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방…나무에 새겨지는 한국의 얼굴

2017.12.15 16:55

서울시는 종로·을지로에 있는 전통 점포 39곳을 ‘오래가게’로 추천하고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지도를 제작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전문가의 조언과 평가는 물론 여행전문가, 문화해설사, 외국인, 대학생 등의 현장방문 평가도 진행했다. 서울시가 ‘오래가게’를 추천한 것은 ‘도시 이면에 숨어 있는 오래된 가게의 매력과 이야기를 알려 색다른 서울관광 체험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에 경향신문은 이들 39곳의 ‘오래가게’를 찾아 가게들이 만들고 품고 키워 온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 서른세 번째 가게는 ‘탈방’이다.

인사동 탈방.

인사동 탈방.

종로2가에서 남인사마당을 거쳐 인사동길로 접어들면 1㎞ 남짓한 길이 시원하게 뚫려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중저가 화장품가게와 스타벅스다. 손님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매장 밖에 내놓은 화장품의 색이 화려하다.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인 강남면옥에서 갈비탕을 한 그릇 먹고 나와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즐긴 후 인사동 사거리를 지나면, 그제야 전통의 향기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한다.

거리 양쪽으로 지극히 한국적인 기념품을 파는 가게부터 도자기·한복 등 다양한 볼거리로 가득하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면 한국적 정취와는 살짝 어긋나 있다. 한발 떨어져 보면 한국 전통을 문양과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적불명의 제품들이다.

탈방에 전시된 산대탈.

탈방에 전시된 산대탈.

그렇게 조악하고 특색이 없는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한 인사동에서 여전히 가장 한국적인 제품을 만드는 곳이 있다. ‘탈방’이다. 쌈지길 옆에 있다. 눈을 부라리며 찾아야 한다. 인사동길 대로변에 있지만 찾기 쉽지 않다. 탈방 주인장 정성암 씨가 직접 만든 간판이 탈방의 정체성을 설명할 뿐이다.

간판은 목판에 ‘탈방’ 두 글자만 있다. 군더더기가 없다. 화려한 간판 사이에 얼굴을 쏙 내민 탈방은 마치 시골 아가씨의 수줍은 얼굴과 닮았다.

탈방에 전시된 하회탈.

탈방에 전시된 하회탈.

쇼윈도에는 한국인의 얼굴을 상징하는 하회탈과 각시탈, 양반탈, 산대놀이에 쓰이는 탈 등이 보인다. 하회탈을 만드는 과정도 볼 수 있게 전시해 놓았다. 매장은 4평 남짓한 크기다. 매장에 들어서면 다양한 소품을 지나 양 벽면에는 하회탈과 산대놀이탈이 걸려 있다. 매장 가장 안쪽은 정씨의 작업공간이다. 정씨는 1984년부터 이곳에 터를 잡았다. 촛대를 만드는 아원공방이 떠난 자리를 차지했다.

정성암씨가 산대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성암씨가 산대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내가 처음 왔을 때는 2평이었다. 2평은 주인 내외의 생활공간이었다. 매장이라고 하기에는 옹색했다. 작업대만 설치해 놓고 탈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이렇게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자신만의 독특한 것을 만드는 공방들이 많았다. 손님들도 일부러 찾아왔다. 당시만 해도 고서점, 화랑, 고미술상, 민예품점, 표구점, 필방, 한지, 공예품 등 다양한 전통문화가 숨쉬는 거리였다. 지금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지만….”

인사동 탈방 입구에는 다양한 탈이 전시되어 있다.

인사동 탈방 입구에는 다양한 탈이 전시되어 있다.

정씨는 군대에서 제대한 후 본격적으로 탈을 배우기 시작했다. 안동에서 하회탈을 만드는 공방에서 기초를 배웠다. 나무를 고르는 법, 깎는 법을 익혔다. 이후 서울로 와 자신만의 공방을 마련한 곳이 인사동이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군대에서 조각하는 친구를 보며 흥미를 가졌다. 제대 후 하회탈을 접하고, 만들어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하회마을에 가서 탈 만드는 기초를 배웠다. 얼굴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탈이 좋았다. 단순하지만 조형미를 살려야 한다. 또한 탈을 쓰면 신분에 변화가 생긴다. 그런 점이 매력적이었다.”

한국의 탈은 의식용 탈과 놀이용 탈이 있다. 정씨는 의식용 탈인 하회탈과 놀이용 탈인 산대탈을 만든다. 하회 별신굿에 사용되는 하회탈을 재현하고 있다. 산대탈은 하회탈보다 색감이 화려하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시작된 산대탈놀이는 광화문 앞 좌우에 금강산 모형을 한 높은 무대(산대)를 세우고, 정월 초하루나 나라에 기쁜 일이 있을 때 탈춤놀이를 하면서 시작됐다. 산대도감에서 관장하던 산대탈놀이는 조선 중기 이후 민간으로 넘어갔다. 지금은 송파산대와 양주별산대가 가장 유명하다.

탈방의 다양한 소품.

탈방의 다양한 소품.

“의식용 탈과 놀이용 탈 둘 다 매력이 있다. 하회탈은 진지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백정탈은 웃는 표정이면서도 삶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양반탈의 웃음은 백정탈의 웃음과는 다른 웃음이다. 위엄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학식을 자랑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산대탈은 색감이 하회탈보다 더 강렬하다. 할미탈은 새빨간 입술, 노란 눈썹에 얼굴은 검은색이다. 눈끔쩍이탈의 입술은 노란색과 녹색으로 섬뜩하다. 먹중탈은 검은색·흰색·붉은색이 어우러져 귀엽기까지 하다.”

탈방의 고객은 주로 외국인들이다. 아시안들보다는 서구인들이 주고객이다. 한국인들은 거의 없다. 일부러 찾아오는 고객들이 대부분이다. 20년 전만 해도 인사동은 그런 곳이었다. 공방과 고서점을 찾는 고객들은 목적을 가지고 인사동에 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자신만의 특색을 가진 공방·고서점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월세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회탈을 만들고 있는 정성암씨.

하회탈을 만들고 있는 정성암씨.

“인사동은 축제가 망쳤다. 1988년 전통문화의 거리로 지정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한적한 곳이던 인사동은 축제의 장이 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차 없는 거리는 결정타였다. 사람들이 몰려드니까 대형 프랜차이즈, 국적을 알 수 없는 대형 기념품 가게 등이 따라들어왔다. 공방, 필방, 고서점의 목을 죄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사동을 살리려고 한 축제가 벌어지면서 인사동이 죽기 시작했다. 나는 작은 평수라서 살아남았다.(쓴웃음)”

정씨는 작업대에서 하회탈을 만들고 있었다. 왼손잡이인 정씨의 오른손 검지에는 신경이 끊어진 상처가 남아 있었다. 날카로운 조각칼에 베인 상처다. 왼손 약지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정씨는 자루가 긴 조각칼을 쓴다. 어깨로 힘을 주면서 조각한다. 손목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나무는 주로 피나무를 쓴다. 원래 하회탈은 오리나무를 쓰지만, 너무 무거워서 피나무로 바꿨다. 피나무는 탄력이 있고 조각하기 쉽다.

왼손 약지에 굳은살이 박여 있다.

왼손 약지에 굳은살이 박여 있다.

정씨는 세월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매장을 운영해야 하기에 오롯이 하고 싶은 작업을 하기 쉽지 않다.

“이 시대에 맞는 탈을 만들고 싶다. 시대의 문화를 탈로 표현하고 싶다. 이 시대의 놀이문화를 탈로 표현하고 싶다. 다양한 군상들의 표정을 깎고, 칠해 나만의 탈을 만들고 싶다. 그 탈을 쓴 극이 있으면 더 좋겠다.”

정씨는 인터뷰 말미에 탈방에 들어온 외국인에게 하회탈과 산대탈을 영어로 유창하게 설명했다.

탈방은 인사동 문화의 거리에 있다. 탈방에 오면 자연스럽게 남인사마당부터 북인사동 입구까지 인사동 전체를 구경할 수 있다. 인사동길에서 눈길을 돌려 골목길로 들어서면 옛 모습을 간직한 인사동을 만나 볼 수 있다. 비좁은 골목길마다 맛집들이 있다. 한정식부터 길거리 음식까지 있다. 인사동을 한바퀴 휘돌아 조계사에 도착하면 한국불교 조계종의 총본산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대웅전 본존불에 부처님의 미소를 본 후 조계사 맞은편에 있는 발우공양에서 사찰음식을 즐겨 보는 것도 좋다.

■탈방은?

개업연도 : 1984년 / 주소 : 종로구 인사동길 48 / 대표재화 금액 : 전통탈(하회탈·산대탈) 10만~20만원 / 체험 요소 : 가게에서 직접 주인이 탈을 만들고 있어 이를 관찰할 수 있음 / 영업시간 : 매일 오전 11시~오후 7시 / 주변 관광지 / 인사동 문화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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