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대체 뭡니까”…헌법의 한계 넘나든 노무현의 물음

2019.03.23 06:00 입력 2019.03.23 06:01 수정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변호인 - 감독 양우석|2013년 한국

빽 없고, 돈 없는 세무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이 인권변호사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변호인>은 2013년 말 개봉해 11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배우 송강호가 연기한 극중 명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헌법정신이기도 하다.  영화 <변호인> 중에서

빽 없고, 돈 없는 세무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이 인권변호사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변호인>은 2013년 말 개봉해 11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배우 송강호가 연기한 극중 명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헌법정신이기도 하다. 영화 <변호인> 중에서

세무변호사 노무현이 인권변호사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가 <변호인>이다. 전두환 정권은 1981년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회사원 22명을 불법으로 가두고 고문해 기소한다. 이 영화 배경인 부림사건이고 노무현이 변호인이다. 영화 제목이 ‘변호사’가 아닌 ‘변호인’인 것부터 노무현의 변화를 드러낸다. 변호사를 부르는 이름은 민사 대리인과 형사 변호인으로 나뉜다. 대리인은 재산문제 등을 대신해서 처리한다는 뜻이고, 변호인은 기소된 사람을 옆에서 돕는다는 의미다. 영화에서 그리고 역사에서, 노무현은 대리인에서 변호인으로 나아간다.

영화는 전반부에서 노무현의 인간적인 약점들을 거듭해서 드러낸다. 고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이라거나 길에서 명함을 뿌려가며 사건을 수임했다는 식의 얘기는 오히려 그가 대통령에까지 오르는 정치적 자산이다. 영화는 보수 세력이 말하듯 어쩌면 ‘교양이 부족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반찬을 집어 먹고 사무실에 꽂아둔 영어책은 읽지도 못한다. 영화는 법조인 출신 정치인 노무현을 현실의 세계에서 신화의 세계로 끌어올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듯하다. 오로지 그의 변화에만 주목하고 있다.

시민 변호로 깨어난 헌법정신
‘재신임 국민투표’로 시작된
대통령 노무현과 헌재의 인연
정치중립 의무 ‘개인’ 헌소까지
정말로 정치 전술이었을까
헌법의식이 박약한 현실과
국민의 높아진 법의식이 충돌
헌재의 역할과 위상도 오른 것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변호인 노무현이 법정에서 헌법 제1조2항을 외치는 장면이다. 고문경찰을 증인으로 부른 노무현은 그를 신문한다. “학생과 시민 몇 명이 모여서 책 읽고 토론한 게 국보법에 해당하는지 안 하는지 증인은 도대체 뭘 보고 어떻게 판단했습니까. 판단 근거가 뭡니까.” 고문경찰은 노무현에게 윽박지르듯 답한다. “내가 판단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판단합니다.” “국가, 증인이 말하는 국가란 대체 뭡니까.” 고문경찰은 이제 소리까지 지르며 말한다. “변호사라는 사람이 국가가 뭔지 몰라!”

배우 송강호가 연기하는 노무현의 명대사가 여기에서 나온다. 노무현은 눈이 빨개져서 말한다. “압니다. 너무 잘 알지요. 대한민국헌법 제1조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그런데 증인이야말로 그 국가를 아무 법적 근거도 없이 국가보안 문제라고 탄압하고 짓밟았잖소. 증인이 말하는 국가란 이 나라 정권을 강제로 찬탈한 일부 군인들 그 사람들 아이야!” 국민주권을 설명한 이 단순한 조항이 가슴 뭉클하게 들리는 이유는 못 배우고 가난한, 그래서 우리와 비슷한 노무현이 말했기 때문이다.

국민주의나 애국주의로 보일 만한 이 장면은 영화 마지막에서 극복된다. 부림사건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뛰어드는 노무현은 1987년 박종철 추모행사가 경찰에게 가로막히자 외친다. “시민동지 여러분! 우리는 지금 박종철 군의 추모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법시위가 아닙니다. 흩어지지 말고 이 자리를 지킵시다.” 시위를 가로막는 법률 위에 시위를 보장하는 헌법이 있음을 호소하고, 핍박받는 국민에서 연대하는 시민으로 나아가자고 말한다. 노무현의 살아있는 헌법정신은 엘리트가 가득한 법과대학에서는 얻을 수 없는 도저(到底)한 것이었다.

[이범준의 법정&영화]“국가란 대체 뭡니까”…헌법의 한계 넘나든 노무현의 물음

노무현은 권력의 담지자인 대통령이 되어서도 헌법을 고민했고, 그 한계를 치열하게 물었다. 임기시작 8개월째이던 2003년 10월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한다. 야당의 비협조 때문에 국정수행에 지장을 받아서라고 이유를 밝혔다. 행정자치부 장관 김두관 해임건의안과 감사원장 윤성식 임명동의안 부결 등이 대표적 예였다. “무슨 이유가 있어야 부결이 되더라도 납득할 것 아닙니까? 몇 달 동안 계속해서 혼란을 거듭하면서 싸움을 계속하는 것보다 명쾌하게 정국을 정리해나가는 것이 정국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재신임 국민투표는 근거가 없어 헌법 위반이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된다. 헌재는 곧바로 다음 달 11월 결론을 선고했다. 재판관 5명이 심판대상이 아니라며 본안에 가지 않고 각하한다. 나머지 4명은 본안에 들어가 위헌의견을 낸다. 이렇게 재신임 사건을 시작으로 노무현과 헌재의 인연이 시작된다. 굵직한 것만 해도 이라크 파병 헌법소원, 대통령 노무현 탄핵심판, 신행정수도 헌법소원,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 논란, 종합부동산세법 헌법소원 등이 있다. 노무현 정부가 헌법소송을 당하기도 했지만, 노무현 자신이 헌법소송을 내기도 했다.

대통령 임기 종료가 8개월 남은 2007년 6월 노무현은 개인 자격으로 헌법소원을 냈다. 자신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했다는 이유다. 같은 달 중앙선관위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선거중립의무를 촉구한 일을 가리킨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겨냥해 한 발언이 문제가 됐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게 좀 끔찍해요. 한 가지 분명한 건 무책임한 정당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대운하도 민자로 한다는데 어디 제정신 가진 사람이 투자하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소원을 청구한 요지는 이렇다. “선출직인 대통령은 공직선거법이 정한 공무원의 정치중립도 요구받지 않고, 선거운동도 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만에 하나, 선거법이 공무원 정치금지 조항이 대통령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면 헌법정신을 훼손한 위헌 조항이다. 그런 해석은 권위주의 시절 제왕적 대통령의 과도한 권한을 막기 위해서나 가능한 것이다. 이제 대통령이 자기 의사를 전 사회구성원에게 드러내고, 논쟁·대화·협을 거쳐 통합·조정을 추구해야 한다. 세계적으로도 대통령이나 수상의 정치활동을 충분히 보장한다.” 하지만 헌재의 결론은 기각이었다.

이 사건들을 처리한 당시 헌법재판관들은 노무현의 헌법세계를 이렇게 말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내정해 임명한 검사 출신 송인준 전 재판관의 설명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진취적인 정책을 많이 펴면서 헌법의 한계를 넘나들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지향하는 헌법의 한계선이었다. 우리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서고 싶어서 선 게 아니다. 사법적극주의를 내세워 심판한 것도 아니다. 들끓는 민심, 흔들리는 여론을 잠재울 곳은 재판소뿐이었다. 좋든 싫든 전면에서 결정해야 했다. 그 바람에 역설적으로 헌재의 위상이 순식간에 올라갔다.”

한나라당이 추천한 판사 출신 권성 전 재판관의 평가는 이렇다. “노무현 대통령이 결과적으로 헌재에 적잖게 기여해, 재판소의 위상을 엄청나게 부각시켰다. 하지만 대통령이 법률가로서 접근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 전술 차원에서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과정을 통해 지지자를 끌어모으고 결속시켜 효과를 낸 게 아닌가. 국회의 탄핵가결 뒤 총선에서 크게 승리한 게 대표적이다.” 권 전 재판관은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인 1996년 전두환을 무기징역으로, 노태우를 징역 17년으로 감형하며 ‘항장불살’이란 표현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내용은 기자가 10년 전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헌법재판소 논픽션을 쓰면서 받은 인터뷰다. 그해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문재인 변호사를 4시간 인터뷰했다. “입법·사법·행정 국가 전체에 헌법의식이 박약했던 것이 사실이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국민들의 법의식은 점점 올라가고, 헌법의식도 높아졌다. 말하자면 헌법의식이 부족한 현실과 높아지는 국민들의 의식이 부닥치면서 헌법 사건들이 생긴 것이다. 크게 보면 그렇다. 이런 과정에서 헌재의 역할과 위상이 중요해진 것이다. 특히 참여정부에서 민주화가 크게 진전되면서 헌법의식이 결여된 여러 관행이 많이 충돌했다.”

변호사로 돈벌이하는 사람들이 단 한 번 헌법을 펼쳐보지 않는다. 그런 변호사들이 시민의 고통을 두고 흥정해 받아내던 성공보수가 사라졌다며 헌법소송을 제기하고, 변호사의 세무사 자격 자동취득 제도가 없어졌다고 국회 앞에서 삭발을 하고 헌법을 들먹인다. 더 이상 존경할 만한 아니, 믿을 만한 변호사가 별로 없다. 다가오는 노무현 10주기가 더욱 서글픈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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