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독이 되면 안되잖아요”

2019.03.19 21:10 입력 2019.03.19 21:12 수정
조상헌 | 서울대병원 약물유해반응관리센터장(내과 교수)

[의술인술]“약이 독이 되면 안되잖아요”

근대 약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라셀수스는 “모든 약은 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진료 과정 중 사용하는 적절한 약물도 ‘약물 유해반응’ 위험은 상존하고 있다. 의학의 발달에 따른 약물 사용의 증가와 함께 약물 유해반응이 세계적으로 중요한 보건 문제가 되었다.

미국에서 보고된 자료에 따르면 연간 약 200만건의 약물 유해반응이 발생하고, 의약품 부작용이 사망 원인의 4~6위를 차지하며, 관련 의료비용이 연간 4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국내에서도 최근 3년간 매년 100만건 이상의 유해반응이 신고되었다. 지난 수십년간 의료 현장에서 경험과 지식을 쌓아온 필자의 입장에서 약물 유해반응에 대한 염려는 더 커졌다. 이제는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10년 전 신종플루가 맹위를 떨칠 때였다. 응급실 당직의사가 약물유해반응관리센터로 전화를 걸어왔다. “제가 어제 응급실 당직을 서면서 출혈로 실려온 환자를 3명 맡았는데, 와파린(혈액응고방지제)을 수년간 문제없이 안정적으로 복용해오시던 분에게 갑자기 심한 출혈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세 분 모두 ‘타○○○’를 복용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부작용 의심신고를 하려 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끊고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어디에도 타○○○가 출혈을 증가시킨다는 정보는 없었고, 해당 약물의 식약처 허가사항에서도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 병원에서 와파린과 타○○○를 복용한 모든 환자들의 사례를 점검해보니 유사사례가 4건 더 있어 식약처에 보고를 하고 다른 의사들과 공유하기 위해 논문을 작성해 발표했다. 이처럼 약물 투여에 따른 이상반응은 환자도 의사도 모르는 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아마 지금 이 순간도 약물 유해반응으로 인한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약물 유해반응은 임상시험을 통해 어느 정도 정보가 알려져 있으나, 드물게 발생하는 부작용이나 장기 복용 시 발생하는 사례들은 약제가 시판되어 사용되면서 뒤늦게 확인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오랫동안 질병 치료를 위해 사용되던 약제가 안정성 문제로 퇴출되는 경우도 있다. 관절염 치료제 바이옥스는 심장병을 증가시켜서, 오랫동안 감기약으로 쓰이던 프로파놀아민은 뇌출혈의 위험성을 증가시켜서 각각 퇴출되었다. 따라서 환자들은 약을 복용할 때 항상 해당 약제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필요가 있으며, 복용 중인 약제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의료진에게 알려야 한다. 특히 한꺼번에 여러 가지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노인, 중증만성질환자는 약물 유해반응의 위험이 높고 취약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의사는 약을 처방할 때 약물 유해반응에 관한 정보를 환자와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약물 투여 후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타났을 때 의료진과 연결하여 조치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20년간 유전체학의 발달로 약물 유해반응 분야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약을 복용한 후 전신의 피부에 염증이 생기고 고열과 간기능 부전을 보이는 약물과민반응증후군(DRESS 증후군)의 경우 약을 수주~수개월 복용한 후 매우 드물게 나타나기 때문에 의사들조차 이러한 증상이 약물에 의한 반응인지 인지하기 어렵다.

우리 몸은 자기 자신과 외부물질을 구분하기 위해 세포마다 면역표지자(HLA)를 가지고 있으며, 이 표지자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러한 면역표지자의 차이에 따라 약물과민반응증후군 발생 위험성이 결정된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면역표지자 외에도 약물의 대사와 관련되는 유전자의 차이에 따라 약물의 효과나 부작용 발생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앞으로 특정 약물에 대한 개인의 반응을 예측하기 위해 약을 처방할 때 부작용 예방용 사전검사를 함께 처방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아울러 의료의 빅데이터를 분석해서 약물 유해반응을 조기에 찾아내는 약물 유해반응 감시활동이 이루어진다면 보다 안전한 약물 사용을 앞당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병원마다 약물유해반응관리센터 같은 시스템이 필요하고, 정부의 지원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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