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만들기 강습, 냉큼 신청을 했더니 한 달 내내 ‘노력 봉사’를 하고, 할머니 친구들이 생겼다

2018.06.01 17:20 입력 2018.06.01 17:59 수정
이우일·선현경| 일러스트레이터 겸 작가

선현경의 ‘잠시 멈춤’

일러스트 | 이우일

일러스트 | 이우일

하와이에서 흔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남자나 여자, 아이나 노인 할 것 없이 목에 커다란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꽃을 엮어 만든 목걸이가 가장 많지만 조개껍질이나 단단한 열매, 깃털이나 초록 잎사귀만을 꼬아 만든 것도 있다. 이를 통틀어 ‘레이’라고 부른다.

공항에 도착하면 마치 장사치처럼 주렁주렁 그런 목걸이를 들고 있다가 이제 막 도착한 누군가의 목에 걸어주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다. 그런 환대는 받아 본 적이 없는 우린, 큰 호텔에서 주도하는 전통 환영 선물이라고만 생각했다.

몇 년 전 하와이에 처음 왔을 때에는 조화로 만든 레이를 슈퍼에서 사서 서울까지 들고 갔다.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조화가 촌스러웠지만, 어린 딸과 그 친구들에게 하와이 기념선물로 나눠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레이를 관광상품으로만 알고 있었다.

한 달 전에 요가와 훌라 춤을 배우고 있는 커뮤니티센터 마당에서 오월 한 달 동안 잎사귀 레이 만드는 수업을 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초록 잎으로만 꼬아 레이를 만들 거라고 사진이 붙었는데 여태 내가 봐 오던 화려한 레이와는 달랐다. 소박하면서 우아한 단색의 레이에 끌려 냉큼 참가 신청을 했다.

하와이 명물 목걸이‘레이’…
첫 날 수업엘 가보니 할머니들이 반겨 맞는다.
내가 제일 어리기 때문인가?
만드는 법은 간단했다. 냉장고에 넣었던 ‘티’ 잎을 새끼 꼬듯 하다가 중간 중간 꽃이나 잎사귀로 장식하면 된다.
레이는 냉장 보관하면 몇년을 간단다.
금세 만들기를 배우자, 반색들을 하신다.
‘메모리얼데이’에 쓸 5000개를 만들어야 한단다.
오월 내내 레이를 만드느라 내 손은 초록이 되었다.
작업 전엔 할머니들과 손 잡고 기도를 하고,작업을 하면서는‘죽음’에 대한 이야길 자주 했다.
할머니들의 장례 때 쓸 것을 만드는 기분이었지만,정작 할머니들은 담담하다.
나도 할머니들 처럼 결말은 상상해 두어야 겠다.

당일 아침 일찍 레이를 배운다는 마음에 들떠 센터 마당에 도착하니 온통 할머니들뿐이다. 레이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 60대 후반으로 가장 젊어 보였고, 레이를 만들고 있는 할머니들은 감히 나이를 예측하기도 곤란하다. 그들은 혹시 우쿨렐레나 훌라 수업으로 착각한 게 아니냐는 듯, 의아해하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레이를 만들러 왔다는 내 말에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며 서로 자리를 내어주신다.

잎사귀 레이를 만드는 방식은 새끼를 꼬는 것과 비슷하다. 먼저 레이를 만들 티(ti-하와이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난처럼 생긴 화초다) 잎사귀를 길쭉하게 자른 후 돌돌 말아 냉장고에 넣어둔다. 이삼일을 넣어두면 살짝 데친 파처럼 잎이 부드러워지고 얇게 물풀을 바른 것처럼 끈적이는 상태가 된다. 그렇게 된 잎 두 개를 서로 엮어 새끼줄을 꼬듯이 만들면 된다. 중간중간 잎사귀를 더해 장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화려함이 달라지는데, 기본은 짚으로 새끼를 꼬는 것과 같다. 완성된 레이 역시 냉장고에 보관하면 된다. 그렇게 몇 년이고 보관해도 끄떡없다고 티 잎 레이를 삼년째 보관하고 계신 한 할머니가 말해주었다.

5월은 레이의날을 비롯해 여기저기 행사가 많은 달이라 많은 레이가 필요하다. 우리 센터에서는 오월 마지막 월요일 메모리얼데이(우리나라 현충일과 비슷하다)에 쓰일 레이 5000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레이 가르침을 빙자해 사실은 기부할 레이를 만드는 거였다! 그러면 그렇지. 나를 반기는 노인들의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수제 쿠키와 손수 잘라 온 망고, 오이와 레몬이 들어있는 물 대접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레이 꼬는 법을 가르치더니 집에 보낼 생각이 아예 없어 보인다.

레이를 만들며 비틀스의 존 레넌 공연을 회상하는 할머니는 가끔 노래를 불렀다. 쿠쿠이 열매가 어릴 적부터 말을 걸어와 늘 쿠쿠이 넛 레이를 착용한다는 할머니는 레이를 싸게 파는 가게를 알려 주신다. 대화의 주제가 넓어 맞장구나 치며 레이를 만드니 내 손은 점점 더 빨라지기만 했다. 할머니들은 내 속도에 감탄하며 다음주에도 꼭 다시 나오라면서 마실 물도 떠다주고 쿠키도 손수 먹여 주신다. 채워야 할 레이의 할당량이 있으니 내가 그들에게는 구원투수처럼 느껴진 모양이다. 칭찬에 힘입어 나도 집에서 레이를 만들어 오겠다고 했다. 한 분이 곱게 말아 빨간 털실로 묶어 둔 레이 잎사귀 한 봉투를 냉장고에서 꺼내 주신다. 너무 많다고 했더니 만들 수 있는 만큼만 만들어 오란다. 아아, 일복은 타고났다.

그렇게 레이가 될 티 잎사귀를 잔뜩 들고 집에 도착하니, 남편이 상기된 얼굴로 흥분해 날 맞았다. 내가 집을 비운 반나절 동안 야생 비둘기가 두 번이나 베란다 창을 통해 집 안에 들어왔다는 거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내쫓았다며 비둘기와 벌인 사투에 대해 떠들었다. 평소의 나라면 끔찍하다며 함께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었겠지만, 마침 소로의 <윌든>을 다 읽고 자연의 위대한 힘에 대해 곱씹고 있을 즈음이다. 새가 들락거리는 아파트라니 살짝 기쁘기까지 했다. 소로는 자연을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 호수의 잔잔한 물결을 잘 짜인 기왓장 같다고 한다. 매일 듣는 새소리를 진혼곡이나 세레나데라 표현한다.

내가 영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남편은 비둘기가 알 수 없는 것들을 얼마나 먹어대는지, 그래서 병균이 얼마나 많고 더러운지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달그락. 부엌에서 고양이 밥 먹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 고양이는 참 시도 때도 없이 밥을 먹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고양이가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뭔가를 쏘아보고 있다.

산비둘기였다. 부엌에서 우리 집 고양이 밥을 훔쳐 먹다 나와 눈이 마주친 비둘기는 태연했다. 도망갈 생각이 전혀 없는 ‘왜? 무슨 일 있어?’ 하는 멍한 눈이 나와 마주쳤다.

상상과 현실은 달랐다. 소로가 묘사한 윌든 호수의 아름다운 새들은 내 집 부엌에서 고양이 사료를 축내는 순간 먼지처럼 사라졌다.

그동안 마루나 부엌에서 가끔 새의 깃털을 주웠다. 새가 많으니 열어 둔 베란다 문을 통해 깃털만 날아 들어왔을 거라 짐작했는데 아니었다. 검색해 보니 비둘기의 후각은 매우 뛰어나다. 그동안 늘 비둘기가 집에 들락거리며 식사도 하고 깃털도 고르고 간 모양이다.

우린 바로 아마존에 들어가 새를 퇴치하는 도구를 구입했다.

그날 밤, 센터에서 가져온 티 잎사귀로 수많은 레이를 꼬아 만들며 비둘기 생각을 했다. 쥐스킨트의 소설 <비둘기>의 주인공이 생각났는데 결말이 흐리다. 몇 번이나 읽었는데 기억을 못하는 내가 한심해 e북을 뒤져 다시 찾아 읽었다. 내가 기억하는 소설은 자신의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친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인생을 망친 은행 경비원 조너선의 하루였는데 아니다. 비둘기로 망친 하루 덕분에 달라진 조너선의 자유로운 인생이 보였다. 이제야 소설의 전체가 보이다니 바보 같다. 대체 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내 맘대로 읽고 해석하며 살았던 걸까.

오월 한 달, 금요일마다 레이를 만들고 또 만들며 보냈다. 만드는 방법만 배우면 그만두려고 했는데 할머니들의 환대에 힘입어 매주 나가 레이를 만들고 숙제까지 받아왔다. 적어도 100개는 내가 만들어 보탰다. 손톱에 초록물이 밸 정도로 맹렬하게 만들었다.

하와이에서 티 잎은 건강과 복을 가져다주고 악귀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믿기에 거리마다 집집마다 많이 심는 식물이다. 티 잎사귀는 바다를 건너도 되는지 점을 치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고, 티로 끓여 마시면 두통이나 근육이완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잎으로 만든 레이는 건강과 행운을 지켜주기에 모두 하나씩은 지니고 있고, 한쪽을 열어 줄처럼 목에 거는 게 더 좋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서로의 마음을 가두지 않고 항상 열어놓기 위해서다. 특히 무덤에 쓸 레이는 절대 목걸이처럼 닫으면 안된다고 한다. 무덤의 영혼이 만든 사람에게 병이나 불운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레이는 한 사람의 목에 거는 순간 그 사람의 일부분이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거절하거나 주는 사람 앞에서 바로 벗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 버릴 때는 자연으로 돌아가게 흙으로 던져 썩히면 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모르고 목걸이로 사용하는데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으니, 모르니까 괜찮다며 웃는다. 현지인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이다. 하긴 제사 때 홍동백서, 어동육서도 왜 지키는지 모르는 나다.

우리 센터에서는 아직도 레이를 만들고 있다. 한 달 동안 매주 모여 레이를 만들었더니 할머니들은 모두 나의 친구가 되었다. 이곳에서 레이를 만드는 내 친구들은 죽음에 대한 대화를 자주 한다. 늘 누군가의 장례식 이야기를 한다.

레이를 만들기 전 모두 모여 손을 잡고 기도를 하는데, 할머니들의 주름진 얇고 가는 손에 뭉클해진다. 이건 메모리얼데이에 쓸 레이가 아니라 친구들에게 쓸 레이를 만드는 기분이다. 옆에서 한참 말없이 레이를 꼬던 마샤가 말한다.

“이렇게 레이를 꼬고 있으면 나이도 건강도 모르겠어. 그냥 계속 레이를 꼬고 있을 것만 같거든. 우리 집 고양이가 다섯 살이니 나보다는 오래 살 거야. 이 티 잎이 우릴 잘 살펴주겠지.”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자기 맘대로 상상하는 결말이 있는 삶이라니 좋다. 나도 내 결말은 상상해 두어야겠다.

▶이우일·선현경 부부는

[다른 삶]레이 만들기 강습, 냉큼 신청을 했더니 한 달 내내 ‘노력 봉사’를 하고, 할머니 친구들이 생겼다


일러스트레이터 겸 작가다.
이우일은 <콜렉터> <좋은 여행> <굿바이 알라딘> 등을 쓰고 그렸으며 <노빈손 시리즈>와 <용선생 한국사>의 그림 작가다. 선현경은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가족 관찰기>를 쓰고 그렸으며 <이모의 결혼식> <엄마의 여행가방> 등 동화를 냈다. 지난 2년 동안 미국 포틀랜드에서 딸, 고양이와 함께 쓰고 그리며 살다가 최근 하와이 오아후섬으로 터전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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