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프리즘]두 청소아줌마의‘화장실 식사’

2001.06.01 00:33

“아줌마, 도시락 싸왔는데 오늘은 어디서 먹죠?”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화장실 앞에서 신참 환경미화원인 영숙이 엄마가 선배인 김씨 아줌마에게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김씨 아줌마는 청소도구를 보관하는 탕비실 구석으로 영숙이 엄마를 이끌고 들어가 주섬주섬 자리를 만들었다. 1평 남짓한 탕비실에 쪼그려 앉은 두 사람은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김씨 아줌마는 장소에 개의치 않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화장실 옆 창고에서 식사를 한다는 게 영 꺼림칙해 영숙이 엄마는 쉽게 젖가락을 들지 못했다.

김씨 아줌마가 한마디 했다. “영숙이 엄마, 20분 만에 탈의실까지 갔다 오려면 밥먹을 시간도 없어요. 나도 처음엔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자 어서 들어요”. 그러면서 김씨 아줌마는 영숙이 엄마보다 먼저 취직해서 지난달 받게 된 월급 자랑을 했다. “55만5천7백원이 통장에 입금됐는데 너무 소중해서 지금까지 손도 안대고 있어요. 대학에 다니는 아이들 차비라도 보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첫월급을 받고 보니 직장생활의 맛이 새롭게 느껴졌어요”

품 속에서 통장을 꺼내고, 그것을 부럽게 구경하는 두 아줌마들의 ‘휴게실’ 밖에서는 이들 월급의 몇배짜리 국제선 티켓을 쥔 신혼부부들이 허니문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대광기자 ilovei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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