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기 일삼던 사장에 대한 소심한 복수

2021.12.29 15:03 입력 2021.12.29 15:17 수정

‘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경향신문 기자들이 필명으로 씁니다.

살면서 내 몸 안의 당 수치가 가장 높았던 때는 아마도 2012년일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디단 사탕을 씁쓸하게 씹어먹었다. ‘복수의 사탕’이었다.

당시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캐나다의 한 관광도시에서 일식당 서버로 일했다. 다운타운 끄트머리에 위치한 K 일식 레스토랑은 한 달여 간의 구직 활동 끝에 구한 첫 직장이었다. 2인용 테이블 8~9개 남짓의 작은 레스토랑은 마카오 출신 이민자인 사장 M이 운영했다. M은 30대 중후반의 남성으로 초밥을 만들었다.

간단한 면접을 본 뒤 채용이 결정됐다. 채용이 결정된 날 검정색 유니폼을 받아들고 폴짝폴짝 뛰었다. 처음으로 ‘밥벌이’를 한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이력서에 조금 뻥튀기해 적어넣은 이력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옷가게에서 몇 달간 일한 경험이 있다고 적었는데, 5%쯤은 진실이었다. 엄마 가게를 잠깐씩 본 적은 있으니까.

사탕. 언스플래시 customerbox

사탕. 언스플래시 customerbox

들뜬 기분은 얼마 가지 못했다. 서빙은 만만한 노동이 아니었다. 그저 음식을 잘 나르면 되는 줄 알았건만 눈치도 센스도 빠른 손도 필요했다. 특히 손님이 없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먼저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내 눈에는 안 보였다. 엄마가 집안일 하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일머리가 없다”고 주던 핀잔이 떠올랐다.

사장 M은 그런 나를 자주 윽박질렀다. 그러다 격려의 의미로 농담을 건네는 때도 있었다. 그저 성질이 더러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른바 ‘꺾기’를 당하면서 그가 말로만 듣던 악덕 업주라는 걸 깨달았다. 꺾기란 사용자가 노동자를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출근시키거나 일찍 퇴근시키고 그만큼을 임금에서 깎는 것을 말한다. M은 손님이 적은 날이면 1~2시간씩 나를 일찍 퇴근시켰다. 처음엔 멋도 모르고 기쁘게 퇴근했지만 곧 그것이 갑질이란 것을 깨달았다.

소심한 복수를 시작했다. 계산서와 같이 나가는 디저트용 사탕을 횡령하는 것이었다. 눈깔사탕을 납작하게 눌러놓은 것 같은 모양과 맛이었는데 반드시 사장에게 손해를 입히겠다는 각오로 한 주먹씩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퇴근길에 와그작 와그작 씹어먹었다.

또 하나의 복수로는 K 레스토랑 평점에 타격을 입히기가 있었다. 현지 맛집 평가 웹사이트에서는 ID 하나당 하루 한 번씩 해당 식당에 ‘좋아요(엄지를 올린 손 기호)’ 또는 ‘나빠요(엄지를 내린 손 기호)’ 버튼을 누를 수 있었는데, 나는 굳이 ID를 만들어 성실하게 ‘나빠요’를 눌렀다. 그러고 나면 사장에게 조금이나마 복수를 한 것 같아 기분이 풀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에 들어온 것이 고객 리뷰였다. 음식 맛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후한 반면 서비스에 대한 리뷰는 사뭇 달랐다. “Good food but slow service(음식은 맛있지만 서비스가 느려요).” “The server was kind but wasn’t trained well(서버는 친절했지만 제대로 훈련받지 않았어요).’ 분명 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슬로우 서비스’ ‘낫 트레인드 웰’…평가 사이트 속 단어들이 가슴에 날아와 콕 박혔다.

그제서야 생각해보니 ‘꺾어지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나와 일본인 직원 Y까지 서버는 두 명이었지만 사장은 언제나 나를 먼저 보냈다. Y는 어느 모로 봐도 나보다 뛰어난 서버였다. 손도 눈치도 모두 빨랐다. 어차피 같은 시급을 줘야 한다면 일 잘하는 사람을 남기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꺾기를 당하고 집에 가는 길 맛도 없이 달기만 한 사탕을 입에 털어놓고 한참을 굴렸다. 인정해야 했다. 내가 ‘일못’이라는 사실을.

레스토랑과의 인연은 마무리도 영 아름답지 못했다. 마지막 근무를 위해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낯선 얼굴이 보였다. 내 또래의 한국인 여성이 유니폼과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나를 본 사장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탈의실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새 서버가 오늘 (정식 고용 전) 테스트 겸 일을 해볼 거야. 네가 나오는 날인 줄 몰랐어, 미안.”

거짓말이었다. 일한 만큼 시급을 줘야 하는 나 대신 테스트라는 명목으로 새 서버에게 공짜 노동을 시키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미련 없이 앞치마를 내던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 움큼 집어 온 사탕을 모멸감과 함께 씹어넘기며 맛집 평점 사이트에 접속했다. K 레스토랑의 ‘싫어요’ 버튼을 꾸욱 눌렀다. 망해라! 가책은 없었다. 저주할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상처는 생각보다 깊은 것이었다. ‘일못’ 컴플렉스는 나를 오래도록 괴롭혔다. 귀국 후 대학 졸업반이 되고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서 컴플렉스는 심해져만 갔다.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장에 들어갈 때면 사기꾼이 된 기분이었다. ‘일못’인 나를 ‘일잘’로 포장해 취업 시장에 내놓는 사기꾼.

어찌어찌 취업에 성공해 일을 한 지 만 6년 가까이 됐다. 내가 내놓은 결과물이 썩 마음에 든 적도, 그저 도망치고 싶었던 적도 있다. 늘 모든 걸 잘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마음은 많이 편해졌다. K 레스토랑에서의 추억과 사장에 대한 앙심도 서서히 잊혀졌다.

K 레스토랑을 다시 떠올린 건 얼마 전 이사를 앞둔 고향 집에서 버릴 물건을 정리하면서였다. K 레스토랑 시절 유니폼이 옛 옷장 깊숙한 곳에서 발견됐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기념 티셔츠였다. (일식집 유니폼이 왜 중국의 올림픽 개최를 축하하는 옷이었는지는 지금도 궁금하다.) 티셔츠에 코를 박고 킁킁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마셨다. 간장 냄새가 옅게 나는 것 같았다. 내친 김에 레스토랑 이름을 구글 검색창에 넣어봤다. ‘폐업’이라는 두 글자가 빨갛게 떴다.

혹시나 싶어 레스토랑의 페이스북 계정을 찾았다. 지난 9월 올라온 포스터 한 장이 마지막 게시물이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은 당신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사업자에게는 당신을 받지 않을 자유도,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자유도 있습니다.” 별다른 폐업 공지는 없었다.

사장은 떼돈을 벌어 가게를 접고 호의호식하고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보단 코로나19 타격으로 식당 문을 닫았다고 보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다. 내 저주가 통해버린 거면 어떡하지, 덜컥 겁이 났다.

상도동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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