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절·학습 다 잡아주네…美어린이, K-태권도에 빠지다

2021.09.02 14:44

미국에서도 태권도는 축구, 수영처럼 어린이 생활 체육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사진 153 TAEKWONDO

미국에서도 태권도는 축구, 수영처럼 어린이 생활 체육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사진 153 TAEKWONDO

초등학교 하교 시간 무렵, 개구쟁이들이 관장의 지시에 따라 우르르 노란색 봉고차에 오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부모들도 자녀가 6세 정도 되면 슬슬 태권도장을 알아볼 채비를 한다. 태권도장은 생애 첫 생활체육 실습 본연의 역할뿐 아니라 예절교육을 담당한다. 그뿐인가. 기초체력 훈련으로 아이들의 에너지 발산을 돕고 초등 교과 체육과 연계된 줄넘기 기술도 숙지시킨다. 생일에는 피자나 치킨 파티를 열고, 방학이면 ‘워터파크의 날’ ‘합숙의 날’을 마련해 아이들에게는 추억을, 부모에게는 ‘안식의 날’을 선사한다. 태권도장은 이렇듯 동네 보육 사랑방 역할을 해왔다.

미국 부모들도 이런 ‘K태권도장’의 매력을 알아버린 걸까. 어린이 수련자들의 외양만 조금 다를 뿐 국내 태권도장과 거의 흡사한 해외 ‘K태권도장’의 모습이 온라인상에서 화제다.

미국 MBA 마제스틱 태권도장은 여름 방학을 맞아 종합 학습 커리큘럼을 개설해 현지 부모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사진 MBA 마제스틱

미국 MBA 마제스틱 태권도장은 여름 방학을 맞아 종합 학습 커리큘럼을 개설해 현지 부모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사진 MBA 마제스틱

■ 동네 어른에게 90도 배꼽인사

“태권도 수업을 받으면서 우리 아이가 악마에서 천사가 됐어요.” 한 미국인 부모가 체육관 홈페이지에 작성한 K태권도장 이용후기다. 미국 각지에 포진한 태권도장의 온라인 후기란에는 만점에 가까운 별점과 함께 부모들의 절절한 ‘간증’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사범들은 태권도가 어린이 스포츠로 유독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유는 예절교육 덕분이라 입을 모은다.

미국 버지니아주 애슈번에서 ‘MBA 마제스틱 태권도장’을 운영 중인 최승민 관장은 1994년 태권도를 전파하겠다는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넜다. 그는 30년 가까이 미국 내 태권도장의 변천사를 지켜본 산증인이다.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가라테 도장 간판이 태권도장으로 바뀌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몰(상가)마다 태권도장 하나씩은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제 미국에서 태권도는 축구, 수영처럼 성장기에 한 번씩 거치는 어린이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어요.”

최 관장은 어린이 회원들이 도장에 오면 한국어로 ‘안녕하십니까’ 하며 90도 인사를 하도록 가르친다.

“미국 아이들은 옆집 어른을 만나면 손만 들고 ‘하이~’ 하는 게 익숙하죠. 제가 도장 사람들과 실험을 해보기로 했어요. 태권도로 이 동네 분위기를 우리가 바꿔보자고. 놀랍게도 미국 어린이들을 가르친 지 3개월이 지나니까 지나가는 할아버지께도 ‘안녕하십니까’ 하고 배꼽인사를 하더라고요.”

K태권도 인성교육에 반한 동네 부모들 사이에서 태권도 붐이 일기도 했다.

“저희 도장에서 ‘블랙 벨트’(검은띠)까지 따고 킥복싱 수업을 겸하기 시작한 8세 아이가 있어요. 그 아이가 킥복싱 도장에 가서 사범에게 ‘예설(Yes Sir)’ 하면서 90도 인사를 하니까 그 모습을 본 다른 부모들이 깜짝 놀란 거예요. ‘우리 애도 좀 맡아달라’고 찾아오셨죠.”

노스캐롤라이나주 코닐리어스에서 ‘153 TAEKWONDO’를 운영 중인 김도형 사범은 3대째 태권도 가족이다.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다 15년 전 대형 체육관 수석사범으로 스카우트돼 미국에 왔다. 그 역시 태권도에서 예절교육은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라 말한다.

“태권도는 예와 인을 중시하는 운동이지요. 그것이 바로 태권도의 정체성이자 장점이기에 해외 도장에서 더욱 예절과 인성을 강조합니다. 한때 한국에서 태권도가 레크리에이션화로 인기를 끌었을 때도 미국 사범님들은 태권도의 전통성을 지켜나갔어요.”

K태권도장이 태권도 수련 뿐만 아니라 생일파티, 지역 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로 현지 부모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사진 153 TAEKWONDO

K태권도장이 태권도 수련 뿐만 아니라 생일파티, 지역 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로 현지 부모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사진 153 TAEKWONDO

■ 코로나 위기도 이상무! K태권도장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위기는 미국 태권도장에도 여지없이 큰 시련을 안겼다. 두 사범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최 관장은 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K태권도장의 보육 모델을 기반으로 ‘종합 학습 케어’ 프로그램을 적극 도입했다.

“코로나 시대에 아이들을 어떻게 케어하면 좋을지 한국에 있는 태권도장 관장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부모 입장에서도 아이가 학원을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죠. 그래서 태권도장에 전문 선생님을 모시고 수학, 미술, 코딩, 글쓰기까지 하는 ‘Life Long Education’이란 종합 커리큘럼을 구성했더니 미국 부모님들 반응이 너무 뜨거운 거예요.”

김 사범은 온라인 화상수업으로 엄혹했던 시기를 막 넘겼다. 그에 따르면 현지 무도 체육관 중 태권도장이 유독 온라인 대응에 빨랐다.

“코로나가 터졌을 때 일찌감치 한국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선후배들과 연락하며 준비했어요. 온라인 수업과 야외 수업을 병행해 극복 아닌 극복을 할 수 있었죠. 코로나 사태가 극에 달해 다들 당황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는 태권도 사범님들이 가장 빠르게 움직였어요.”

세계태권도연맹에 따르면 태권도 회원국은 210개국이다. 유엔보다 많은 나라가 가입되어 있다. 이번 2020 도쿄 올림픽에서 태권 한국 종주국의 위상이 흔들렸다는 우려가 있었던 반면 뉴욕타임스는 태권도의 성공적인 세계화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여기에 ‘태권도 DNA’로 무장한 K사범들의 유연한 활약이 큰 힘을 보태지 않았을까. 그들은 먼 타국에서도 화려한 볼거리나 타격 중심의 무도가 아닌, 인성과 예절을 중시하는 태권도의 정신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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