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섬, 그냥 놔둘 순 없나요”

2024.03.24 12:00

(3) 한강 한가운데 ‘위기의 섬’

서울 한강 변에서 섬의 정체성을 오롯이 품고 있는 곳. 60여년 동안 갖은 개발 시도가 거쳐간 노들섬에서 지금 볼 수 있는 건물은 대중음악 공연장인 ‘노들섬 라이브하우스’다. 2020년 7월 촬영한 노들섬과 한강대교.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서울시 제공

서울 한강 변에서 섬의 정체성을 오롯이 품고 있는 곳. 60여년 동안 갖은 개발 시도가 거쳐간 노들섬에서 지금 볼 수 있는 건물은 대중음악 공연장인 ‘노들섬 라이브하우스’다. 2020년 7월 촬영한 노들섬과 한강대교.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서울시 제공

서울 한강 변에는 섬의 기원을 지닌 곳이 제법 많다. 이를테면 뚝섬. 이름에 여전히 섬의 정체성이 남았다. 지금은 서울숲이 되었다. 이 공원을 거닐며 섬의 흔적을 느낄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억새밭으로 유명한 하늘공원에 올라서도 마찬가지다. 섬은커녕 불과 30여년 전까지 쓰레기 매립지였다는 기억조차 이제는 희미하다. 뽕밭이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된 잠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여의도가 여전히 한강과 샛강에 둘러싸여 섬의 위상을 간직하고 있는데, 한때 ‘정치·경제 1번지’라고 불렸던 이곳에서는 무수한 도로와 지하철에 둘러싸여 섬에 있다고 자각할 틈새가 없다.

모름지기 섬이라면 그곳에 닿는 데 드는 수고가 육지와는 달라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뚝섬, 난지도, 잠실을 더는 섬이라고 보지 않는다. 여의도도 매한가지다. 누구나 쉽게 오갈 수 있다. 드나듦이 이보다는 좀 더 고생스러워야 비로소 섬다운 섬이라고 본다. 서울에서는 선유도나 밤섬이 그렇다. 각각 양화대교와 서강대교로 연결되지만 그래도 꽤 마음먹어야 그곳에 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노들섬의 지위는 다소 독특하다. 선유도와 밤섬처럼 한강대교가 육지와 이 섬을 잇지만, 역시 한나절쯤은 작정해야 닿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이 섬을 다룬 방식은 선유도나 밤섬과는 사뭇 달랐다. 오히려 뚝섬, 난지도, 잠실에 가까웠다. 이 아이러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어떤 깊은 착각이 여전히 이 섬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서울 중심’에 위치해 ‘특별하다’ 착각…기업·시장 등 ‘주인’ 바뀔 때마다 개발 집착
오세훈 시장 ‘예술섬’ 앞세워 또 공모전…자연과 공생하는 ‘선유도·밤섬’의 길 걸었으면

그것은 ‘노들섬은 특별하다’는 착각이다. 이런 생각은 대개 서울을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노들섬이 서울의 거의 한가운데 있다는 관찰에서 비롯된다. 노들섬 근방이 군사적·교통적 요충지였던 적은 있다. 이 섬 위를 지나는 다리인 한강대교는 1950년 한국전쟁 초반부터 수세에 몰린 국군이 인민군의 남하를 막겠다며 폭파한 ‘한강인도교’의 전신이다. 한강대교 남단에서 한 1㎞쯤 떨어진 곳에는 1941년 개교한 강남초등학교(전 강남심상소학교)가 있다. 당시에는 그곳이 강북에서 유일하게 연결되는 한강 이남, 즉 ‘리얼 강남’이었다는 뜻이다.

서울시는 ‘노들 글로벌 예술섬 국제설계공모’에 초청된 건축가 7인의 설계안을 제출받아 오는 5월 이 중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김찬중의 Nodeul(r)ing.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서울시 제공

서울시는 ‘노들 글로벌 예술섬 국제설계공모’에 초청된 건축가 7인의 설계안을 제출받아 오는 5월 이 중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김찬중의 Nodeul(r)ing.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서울시 제공

하지만 우리는 더는 인천항에서 제물포, 영등포를 거쳐 서울역으로 향하는 시대에 살지 않는다. 이 길은 20세기가 막 열릴 무렵 개항시대의 것, 중국 상하이에서 건너온 독립투사나 일제 장교의 것이다. 1900년 한강철교, 1917년 한강인도교를 지었을 때와 달리 지금은 한강을 건너는 다리가 너무 많다. 꼭 노들섬 근처를 지날 이유가 없다. 이제 ‘강남’이라고 할 때 아무도 한강대교 이남을 떠올리지 않는다. 서울 내부의 위상이 엄청나게 변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서울시가 조성하겠다는 ‘국가상징가로’는 경복궁~서울역~노들섬~노량진을 잇는다. 어떤 집단의 관념은 이렇게 잘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노들섬에 오랫동안 집착했다. 60여년 동안 노들섬을 개발하려는 모든 시도는 사실상 실패했다. 정부는 1967년 처음으로 노들섬을 ‘관광센터’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냈다. 이 관광센터는 호텔, 수영장, 스케이트장, 골프장의 집합체였다. 에버랜드도, 롯데월드도 없던 당시로써는 초대형 테마파크 프로젝트였다. 당대 유수의 토건기업이 이 사업에 눈독을 들였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침대 길이에 맞춰 사람을 잘라냈고, 우리는 테마파크 크기에 맞춰 섬을 키워냈다. 노들섬에 모래를 열심히 퍼부은 진흥이 처음 섬을 샀다. 진흥은 뭘 해보려다가 잘 안 되자 건영에 팔았다. 건영도 뭘 해보려다가 역시 잘 안 되자 서울시에 팔았다. 40년 가까이 돌고 돌아 다시 서울시에 넘어온 셈이다.

서울시는 ‘노들 글로벌 예술섬 국제설계공모’에 초청된 건축가 7인의 설계안을 제출받아 오는 5월 이 중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위르겐 마이어의 Nodeul Art Island.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서울시 제공

서울시는 ‘노들 글로벌 예술섬 국제설계공모’에 초청된 건축가 7인의 설계안을 제출받아 오는 5월 이 중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위르겐 마이어의 Nodeul Art Island.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서울시 제공

유감스럽게도 이후 20년은 이전 40년보다 훨씬 더 숨 가쁘게 돌아갔다. 민주화가 선거로 시장을 뽑는 시대를 열었다. 모든 시장은 지도상 서울의 중심인 노들섬에서 어떤 상징성을 봤다. 저마다 자신의 정체성을 이 섬에 투영하고 싶어했다. 이로써 이 섬에 사람을 끌어모은다면 든든한 정치적 자산이 되리라는 계산도 했을 법하다. 한마디로 1년 내내 사람이 바글바글한 섬을 만들길 바랐다.

이명박 시장은 노들섬이 오페라하우스가 되길 원했다. 오세훈 시장은 조금 달랐다. 오페라공연장을 겸한 ‘한강예술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예술섬이란 ‘모든 장르의 문화를 환상적으로 창조하고 즐기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오페라하우스보다는 좀 더 대중성이 강했다. “도시 경쟁력에 있어서 랜드마크는 필수적”이라는 게 그의 신념이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은 또 달랐다. 노들섬에 도시농원, 텃밭을 만들었다. 한강다리를 건너 농사지으러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예상과 달리 썰렁하자, 입만 열면 ‘시민’을 찾던 시장은 이번에도 시민에게 길을 물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 섬에서 보는 건물이 대중음악 공연장인 ‘노들섬 라이브하우스’다.

서울시는 ‘노들 글로벌 예술섬 국제설계공모’에 초청된 건축가 7인의 설계안을 제출받아 오는 5월 이 중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토머스 헤더윅의 Soundscape.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서울시 제공

서울시는 ‘노들 글로벌 예술섬 국제설계공모’에 초청된 건축가 7인의 설계안을 제출받아 오는 5월 이 중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토머스 헤더윅의 Soundscape.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서울시 제공

착각과 집착을 청산 못한 채 역사는 계속된다. 조만간 우리는 노들섬에서 또 새로운 시도를 보게 될 것이다. 2005년 이후 디자인공모전만 최소 3차례. 그간 수십 명의 건축가가 노들섬을 거쳐 가며 새로운 섬을 상상했다. 그중엔 건축계의 노벨상이란 프리츠커 수상자도 있었다. 10년 만에 서울시청에 돌아온 오세훈 시장은 다시 한강예술섬을 이야기하며 7명의 건축가를 불렀다. 지침은 ‘선 디자인, 후 사업계획’. 해석하면 ‘일단 돈 생각은 말고 무조건 화끈하게’다.

반복된 착각과 집착 위에서 열린 공모전은 그야말로 혼란스러웠다. 서울시가 ‘주변 지역과의 연결성을 강화해 달라’고 주문하자 건축가들은 앞다퉈 관람차, 케이블카, 드론택시, 공중트램을 꺼내들었다. 일개 섬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징과 의미를 부여하는 아이디어가 난무했다. 독일 건축가 위르겐 마이어는 노들섬에서 느닷없이 태극기의 4괘를 언급했다. 그는 불, 땅, 하늘, 물을 디자인 요소로 삼았다고 발표했다. 영국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은 ‘내사산’과 ‘외사산’ 개념을 노들섬 디자인에 적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조형은 그가 뉴욕에 만든 아름다운 인공섬 ‘리틀 아일랜드’를 떠올리게 한다. 이 작은 섬에서 음양오행과 풍수지리를 찾는 사태, 그 원인을 ‘노들섬은 특별하다’는 착각과 집착 말고 다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서울시는 이들에게 다시 한번 더 노들섬 디자인을 요청했고, 이 중 최종 당선작을 선정해 오는 5월 공개할 예정이다.

늦었지만 착각과 집착을 버릴 수는 없을까?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노들섬이 뚝섬, 난지도, 잠실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이 섬에 매일같이 사람이 들끓는 풍경을 보고 싶어한다. 해 질 녘 풍광이 아름다운 ‘노을 맛집’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허남설 기자

허남설 기자

하지만 선유도나 밤섬에 똑같이 요구하는 사람들을 나는 보지 못했다. 크기로 보나 위치로 보나 노들섬은 뚝섬, 난지도, 잠실보다 이 두 섬을 더 많이 닮았다. 옛 정수장 시설을 활용해 디자인한 생태공원으로 나들이와 촬영 명소가 된 ‘신선이 노니는 섬’ 선유도, 국제협약으로 보호하는 람사르습지·철새도래지이면서 이름 그대로 밤가시처럼 풀숲이 몽글몽글 무성한 밤섬.

노들섬 동쪽에도 사람과 자연의 공생을 추구하며 ‘미지의 상태’로 남긴 맹꽁이숲이 있다. 그런데 서울시가 공모전에 초청한 건축가 중 몇몇은 이 숲에도 콘크리트 구조물을 박는 아이디어를 냈다. 대체 왜 우리가 노들섬을 다루는 방식은 선유도나 밤섬과는 이토록 다른 걸까. 다가오는 5월에는 섬을 좀 섬답게 다루는 미래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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