. 다만 등딱지가 비늘로 되어 있다. 크기는 거머리만 하고, 발이 없어 전복처럼 배로 다닌다. 돌 사이에 나는 놈은 쇠똥구리처럼 작다. 삶아서 비늘을 제거하고 먹는다”고 묘사했다. 이미 선생은 군부가 거북이 등처럼 단단한 패각을 가졌음을 관찰했다. 전복처럼 발이 없다고 하였는데, 발이 배 밑에 숨겨져 있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바위에서 떨어져 돌아다닐 때는 쇠똥구리처럼 몸을 돌돌 말아 다니는 것도 관찰했다. 같은 이유로 추론해 보건대, 속명인 ‘굼범’은 혹시 ‘굼벵이’에서 온 말이 아닐까? 돌돌 마는 것이 굼벵이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과학자가 별 상상을 다한다. 하긴 과학은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학문이다.

군부는 영어로 키톤(chiton)이라고 부른다. 분류학적으로는 연체동물문 다판강 신군부아강 군부목 군부아목 군부상과 군부과 군부아과에 속한다. 전 세계적으로 1000여종이 분포하며 따뜻한 해역에 주로 서식한다. 우리 바다에는 20여종류의 군부가 있는데, 제주도를 포함해 전 해안의 중부 조간대에서부터 수심 3m까지의 조하대(조간대의 하부지대)에 산다. 조간대 갯바위에 사는 놈들은 바닷물이 차면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다 물이 빠지기 전에 제자리로 돌아가는 귀소본능이 있다.

군부의 길이는 5㎝ 정도로 암갈색을 띤다. 그 생김새는 난형으로 납작하고 좌우대칭이며, 등 쪽에 손톱모양의 각판(殼板) 8장이 기왓장처럼 포개져 있다. 각 판은 가로로 활 모양처럼 굽었고, 좌우 양쪽은 둥그스름하다. 전체 몸통에서 각판이 차지하는 면적이 대부분이다. 각판들을 감싸고 있는 가장자리 육질부인 육대(肉帶)는 주로 엷은 적갈색이고 육대 위에 흰색 가로띠가 있으며, 표면에는 작은 돌기들이 촘촘히 나 있어 만져보면 거칠다. 배 쪽에는 기거나 바위에 밀착할 수 있도록 넓고 편평한 발을 가지고 있는데, 황백색이다. 키틴질로 된 톱 모양의 혀인 치설(齒舌)이 잘 발달되어 있어 암석에 붙어 있는 미세조류나 규조류를 훑어먹는다.

두꺼운 각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유연하여 갯바위 구석진 틈에 밀착해 살아간다. 부착력이 매우 강해서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는 바위에서 온전하게 떼어 내기가 어렵다. 바위에서 떨어지면 공 모양으로 몸을 만다. 낮에는 움직이지 않으나 밤에는 이동하는 야행성이다.

군부를 먹으려면 일단 갑옷부터 무장해제시켜야 하는데, 어민들이 그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돌바닥에 벅벅 문질러 껍데기를 벗기는데, 집 마당 시멘트 바닥이 최적이다. 가장자리 돌기들이 떨어져 나가고 등딱지 8개는 손으로 벗겨내야 한다. 그런 수고에 비해 먹을 것이 많지 않고 특별한 향이나 풍미도 없지만, 군부는 맛보다는 식감이다. 단단한 것이 쫄깃해서 씹는 맛이 있다. 골뱅이무침처럼 매콤하게 무치면 나름 괜찮다는 게 임 감독의 전언이다. 나에겐 소주를 부르는 술안주다.

▶필자 황선도

[전문가의 세계 - 漁! 뼈대 있는 가문, 뼈대 없는 가문] ⑨ 용왕님, ‘바다 토끼’ 간은 드시면 안돼요


해양학과 어류생태학을 전공했고, 수산자원생태로 이학박사가 된 토종과학자이다. 20년간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일하면서 7번이나 이사하는 등 주변인으로 살았으나, 덕분에 어느 바닷가든지 고향으로 여긴다. 지금은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으로 해양생태계 복원과 수산자원 조성을 위해 일하는 ‘물고기 박사’다. 50여편의 논문을 썼고 저서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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