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상회…세계인에게 ‘한국’을 파는 남대문 터줏대감

2017.12.14 18:22
엄민용 기자·남소라 온라인기자

서울상회 외부 모습.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서울상회 외부 모습.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서울시는 종로·을지로에 있는 전통 점포 39곳을 ‘오래가게’로 추천하고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지도를 제작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전문가의 조언과 평가는 물론 여행전문가, 문화해설사, 외국인, 대학생 등의 현장방문 평가도 진행했다. 서울시가 ‘오래가게’를 추천한 것은 ‘도시 이면에 숨어 있는 오래된 가게의 매력과 이야기를 알려 색다른 서울관광 체험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에 경향신문은 이들 39곳의 ‘오래가게’를 찾아 가게들이 만들고 품고 키워 온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 서른 두번째 가게는 ‘서울상회’이다.

유신자 대표가 매장에서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유신자 대표가 매장에서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서울시내에서 365일 내내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을 꼽는다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남대문시장이다. 전 세계에서 한국을 찾아온 관광객들의 발걸음만으로도 남대문 골목을 빼곡하게 채우고도 남을 정도다. 여기에 서울 나들이를 온 지방 사람들과 이것저것 생필품을 사러 온 수도권 시민들까지, 남대문시장은 모두로부터 사랑받는 장소다.

남대문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상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있을 것이 다 있는 것은 물론 없을 만한 것까지 다 있다. 물건들이 풍성한 데다 시장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이 남대문시장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다.

유신자 대표.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유신자 대표.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그중 남대문시장 한가운데에 ‘서울상회’가 자리하고 있다. 유신자 대표(62)가 45년 동안 지키고 있는, 남대문시장 터줏대감이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수산물 가게를 상회로 바꾼 것은 유 대표의 결정이었다.

“88서울올림픽을 전후로 해서 남대문시장에 일본인 관광객 손님이 빠르게 늘었어요. 그것을 보고 있자니 수산물을 해서는 외국인 손님들을 못 잡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바꾸기로 했죠.”

서울상회에서 판매하고 있는 상품은 홍삼, 김, 송이버섯 등 한국의 특색을 담은 것들이다. 상회에서 다룰 수 있는 상품은 셀 수 없이 많은데 굳이 이런 상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유 대표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삼은 여러 나라에서 판매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삼이 사포닌 성분이 가장 많다고 해요. 품질이 제일 좋은 거죠. 기왕이면 좋은 거 팔아야 내 기분도 좋지 않겠어요.”

서울상회를 찾는 손님 대부분은 일본 관광객이다. 최근 들어서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손님들도 서울상회를 찾는다. 그뿐 아니다. 유럽에서도 서울상회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늘었다. 유 대표는 그렇게 늘어난 외국인 손님들이 서울상회의 가장 큰 버팀목이라고 전했다.

서울상회 매장 한구석에는 서울상회를 방문한 세계 각국의 손님들이 꾸민 탁자가 있다. 곱게 물든 낙엽과 함께 일본·말레이시아 등의 화폐가 유리 아래 끼워져 서울상회를 방문하는 모든 이를 반갑게 맞이한다.

서울상회 매장 내부.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서울상회 매장 내부.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서울상회 매장 내부.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서울상회 매장 내부.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우리 가게를 찾은 손님들이 이거 보면 다들 뭐냐고 물어요. 한참 보다가 자기네 나라 돈이 없잖아? 그러면 본인이 지폐를 꺼내서 이거 끼워 넣어 달라고 해요. 외국 나가면 애국심이 생기는 것은 우리나 걔네나 마찬가지인가 봐요.”

서울상회 매장 곳곳에는 이처럼 서울상회를 찾는 손님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다른 벽면에는 해외로 상품을 보낸 택배 송장이 줄줄이 매달려 있다. 모두 외상으로 상품을 주문해 현지에서 먼저 물건을 받아 본 것이다.

유 대표는 외국인 손님들에게 외상으로 물건을 판매해오면서 대금을 받지 못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 손님들은 특히 신용이 100%예요. 아니, 110%라고 해야 맞아요. 일본 손님들은 미리 상품을 받고 한국에 놀러와 대금을 지불하러 올 때 빈손으로 온 적이 정말 한 번도 없었어요.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씩 챙겨서 와요.”

남대문기장에서 40년 넘게 한자리를 우직하게 지킨 서울상회가 아니었다면 해외의 고객과 두터운 신용을 만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고객들과 깊은 신용을 쌓다 보면 친구나 다름없는 사이가 된다. 정이 든 단골손님들이 서울상회를 방문할 때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유 대표는 환한 얼굴로 말했다.

서울상회를 찾은 손님들이 남긴 지폐로 꾸민 탁자.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서울상회를 찾은 손님들이 남긴 지폐로 꾸민 탁자.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아주 어릴 때 어머니 손잡고 우리 가게에 왔던 꼬맹이가 이제는 훌쩍 자라서 부인하고 아이를 데리고 와요. 그런 것을 보면 참 시간이 빠르다 싶어요.”

서울상회를 찾아준 손님들의 기억을 되짚던 유 대표는 이제는 세상을 떠난 한 일본인 손님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분이 아주 어렸을 때 가족하고 생이별을 해 일본으로 넘어가서 살았대요. 가정도 꾸리고 아이도 낳았는데, 늙다 보니 자기 고향을 찾고 싶은 거예요. 고국을 못 잊는 거죠. 그런데 고향이 어딘지라도 알아야 가족을 찾을 텐데, 너무 어릴 때 가서 그것도 알 수가 없고…. 가족 찾겠다고 한국에서 돈도 꽤 쓰고 그랬죠. 사기도 많이 당했대요. 그러다 우리 가게 오면서 나를 동생이라고 부를 정도로 친해졌어요. 그분이 우리 가게 찾아오면 내가 한식당에 데리고 가서 음식도 이것저것 먹고 그랬거든요. 그러다 결국 가족을 찾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그게 벌써 몇 년 전이네요.”

이야기를 마친 유 대표는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섞인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서울상회는 유 대표와 유 대표의 아들이 함께 꾸려가고 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조금씩 아들에게 ‘운영권’을 넘기고 있다. 그렇다고 뒷방 늙은이를 자처할 생각은 없다. 유 대표는 “그래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야지. 우리 손님들이 찾아오는데”라며 서울상회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서울상회에서 외상으로 판매한 상품들의 택배 송장.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서울상회에서 외상으로 판매한 상품들의 택배 송장.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시간이 흐르면서 남대문 시장도 예전과 달리 많은 것들이 변했다. 함께 장사를 하던 이웃들도 하나둘 가게를 정리하고 지금은 누군지도 모르게 훌쩍 왔다가 훌쩍 떠나는 이들이 가득하다. 약속이라도 한 듯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울상회가 앞으로도 오래오래 남대문시장의 터줏대감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편 서울상회를 품에 안고 있는 남대문시장은 전체가 재미난 놀이터다. 이곳저곳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소풍 기분을 내기에 충분하다. 골목 사이사이에는 유명한 맛집도 즐비하다. 서울상회 못지 않은 오래가게 또한 여럿이다.

■서울상회는?

개업연도 : 1971년 /주소 : 중구 남대문시장4길 2 / 대표재화 금액 : 말린 홍삼 깡통 6만원, 기타 관광객 타깃 선물 제품 판매 / 체험 요소 : 관광 용품 구매 / 영업시간 : 매일 오전 7시~오후 10시 / 주변 관광지 : 남대문시장, 명동,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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