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한끼

반가워, 달콤한 것 찾지 않는 낯선 내 모습

먹는 일의 기쁨과 슬픔, 귀찮음과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식생활 에세이. 경향신문 기자들이 필명으로 씁니다.

안녕하세요. 상도동꿀벌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여러 차례 ‘내가 사랑한 한끼’ 코너를 통해 당을 예찬해온 제가 오늘은 당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꿀벌의 배신이 되겠네요.

케이크나 마카롱을 주로 먹던 제가, 요샌 이런 걸 먹는답니다. 상도동꿀벌

케이크나 마카롱을 주로 먹던 제가, 요샌 이런 걸 먹는답니다. 상도동꿀벌

디저트 없는 삶은 상상도 하기 싫어!

꿀벌이란 별명 답게 디저트, 단 음식은 저의 오랜 낙이었어요. 남들은 가끔 즐기는 디저트를 저는 지난 수년간 거의 매일 먹어왔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아메리카노와 에그타르트를 한 개씩 사는 것이 습관이었어요. 재택근무를 주로 했던 2020년에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외로움을 디저트로 해소했습니다. 지도 어플에 집 근처 베이커리들을 저장해놓고 ‘도장 깨기’ 하듯 여러 디저트를 섭렵했고요. 그해 먹은 마카롱의 수를 세었다가 200개가 넘는다는 걸 깨닫고 기겁했다는 이야기를 이전 글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기획취재팀 회의실 벽에 이런 것을 그린 적도 있지요, 하하. 상도동꿀벌

기획취재팀 회의실 벽에 이런 것을 그린 적도 있지요, 하하. 상도동꿀벌

밥 대신 디저트로 식사를 때우는 것도 오랜 습관이었습니다. 디저트를 즐기면서도 살이 찌는 것은 싫어 선택한 방법이었어요. 20대 때는 탄산음료도 참 좋아했습니다. 거의 매일 콜라를 마셨습니다. 일반 콜라 대신 제로 콜라를 고르는 것은 마지막 남은 양심이었습니다. 건강에 좋지 않은 식습관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난 술과 담배를 안 하니 쌤쌤’이라고 합리화하곤 했어요.

언제까지나 당과 함께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줄여보기로 결심한 이유

하지만 언제부턴가 몸이 부쩍 힘들어졌습니다. 집중력이 필요할 때 커피와 디저트에 의존하곤 했는데 그 이후가 영 좋지 않았습니다. 단 것을 먹으면 즉각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고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지만 이런 상태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당의 마법이 사라지고 나면 금방 지치고 정신도 흐릿해졌습니다.

언스플래시 Elisa Ventur

언스플래시 Elisa Ventur

2년 전 했던 건강검진에서는 여러가지 적신호가 발견됐습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평균보다 높게 나왔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철분이 부족한 것 외에는 모두 정상이었는데 말이죠. 식습관을 그대로 유지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 것을 줄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시작한 필라테스도 계기가 되었습니다. 몸의 정렬을 바르게 하는 필라테스를 하고 나면 어쩐지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입에 집어넣기가 꺼려집니다.)

순서대로 차근차근

설탕을 끊는(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한 번에 모든 설탕을 뚝 끊는 것이라고 합니다. 중독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 대체로 그렇듯이요.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단계적으로 줄이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당 중에서도 가장 몸에 안 좋다는 ‘액체상태의 당’부터 제거하기로요.

제일 좋은 음료는 물! 언스플래시 Lanju Fotografie

제일 좋은 음료는 물! 언스플래시 Lanju Fotografie

가장 먼저 탄산 음료부터 끊었습니다. 피자나 햄버거 같은 음식을 먹을 때 딸려오는 콜라는 미리 빼달라고 합니다. 그러지 못했을 경우에는 아까워하지 않고 개수대에 따라버립니다. 카페에서 음료를 마실 때에도 시럽이나 휘핑크림이 들어간 메뉴는 고르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아 회식자리에 가면 ‘짠’하는 용도로 탄산음료를 시키곤 했는데 이젠 탄산수로 대신합니다. (플레인, 레몬, 라임, 복숭아 등 맛도 다양해 고르는 재미도 있습니다. 부작용이라면 탄산음료 대신 탄산수에 중독되어 버린 것입니다. 집에 탄산수 제조기도 있어요. 앞으로는 탄산수도 줄이려 합니다.)

나에게 맞는 대체재를 찾기

습관처럼 케이크와 빵을 먹는 저에게 대체제를 찾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나른한 오후 또다시 디저트를 집어먹고 말테니까요. 저는 간식으로 과일을 많이 먹었습니다. 디저트를 줄이기 전부터 과일은 잘 챙겨먹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전보다 더 많이 먹습니다. 딸기, 참외, 배, 귤, 체리 등 가리지 않고 먹습니다.

특히 샤인머스캣 같은 비싼 과일은 일부러라도 사먹는 편입니다. 왠지 고오급 디저트를 먹는 듯한 기분이 들어 디저트를 포기하는 데서 오는 박탈감을 줄일 수 있거든요.

사무실에서 먹기에는 맛밤이 괜찮습니다. 촉촉하고 달달합니다.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급한 불을 끄기에도 좋습니다. 견과류도 훌륭한 대체재입니다. 저는 스무알씩 소포장된 아몬드를 출근할 때마다 한 봉지 씩 챙겨나갑니다. (물론 아몬드가 100% 만족감을 준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기만하진 않을게요...)

당이 떨어지는 오후의 구원자. 상도동꿀벌

당이 떨어지는 오후의 구원자. 상도동꿀벌

요즘은 ‘저당(저탄수) 디저트’도 잘 나옵니다. 주로 당뇨 환자들을 위해 당 함유량을 확 낮춘 것들입니다. 유명한 온라인 스토어에서 여러 개 사다가 냉동실에 얼려놓고 꺼내먹곤 합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저당 아이스크림도 종종 사먹습니다. 설탕 없이 단 맛을 내는 비결은 당알코올이나 무슨무슨 ‘톨’로 끝나는 대체당입니다.

미각이 예민한 분들은 대체당의 끝맛이 별로라고도 하던데 저는 둔해서인지 큰 차이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체당이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의문입니다. 어쩐지 반칙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이 또한 차츰 줄여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디저트를 줄이며 얻은 것들

중독자였던 제가 설탕 줄이기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몸소 느낀 변화 덕분입니다.

일단 체중이 줄었습니다. 반 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3~3.5㎏가 빠졌습니다. 주 2회 필라테스를 하긴 했지만 이것 때문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이전에도 그 정도 강도의 운동은 해왔거든요.

피부도 좋아졌습니다. 늘 자잘한 뾰루지를 달고 살았는데 얼굴에 무언가 나는 빈도가 현저히 줄었습니다. 화장품이 원인인가 싶어 브랜드를 바꿔가며 써보곤 했는데 사실 음식이 원인이었던 거죠. 피부 톤도 전체적으로 맑아졌습니다.

무엇보다 몸이 가볍고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전처럼 힘들지 않습니다. 몸도 마음도 가벼우니 항상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달콤함을 찾지 않는 내가 낯설어

가장 신기한 변화는 단 것이 당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억지로 참는 게 아닙니다. 정말 생각이 잘 안 나요. 가끔 먹어도 전처럼 맛있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아주 맛있는 가게가 아니라면 굳이 디저트를 맛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전에는 커피에 디저트를 곁들이지 않으면 섭섭하기까지 했는데도요.

이런 것을 봐도 이전만큼 설레지 않아요! 팀홀튼 웹사이트

이런 것을 봐도 이전만큼 설레지 않아요! 팀홀튼 웹사이트

여전히 빵은 좋아합니다. 다만 크림이나 설탕이 잔뜩 들어간 단 빵보다 치아바타나 깜빠뉴 같은 담백한 식사빵을 주로 찾습니다.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입맛을 길들이는 데는 꽤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금방입니다. 과자 마니아인 동생과 며칠 함께 지내고 나면 과자를 먹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그때 인내심을 발휘해야 합니다.

결국 입맛을 바꿔야 하나 봐요. 일단 안 먹기 시작해야 덜 먹을 수 있습니다. 물론 완전히 끊기는 어렵습니다. 바깥에서 사 먹는 음식까지 어찌할 순 없으니까요. 적당히 유연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칫 하다가는 설탕이 들어간 드레싱을 피하겠다고 샐러드가 아닌 후라이드 치킨을 먹는 수가 있으니까요!

요즘도 아주 가끔 단 음식이 강렬하게 당길 때가 있습니다. 기사 마감이 코앞에 닥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주로 그렇습니다. 그럴 땐 스트레스 받지 않고 그냥 먹습니다. 그런데도 올 들어 먹은 마카롱의 갯수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올 여름은 참외가 싸고 맛있습니다. 거의 매일 한두 알 씩 깎아 먹은 지 몇 달 되었습니다. 아마 오늘 저녁에도 참외 2개를 먹을 것입니다.

한 달에 마카롱 스무개 먹는 사람에서 참외를 30개씩 먹는 사람이 되었지만 뭐 어때요. 괜찮아요. 설탕의 지배에서 벗어나고픈 끼니어님이 계시다면 오늘, 마카롱 대신 참외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 저녁에도, 기다려 참외야!

오늘 저녁에도, 기다려 참외야!

상도동꿀벌

식생활 뉴스레터 끼니로그를 구독하세요. 도토리 에디터가 매주 금요일 오전 맛있는 이야기를 담아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음식을 고르고, 맛있게 먹고,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는 노력과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 나눠요.🙂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22110?groupIds=169312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