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주권 침해 조약” 글에 판사 100여명 댓글 동조

2011.12.01 22:10 입력 2011.12.01 23:47 수정
이범준 기자

김하늘 부장판사 … “난 합리적 보수주의자”

김하늘 인천지법 부장판사(43·사법연수원 22기)가 1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불평등성을 분석해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올린 글이 판사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김 부장판사는 글에서 “한·미 FTA가 사회통합의 큰 장애물이 되었지만 1500쪽에 이르는 협정을 이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읽어본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 자신도 다른 요약 자료를 통해 내용을 (대략이나마) 알게 됐다”며 한·미 FTA가 불평등조약이라는 의심이 드는 이유로 5가지를 지적했다.

김 부장판사는 우선 한·미 FTA로 한국의 법률상 장벽은 제거되는 데 반해 미국의 법률상 장벽은 그대로 존속한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한국은 성문법 국가여서 FTA가 비준·발효되면 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갖게 된다. 신법 우선 원칙에 따라 한·미 FTA에 배치되는 모든 법률과 하위 규범은 무효가 된다. 반면 미국은 불문법 국가여서 한·미 FTA 자체를 통과시킨 것이 아니라 200쪽짜리 이행법안만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이 이행법안에는 ‘주법 규정이 FTA와 다르다는 이유로 주법을 적용 못하게 할 수는 없다’고 돼 있다”고 했다.

“사법주권 침해 조약” 글에 판사 100여명 댓글 동조

김 부장판사는 둘째로 한·미 FTA가 개방 분야를 적시하는 포지티브 방식이 아니라 비개방분야를 정한 네거티브 방식으로 작성된 점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보다 산업과 기술이 발전한 나라와 협정을 맺을 때는 포지티브 방식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한·EU FTA가 포지티브 방식의 대표적인 예”라고 적었다.

셋째로는 역진방지조항(Ratchet)을 지적했다. 그는 “이 조항은 한번 개방된 수준을 어떠한 경우에도 그 이하로 되돌릴 수 없게 한다. 가령 스크린 쿼터의 경우 146일에서 73일로 대폭 줄었다. 일반적으로는 축소한 뒤 영화 산업의 피해가 심각하다며 100일로 다시 늘리는 일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한·미 FTA가 체결되면 불가능하게 된다. 정부의 융통성 있는 시장보호 정책을 취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앤 것”이라고 했다.

넷째로 상대 국가의 정책이나 규정 때문에 간접적으로 입은 손해를 보상해주기로 한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김 부장판사는 “예를 들어 한·미 FTA는 정부의 세금, 보조금, 불공정거래 시정조치 등 정책으로 자본 또는 기업이 기대이익을 잃으면 물어주도록 돼 있다. 만약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펼 경우 외국계 기업에 손실을 안겨주게 되고, 간접적인 손실은 피해액을 산출하기도 어려워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김 부장판사는 다섯째로 투자자-국가소송제(ISD)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한·미 FTA 위반으로 투자자 손실이 발생하면 국내 법원이 아니라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에 직접 제소할 수 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우리나라의 사법주권을 빼앗는 조항이다.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는 조약의 최종해석을 한국 법원이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 같은 5가지 문제점을 “마치 바둑을 둘 때 멀리서부터 서서히 대마를 포위해서 결정적 한 방을 날리듯이, 한·미 FTA는 네거티브 방식에 의해 무제한의 개방을 하게 하고, 역진방지조항에 의해 정부의 시장보호 정책을 막고,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새로운 중소기업 보호정책을 하려고 하면 직접손해가 아니라 간접적 기대수익까지 배상하도록 규정한 다음, 마지막으로 ISD 조항으로 그 최종적 해결권을 우리나라 사법부에서 빼앗아 미국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ICSID에 넘겨준 것”이라고 요약했다.

이 글에는 100건 넘는 지지와 1~2건의 반대 댓글이 붙었다. 수도권의 김모 부장판사는 “FTA를 단지 정치·경제·외교적인 문제로 생각한 탓에, 헌법과 법률의 문제 그리고 사법부의 권한을 침해당할 수도 있는 문제라는 면에서 생각하지 못한 무지함이 부끄럽다. 깊은 관심과 연구를 통해 문제를 제기한 김하늘 부장님이 존경스럽다”고 했다. 박모 판사는 “제안에 동의한다. 다만 정치적으로 비쳐지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 범위도 사법부의 사법제도에 관련한 부분으로 제한한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황모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법원이 구체적 사건도 없이 규범통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 판사님들의 답답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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