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성소수자 지지모임 ‘게이글러스’ “다양성은 혁신의 발판, 좋은 아이디어의 샘터”

2018.03.09 17:02 입력 2018.03.13 14:29 수정

정김경숙 전무·강철 엔지니어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구글 직원들의 모임인 ‘게이글러스’의 공동대표 강철 엔지니어(왼쪽)와 정김경숙 홍보총괄 전무가 지난 2일 강남 구글코리아 사무실에 위치한 ‘다양성 도서관’에서 활짝 웃고 있다. 세계 각지의 구글 지사에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직원들의 모임 ‘게이글러스’가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구글 직원들의 모임인 ‘게이글러스’의 공동대표 강철 엔지니어(왼쪽)와 정김경숙 홍보총괄 전무가 지난 2일 강남 구글코리아 사무실에 위치한 ‘다양성 도서관’에서 활짝 웃고 있다. 세계 각지의 구글 지사에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직원들의 모임 ‘게이글러스’가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구글코리아 사무실 한쪽 벽. ‘구글 게이글러스(Google Gayglers)’라고 쓰인 무지개 깃발이 선명하다. ‘다양성 도서관(Diversity Library)’엔 성소수자·인권·페미니즘 관련 도서들이 꽂혀 있다. ‘사랑, 정의하기엔 너무 멋진 것’ ‘인권은 나의 자긍심(Human rights are my pride)’이라는 문구들이 무지개로 장식돼 있었다. 도서관 바로 옆엔 직원들의 휴식공간과 업무용 사무실이 있었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성소수자 이슈를 접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어요. 모두가 행복하고 편안한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구글코리아의 성소수자 지지 모임 ‘게이글러스’의 정김경숙 공동대표가 말했다.

게이글러스는 미국 실리콘밸리 본사를 비롯해 세계 각지의 구글에 있는 성소수자 지지 모임이다. 한국에선 2014년 처음 만들어졌다. 게이글러스의 공동대표인 정김경숙 홍보총괄 전무와 강철 엔지니어를 지난 2일 강남 구글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났다.

게이글러스는 정김 전무가 제안하면서 만들어졌다. 정김 전무는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섬돌향린교회 신자다. 구글에 게이글러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한국에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 정김 전무는 “처음엔 게이글러스란 말이 낯설고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게이글러스라는 이름이 아무렇지도 않게 들릴 날이 올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이글러스는 직원 상대로 성소수자 부모모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등을 초청해 강연을 열고 매년 퀴어문화축제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게이글러스 회원은 5명이지만 행사에는 다양한 구글 직원들이 함께한다. 2014년 세 명이 참여했던 퀴어문화축제엔 2015년 16명, 2016년 20명, 지난해엔 30명의 직원이 구글 깃발을 들고 함께 찾았다. 구글코리아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을 후원하고, 대구 퀴어문화축제를 후원하고 있다.

게이글러스의 존재는 다양성과 포용을 기업 핵심 가치로 꼽는 구글의 기업 문화 때문에 가능했다. 정김 전무는 “기업에 좋은 인재가 와야 하는데, 일하기 불편하다면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한다. 모든 사람이 능력을 100% 발휘해서 일할 수 있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양성은 혁신의 발판이기도 하다. 정김 전무는 “스타트업의 경우 남성만 있을 때보다 여성이 함께 있을 때 기업 가치가 더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남성 여성뿐 아니라 성소수자, 다양한 인종이 함께 있을 때 훨씬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엔지니어는 “구글에 입사해 게이글러스를 알고 함께 활동하며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성소수자가 인구의 10% 정도 된다고 하는데, 이들을 포용한다면 최소 10% 이상의 효과가 있는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구글은 입사 지원서에 사진을 넣지 않고 성별, 결혼 여부도 적지 않는다. 면접 때 내는 보고서에도 성별을 암시하는 단어(He/She)를 쓰지 않고 ‘지원자(The candidate)’라고 쓰도록 돼 있다. 정김 전무는 “회사 전산망에 자신을 소개할 때 원하는 명칭(He/She/They/None 등)을 선택해 표시할 수 있게 돼 있다”며 “미국 사무실에는 성중립 화장실이 마련된 곳도 있다”고 말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데, 아무리 구글이라도 성소수자 혐오 정서가 팽배한 한국에서 게이글러스 활동에 반대하는 직원들은 없을까. 강 엔지니어는 “다양성이 회사의 핵심 가치로 인식되고 교육도 시행하다 보니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강 엔지니어는 오히려 게이글러스 활동으로 본사에서 주는 다양성상을 받았다. 그는 “성소수자 지지 활동으로 불이익을 받는 게 아니라 회사에서 공헌을 인정받았다”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회사의 지지도 받으니 업무 만족도가 커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구글코리아 내에서 공식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직원은 없다. 강 엔지니어는 “커밍아웃은 직장뿐 아니라 가족과 지인 등 그 사람이 속한 모든 공동체에 영향을 끼치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정김 전무는 “회사 내 다양성 포용도 중요하지만 사회가 바뀌는 것도 중요하다”며 “실리콘밸리에 본사가 있는 다른 기업들도 한국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를 주저하는데, 그러지 말고 용기내서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다양성 가이드라인 아시나요? 성정체성 차별 금지기업들에 포용 촉구

구글 성소수자 지지모임 ‘게이글러스’  “다양성은 혁신의 발판, 좋은 아이디어의 샘터”


미국 최고의 여성 컴퓨터 공학자로 꼽히는 미시간대 린 콘웨이 교수는 IBM의 정책을 바꿔 놓았다. IBM에서 슈퍼컴퓨터 연구개발을 하던 로버트 샌더스는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밝히고 1968년 성전환수술과 함께 이름을 린 콘웨이로 바꿨다. IBM은 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를 해고했다. 이후 제록스로 이직한 린 콘웨이는 초정밀 집적회로 개발에 참여하며 미국 최고의 여성 컴퓨터 공학자가 됐다.

성소수자 배제는 회사의 손실로 귀결됐다. 린 콘웨이를 잃은 ‘교훈’으로 IBM은 성소수자 차별을 정책적으로 금지했다. IBM은 모든 채용에 차별 없이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Equal Opportunity Employer’를 지향하며 ‘성적지향·성별정체성·성별표현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IBM코리아에서도 성소수자임을 면접에서 밝힌 지원자가 채용돼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발표하는 매출액 기준 미국 최대기업 500개 가운데 91%가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기업도 83%에 이른다. 다양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기업을 위해서도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매킨지는 성별·인종·민족·성적지향·성별정체성 등 다양성이 높을수록 기업의 수익률이 높다는 결과를 보고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구글코리아, IBM코리아, 러시코리아 등이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고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도 행동규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성적지향, 성정체성, 성적발현 등으로 직원이나 지원자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포스코는 윤리규범 실천지침에서 ‘성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이나 괴롭힘을 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한국 기업에선 성소수자 포용정책이 없다. 외국계 기업도 한국에선 ‘현지화’되어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SOGI 법정책연구회에서는 최근 ‘성소수자 친화적 직장을 만들기 위한 다양성 가이드라인’을 펴내고 국내외 사례를 소개했다. 한가람 변호사는 “법제도도 중요하지만 직장에서도 소수자의 인권이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며 “돈을 벌고 자아를 실현하는 노동 현장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양성 가이드라인’은 채용공고에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 기업이라고 표시할 것, 이력서에 직무와 무관한 정보를 묻지 않을 것을 제시했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도입한 블라인드 채용 입사지원서가 좋은 예다. 블라인드 입사지원서는 성별, 학력, 병역사항, 혼인여부 등의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동성애자·양성애자 11.5%, 트랜스젠더의 63.4%가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지원 자체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가이드라인은 또한 성소수자 직원에 대한 차별과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고충처리제도를 마련할 것, 다양성·포용 정책을 담당하는 전담 부서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실제 애플의 다양성포용 부문 부사장, 페이스북의 글로벌 다양성 이사, 마스터카드의 포용 담당 최고경영자 등 해외 글로벌 기업이 다양성 전담 조직을 두고 있다.

이밖에도 ‘모두를 위한 편의시설’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성별·장애 등의 구분 없이 모두가 이용가능한 성별중립적 화장실 등이다. 2015년 일본 조사에서 트랜스젠더 직원 27%가 배설·배뇨 장애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것도 제안했다. 아디다스, 나이키 등 글로벌 기업들은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색 운동화, 티셔츠 등의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구글코리아, 러시코리아 등이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는 것도 기업이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러시코리아는 2016년과 지난해 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 ‘핑크이력서’를 받아 성소수자를 매장 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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