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는 혐오표현을 혐오하나

2019.05.31 16:21 입력 2019.06.01 10:12 수정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래리 플린트’ 감독 밀로스 포만|1996년 미국

법과 판결의 역할은 포함과 배제를 정하는 일이다. 헌법재판소가 포함과 배제를 오판한 유명한 사건이 음란물을 표현의 자유 보호 대상에서 제외한 1998년 결정이다. “음란이란 인간존엄 내지 인간성을 왜곡하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표현으로서 오로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할 뿐 전체적으로 보아 하등의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으로서 (중략) 언론·출판의 자유에 의해서 보호되지 않는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헌재가 적극적으로 축소한 결정이었고 법조계와 학계는 비난했다. 4년 만인 2002년 헌재가 입장을 바꿔 음란물도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대상이라고 했다. 오판을 만회하기 위해서인지 이후에도 음란물이 표현의 자유로 보호된다는 결정을 거듭 내렸다. 2009년에는 판례변경을 명시해 “음란표현은 헌법 제21조가 규정하는 언론·출판의 자유의 보호영역 내에 있다고 볼 것인바, 종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취지로 판시한 우리 재판소의 의견은 변경한다”고 했다.

영화 <래리 플린트>는 포르노잡지 ‘허슬러’의 발행인 래리 플린트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벌인 미국 연방대법원 재판이 소재다. 어려서 밀주를 만들어 팔던 플린트는 커서는 스트립 바를 운영했다. 이 가게를 홍보하려 시작한 누드사진 실린 광고지가 허슬러다. 플린트는 700만부나 팔리는 ‘플레이보이’가 사기라고 생각했다. 흐릿한 누드사진과 읽히지 않는 기사가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 마티니 제조방법이나 스테레오 설치방법을 누가 읽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허슬러’ 촬영현장에 나가 모델에게 다리를 벌리라고 했다. 이렇게 찍으면 문제 된다는 사진작가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 종교 있지? 신이 사람을 만들고 여성도 만들었다. 여자의 성기도 마찬가지다. 지금 신에게 도전하는 것이냐.” 동화 <오즈의 마법사> 주인공 도로시는 허슬러에서 양철나무꾼에게 오럴섹스를 했다. 음란물 배포죄로 기소되고 오하이오주 1심 법원은 징역 25년을 선고한다. 청소년에게 노출될 우려가 있다는 검사 질문에 “애들이 술집에서 술 마시다 걸린다고 술을 판매금지시키지는 않는다”고 답했지만 배심원을 설득하지는 못했다. 2심에서야 무죄로 풀려난다.

포르노잡지 ‘허슬러’ 발행인 래리 플린트는 ‘재판장 엿 먹어라(FUCK THIS COURT)’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법정에 출석하지만 결국에는 무죄를 선고받는다. 사진은 영화 <래리 플린트>의 한 장면.

포르노잡지 ‘허슬러’ 발행인 래리 플린트는 ‘재판장 엿 먹어라(FUCK THIS COURT)’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법정에 출석하지만 결국에는 무죄를 선고받는다. 사진은 영화 <래리 플린트>의 한 장면.

영화는 포르노 잡지 ‘허슬러’ 발행인의 법정 다툼을 소재로 한다.
그는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다
가짜기사 ‘목사의 근친상간’으로 피소됐지만, 대법은 ‘표현의 자유’를 들어 플린트의 손을 들어줘
‘혐오 표현’은 어떨까…미국·일본, 규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비난하고 반박할 표현의 자유 인정
그러나 홀로코스트를 경험했던 유럽은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 선동’은 처벌
우리 헌재는 음란물을 표현의 자유에 포함시켰지만, 무제한이 아닌 그 한계를 섬세하게 조정
영화는 “수정헌법 1호가 나 같은 쓰레기를 보호한다면 모두 보호받을 것”이라고 한다

이후에도 플린트는 허슬러를 둘러싼 여러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데 법원 앞에서 누군가의 총을 맞는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범을 잡으면 100만달러를 준다는 기사를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하반신을 못 쓰게 되고 진통제를 계기로 마약을 시작한다. 이 무렵부터 플린트는 재판을 부정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다. 법정에서 자신을 보호하겠다며 군용헬멧을 쓰고, ‘재판장 엿 먹어라(FUCK THIS COURT)’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거나 성조기로 만든 기저귀를 한다. “허슬러 지지자는 많아도 당신 지지자는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리고 1988년 연방대법원 법정에 선다. 허슬러는 1983년 제리 폴웰 목사의 가짜 인터뷰를 실었는데 “나의 첫 경험은 문란한 어머니와 화장실에서 한 근친상간”이란 내용이었다.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고의적인 정신적 가해로 폴웰이 소송했다. 연방대법원은 전원일치로 이렇게 판결했다. “수정헌법 제1조는 자유로운 사상 표현을 존중한다.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이며 진리 탐구를 위한 초석이자 건강한 사회의 밑거름이다. 좋은 의견이든 나쁜 의견이든 모두 들어보기 위해 수정헌법 제1조가 존재한다.” 플린트의 승리다.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데도 성기가 나오는 음란물과 공동체를 흔든다는 이적표현 사건이 기여했다. 1996년 영화 사전심의 제도가 위헌으로 폐지되자 이듬해 정부는 상영등급제도를 만들었다. 18세 관람가, 15세 관람가와 함께 등급보류가 있었다. 등급보류를 받으면 개봉하지 못했다. 극장에 걸려면 영화를 잘라야 했다. 여기에 헌법소송을 제기한 영화가 <둘 하나 섹스>다. 등급보류에 헌재가 위헌을 선고하자 정부는 2002년 제한상영 등급을 개발했다.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해야 하는 등급이었다. 제한상영관은 건물 외부에 광고하지 못하고, 복합상영관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이 제도가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소송해서 위헌을 받아낸 영화가 성기노출 장면이 있는 <천국의 전쟁>이다. 국가보안법 제7조 1항 고무·찬양죄에 위헌성이 있다며 헌재가 한정합헌을 선고한 이유도 표현의 자유 침해다. 하지만 헌재는 위헌으로 폐지하는 대신 조건을 걸어 표현의 자유를 계속 제약했다.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적용된다고 할 것이므로 이와 같은 해석하에서는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그래서 이 조항이 아직 남아 있다.

요즘 표현의 자유를 시험하는 문제가 이른바 혐오표현(hate speech)이다. 음란물도 이적표현도 되지만 혐오표현은 용납하지 못한다고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심하다, 이건 다르다는 것이다. 래리 플린트 사건에서도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비슷하게 변호사에게 물었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을 멍청이라고 하는 정도는 이해하지만, 어머니와 근친상간을 한다는 표현은 다르지 않은가.” 이는 상황에 따라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보수주의자 스캘리아의 복선이었다. 스캘리아도 결론에서 플린트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기자가 지난해 인터뷰한 스티븐 브라이어 연방대법관도 헤이트 스피치를 규제하지 못한다고 세 번이나 답했다. 가까운 일본에도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법률이 없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대본영이 표현의 자유를 통제해 전쟁 반대를 막고 시민들을 사지(死地)로 보낸 기억 때문이다. 재일코리안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가 한창일 때도 양심적 법학자들조차 규제에는 반대했다. 다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부당한 차별언동을 해소할 의무가 있음을 확인한 헤이트스피치해소법이 2016년 생겼다. 오사카시 등의 조례도 이를 참고한 수준이다. 최고재판소도 불특정 다수가 대상인 헤이트 스피치를 처벌하지는 못한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헤이트 스피치가 잦아든 이유는 일본 정부가 이들을 처벌해서가 아니다. 헤이트 스피치를 비난하고 반박할 표현의 자유가 있어서다. 몇 해 전 오사카에서 있던 일이다. “조센진은 돌아가라”고 외치는 재특회 시위대 앞을 교복 차림의 여중생이 막아섰다. “아저씨들이 뭔데 우리 (한류스타) 오빠들이 있는 한국을 욕하고 있어. 아저씨들이야말로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헤이트 스피치 반대 시위대 카운터스도 “너희들은 일본의 수치”라며 재특회를 조직적으로 막아왔다. “헤이트 스피치를 처벌한다면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장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당시 군인들이 이제는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일본 법조인들이 말한다. 우리에게는 재특회의 헤이트 스피치와 위안부에게 사과하라는 주장이 완전히 다르지만 정치적인 입장을 투영한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두 발언의 공통점은 일본에서 인기 없는 주장이라는 점이다. 래리 플린트의 대리인은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면 인기 없는 발언(unpopular speech)만 벌주게 되는데, 이 나라를 강하게 만들려면 인기 없는 발언이 필요하다”고 법정에서 말했다.

한국에서 혐오표현을 쟁점으로 다룬 판례는 아직 없다. 처벌법이 없기 때문에 혐오나 증오를 당장 처벌할 방법도 없다. 기존의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해당하면 처벌할 뿐이다. 더구나 둘은 국제사회가 폐지를 꾸준히 요구해온 조항이다. 하지만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럽에서는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선동을 처벌한다. 그래서 우리도 처벌을 해야 한다거나 처벌하지는 않더라도 민사나 행정으로는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그런데 혐오표현으로 헤이트 스피치를 번역하면서 감정표현을 처벌하느냐는 오해가 생겼다. 최근 인정받는 혐오표현의 정의는 “인종, 민족, 종교, 성별 및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등에 기하여 역사적으로 차별을 받아온 집단에 대한 부정적 편견에 기반한 적대적 표현행위”(이승현 연세대 박사)이다. 표적집단 구성원에게 일어난 개인 문제이기보다 이들이 속한 사회 전체 문제로 귀결된다는 점에 주목한 정의다. 혐오가 폭행 등 범죄 이유인 경우 무겁게 처벌할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혐오가 무지나 편견에 의한 것이라면 가중처벌은 어렵지 않으냐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사전검열과 달리 사후규제는 공익을 위해서는 가능하다. 표현의 자유도 무제한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현방식의 변화와 함께 둘은 구분이 어려워졌다. 게다가 국가는 줄곧 사후규제라고 주장하면서 사건검열의 효과를 내왔다.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미국이든 한계를 두려는 유럽이든 표현의 옳고 그름은 가리지 않는다. 국가가 내용을 판단하는 순간 파시즘이 되기 때문이다. 연방대법원 변론을 마치고 래리 플린트는 말했다. “수정헌법 1조가 나 같은 쓰레기(scumbag)를 보호한다면 모두 보호받을 겁니다. 내가 최악이니까.” 영화의 영어 제목이 <인민 대 래리 플린트(The People vs. Larry Flynt)>인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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