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남겨진 사람들의 용기, 무고한 희생 막는다

2018.03.06 21:06 입력 2018.03.06 21:10 수정
오강섭 | 한국자살예방협회장(성균관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역경에 처했을 때 ‘회복력’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서울 마포대교에 적혀 있는 자살예방 문구는 극단에 선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자는 취지에서 시민들로부터 공모한 것이다.  정지윤 기자

역경에 처했을 때 ‘회복력’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서울 마포대교에 적혀 있는 자살예방 문구는 극단에 선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자는 취지에서 시민들로부터 공모한 것이다. 정지윤 기자

가까운 가족의 죽음은 남겨진 가족에게는 크나큰 상실의 슬픔을 남긴다. 그중에서도 자살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은 그 어떤 슬픔과도 비교가 안될 것이다.

얼마 전 개최된 자살 예방과 유가족 인식개선을 위한 토크콘서트 ‘따뜻한 동행’에선 너무나 슬프고도 아름다운 유가족의 실제 이야기가 공개되었다. 그중에서도 10대에 부모를 자살로 모두 잃고 좌절감에 자신도 한때 자살을 생각했던 유가족이 자신의 슬픔을 이겨내고 이제는 공군의 자살예방을 전담하는 전문 교관이 된 이야기는 참석자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누나를 자살로 잃고 실의에 빠져 정처 없이 떠난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외국인이 자신의 상실감을 공감해주는 경험을 통해 역경을 극복하고, 이제는 생명지킴이 활동을 시작한 젊은 무용인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울림으로 참석자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0년간 약 15만명이 자살했다. 한 명의 자살자가 생기면 주변의 가까운 사람 평균 6명이 큰 심리적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는 약 100만명의 유가족이나 친구나 동료가 가족이나 지인의 자살로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상실감을 경험하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이런 슬픔을 잘 극복해낸다는 점이다.

일부는 이를 승화하여 오히려 충격으로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들을 돕기도 한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슬픔과 역경을 극복하였을까? 물론 이들에게는 역경을 이겨나갈 수 있는 회복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회복력은 분명 사람들이 위기나 역경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그외에도 자살의 보호요인들이 이들이 힘든 시기를 견뎌내는 데 도움을 준다.

지금까지 알려진 자살의 보호요인들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 강한 종교적 신념, 평소 긍정적 문제 해결 능력, 긍정적·사회적 지지 및 긍정적 인간관계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라고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회복력과 보호요인들이 어우러져 역경을 이겨낼 수 있게 된다.

일본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연간 3만3000명 이상이 자살하는 자살률이 매우 높은 국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자살이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국가적 문제라는 인식하에 2006년 자살대책 기본법을 제정하고 자살종합대책 추진센터를 운영하는 등 범사회적 노력을 지속한 결과 이제는 연 2만1000명 정도로 자살자 수가 낮아졌다. 지난 10년간 약 30%의 자살률 감소를 이루어낸 것이다.

일본의 자살예방에는 유가족의 노력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대표적인 자살예방 민간단체인 ‘라이프 링크’에 적극 참여하여 자살대책의 법률화를 요구하는 10만명의 서명을 받아 자살대책 기본법이 입법화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유가족이 더 이상 슬픔에만 사로잡혀 있지 않고 자살예방활동에 깊숙이 관여하여 다른 사람의 자살로 인한 슬픔을 예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 뜻있는 유가족이 자살예방활동에 직접 나서고 있다.

오강섭 | 한국자살예방협회장

오강섭 | 한국자살예방협회장

자신의 상실의 슬픔을 거울 삼아 더 이상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하여 발벗고 나섰다. 이미 적지 않은 유가족이 자살예방교육을 직접 받고 생명지킴이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각종 토론회·공청회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생생히 전해주고 있다. 이는 분명 자살률 높은 우리 사회에서 큰 변화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이들 유가족에게 감사와 존경심과 함께 무한 지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유가족이 남을 돕는 사회활동에 적극 나선 것은 분명 우리 사회에서도 자살예방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시금석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딛고 있는 유가족의 참여와 노력에 범국가·사회적 관심과 응원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중앙자살예방센터·한국자살예방협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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