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사라져가는 ‘제주해녀’,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발판 된 조례

2020.06.24 21:33 입력 2020.06.24 21:39 수정

제주 해녀문화 보존·전승

제주 서귀포시 법환좀녀마을 해녀학교 교육생들이 지난 7일 학교 앞 바다에서 실습 교육을 받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지난달 30일 입학한 6기 교육생들은 8월2일까지 해녀학교 수업을 마치고 원하는 교육생은 각 마을 어촌계에서 현장실습 과정을 거쳐 해녀에 입문하게 된다. 법환좀녀마을 해녀학교 제공

제주 서귀포시 법환좀녀마을 해녀학교 교육생들이 지난 7일 학교 앞 바다에서 실습 교육을 받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지난달 30일 입학한 6기 교육생들은 8월2일까지 해녀학교 수업을 마치고 원하는 교육생은 각 마을 어촌계에서 현장실습 과정을 거쳐 해녀에 입문하게 된다. 법환좀녀마을 해녀학교 제공

공동체 문화 바탕 둔 제주해녀
희소성·개척정신·항일운동 등
중요한 유산 가치 세계에 알려

고령화·낮은 수입에 해녀 감소
도, 소득보전·정착지원금 지원
해녀학교·박물관 등 문화 전수
올해 세계농업유산 등재 추진

산소공급 장치 없이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캐는 ‘해녀’. 사고 발생 위험이 높고, 일이 고되 그들을 비유해 ‘저승 돈 벌어서 이승 자식 뒷바라지한다’ ‘소로 태어나지 못해 해녀로 태어났다’는 속담이 전해질 정도다.

해녀는 전문 어업인으로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하지만 작업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아마’라 불리는 일본 해녀는 주로 2인 1조로 일을 한다. ‘아마’가 허리에 밧줄을 묶고 물질을 하고, 다른 한 명은 밧줄을 끌어당기는 일을 맡는다. 배 위에서 밧줄을 잡는 일은 주로 남성이 한다.

이와 달리 한국의 해녀는 바닷속에 홀로 들어가고 자력으로 떠오르기를 반복하며 해산물을 채취한다. 특히 한국 해녀의 삶에는 공동체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있다. 능력에 따라 하군, 중군, 상군 등으로 나눠 공동작업을 하며 이익을 나누고, 서로의 안전을 보살펴준다.

한반도 해녀의 발상지는 제주도다. 강원·경상도 등 국내 대부분의 해녀들은 제주에서 출가한 사람들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퍼져나가게 됐다. 제주해녀의 기록은 <삼국사기>와 <고구려본기> 등에도 남아있다. 제주해녀는 잠수 능력이 뛰어나 일제강점기에는 징용을 당하기도 했으며, 해외로 원정을 떠나 생계를 꾸려가기도 했다.

제주시 구좌읍 제주해녀박물관에서 지난 18일 관람객들이 전시물 등을 돌아보고 있다.

제주시 구좌읍 제주해녀박물관에서 지난 18일 관람객들이 전시물 등을 돌아보고 있다.

제주해녀의 희소가치와 공동체문화 그리고 강인한 개척정신 등이 소중한 ‘인류자산’이라는 의견에는 국제적으로도 별 이견은 없다. 거기에 제주해녀들은 일제에 맞서 민족 자존감을 드높이기도 해 우리에겐 중요한 유산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전국에서 유일하게 대규모로 여성 항일운동을 벌인 이들도 제주해녀다. 1931∼1932년 구좌, 우도, 성산 등 제주 동부지역 해녀들은 일제의 식민지 경제수탈정책에 항거해 항일운동에 나섰다. 연인원 1만7000여명이 참가해 총 238회의 시위를 벌였고, 이 중 옥고를 치르다 세상을 떠난 해녀들도 있다.

민족의 혼과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제주해녀는 한때 무관심 속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제주해녀는 1970년대만 하더라도 약 1만5000명에 이르렀으나 양식장 확산 등 산업구조 개편과 기후변화에 따른 해산물 감소, 고령화 등으로 1980년에는 약 7800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게 된다. 이후에도 감소 현상은 계속됐지만 국가나 지방정부 모두 그런 현실에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

제주도의회는 2009년 11월4일 당시 오옥만 의원이 대표발의한 ‘제주도 해녀문화 보존 및 전승에 관한 조례안’을 제정했다. 조례안은 해녀문화의 발굴·조사 및 연구사업을 벌이고, 해녀어장 보호·관리, 해녀 관련 무형문화재·민속자료의 자원화 등을 추진토록 했다.

또 해녀문화의 세계화를 위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한편 해녀 관련 각종 시책 개발과 추진 전략을 5년 단위로 수립해 시행토록 했다.

제주도지사는 해녀 생업기술의 전수와 연구 등을 위해 필요한 경비를 지원하며, 해녀문화 전수생을 선발하고 그들에 대해 행정·재정적 지원을 하도록 규정했다. 해녀문화 보존·전승위원회 운영과 함께 체계적 해녀문화 교육을 위한 연구기관을 설립해 해녀의 삶과 사회·문화적 기능의 보존, 역사문화적 가치를 조명하는 역할을 담당하도록 했다. 이 밖에도 관련 국제기관과의 교류 추진과 지속적인 해녀 홍보 및 전승기반 마련을 위한 ‘해녀의 날’을 운영토록 했다.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이 조례는 희소가치가 높은 한국 해녀를 국제적 문화유산으로 이끈 디딤돌 역할을 해낸다. 유네스코는 2016년 12월1일 에티오피아에서 진행한 제11차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 간 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에서 ‘제주해녀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최종 등재했다. 문화재청이 2014년 4월 등재를 신청한 후 약 2년8개월 만이며, 조례 제정 약 7년 만에 얻은 결실이었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점과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하도록 한 점, 관련 지식과 기술이 공동체를 통해 전승된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했다. 2017년 5월에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이 조례는 제주해녀 부활에 희망도 주고 있다. 조례에 근거해 2007년 11월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에 한수풀해녀학교가, 2015년 5월에는 서귀포시 법환좀녀마을에 해녀학교가 각각 개교했다. ‘좀녀’는 해녀의 제주도방언이다. 해녀학교를 수료한 이들 가운데 일부는 어촌계 가입 등의 절차를 거쳐 해녀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도의회는 2017년 6월엔 좌남수 의원(70)이 발의한 ‘제주도 해녀어업 보존 및 육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해녀에게 소득보전과 정착 지원금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근거를 마련했다. 제주도는 2018년부터 매년 9월 셋째 주 토요일을 ‘제주해녀의 날’로 지정,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다.

제주도는 올해부터 해녀들의 새로운 소득원 발굴과 해녀 문화산업 육성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제주해녀 어업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조례를 찾아서](25)사라져가는 ‘제주해녀’,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발판 된 조례

하지만 제주해녀는 고령화와 낮은 수입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로 여전히 감소 추세다. 2010년 4995명이었던 제주해녀는 지난해 말 기준 3820명으로 매년 평균 약 130명이 감소하고 있다.

법환좀녀마을 해녀학교 고승철 교장(61)은 “법환마을 해녀의 80% 이상은 나이가 70세 이상이어서 머지않아 해녀의 급격한 감소가 불가피하다”며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에 등재한 것에 그치지 말고 제주도는 물론 정부도 나서 다양한 육성 및 지원 정책으로 하루빨리 젊은이들이 해녀를 평생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시리즈 끝 >

■조례 대표발의자 오옥만 전 제주도의원 “주관 부서 서로 미룰 만큼 해녀문화 관심도 낮았지만 도 경쟁력 높일 수 있다 여겨”

오옥만 전 제주도의원

오옥만 전 제주도의원

“후손들이 ‘바당(바다의 제주어)밭’을 일군 제주해녀들의 삶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09년 11월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문화 보존 및 전승에 관한 조례안’을 대표발의해 제주해녀가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남는 데 초석을 마련한 오옥만 전 제주도의원(57·사진)은 2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주해녀에 대한 열정이 여전히 식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그는 “제주에서 해녀는 어머니이고, 가족이고, 이웃이며, 제주의 상징이기도 하다”며 “그들이 노동하면서 부르는 노래, 사용하는 도구, 모여앉아서 불을 쬐던 불턱,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 등 생활 속 모든 모습이 세계적으로 희소성이 높은 문화로 이것들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것이 제주도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조례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오 전 의원은 “조례 제정 당시 집행부(제주도)에서 서로 주관 부서를 미루는 바람에 상정이 일년 넘도록 지연되다 직접 도지사에게 항의해 해결되기도 했다”며 “당시에는 ‘해녀문화’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했을 정도로 행정의 관심도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당시 제주도 문화교통관광국은 조례안에 포함된 해녀의 어장관리나 해녀교육 등의 문제는 해양수산국에서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해양수산국은 해녀문화의 전승보전은 문화교통관광국이 주관해야 할 사항이라며 맞서기도 했다. 현재는 해양수산국 해녀문화유산과에서 담당하고 있다.

오 전 의원은 “바다 오염으로 수확물이 점차 줄어들어서 해녀들은 물질을 해도 제대로 된 수입을 얻기 어려운 실정에 처해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대책을 중앙·지방 정부가 고민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도의 독특한 해녀문화를 보전하고 후세에 전승하는 것은 우리 세대에 맡겨진 중대한 책임”이라며 “제주도는 의료비, 잠수복 지원 외에도 문화적 측면에서 적극적이고 과감한 지원정책을 추진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조례 제정 당시 꿈이었던 제주해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는 개인적으로 기쁘고 뿌듯하다”면서 “현재는 우려스러운 점이 많지만 제주해녀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길 바라며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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