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의 복잡한 갈등 보며 곱씹어본다…“국가란 무엇인가”

2019.08.02 16:36 입력 2019.08.03 11:24 수정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이중간첩 김현정 | 2002년 한국

밀정 김지운 | 2016년 한국

남한으로 위장 귀순한 북한 정보조사부 림병호(한석규)는 중앙정보부의 의심을 잠재우려 반공 선전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하지만 중앙정보부 간부는 “사람들을 쉽게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이중의 경고를 한다(왼쪽 사진). 의열단을 추격하던 조선총독부 경찰 황옥(송강호·극중 이정출·오른쪽 사진 오른쪽)은 의열단장 김원봉(이병헌·극중 정채산·가운데)을 핵심 간부 김시현(공유·극중 김우진)을 통해 만나게 되고, 조직과 조국 사이에서 갈등한다.   쇼박스·워너브러더스코리아

남한으로 위장 귀순한 북한 정보조사부 림병호(한석규)는 중앙정보부의 의심을 잠재우려 반공 선전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하지만 중앙정보부 간부는 “사람들을 쉽게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이중의 경고를 한다(왼쪽 사진). 의열단을 추격하던 조선총독부 경찰 황옥(송강호·극중 이정출·오른쪽 사진 오른쪽)은 의열단장 김원봉(이병헌·극중 정채산·가운데)을 핵심 간부 김시현(공유·극중 김우진)을 통해 만나게 되고, 조직과 조국 사이에서 갈등한다. 쇼박스·워너브러더스코리아

“개인의 청구권은 국가가 없애지 못한다”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의 뼈대 이론이다. 식민지가 불법이라는 선언 이전에 이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국가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다. 한국 사람의 청구권을 한국 정부가 소멸시키지 못한다고 한국 법원이 판결한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 정부가 청구권을 소멸시켰다는 게 일본 기업의 주장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한국의 불매운동으로 번져 있지만, 이 판결을 발라내고 발라내면 개인과 국가의 관계가 남는다. 1940년대 일본이라는 국가에 이용당하고, 1960년대 한국이라는 국가에 이용당한 사람이 강제동원 피해자다. 이들이 두 국가를 향해 수많은 소송을 벌여온 이유다. 이러한 개인과 국가의 갈등을 국가와 국가의 대결로 전환시킨 키워드가 이적(利敵)이다. 형법 여러 조항에 등장하는 이 무심한 단어를 정치적으로 살려낸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전직 형법교수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그가 국가보안법의 이적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맥락이 다르다).

영화 <밀정>의 주인공은 의열단장 김원봉(이병헌)이 아니라 조선총독부 경찰 황옥(송강호)이다. 간첩을 뜻하는 ‘밀정’이 황옥이다. 그는 의열단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는 일을 도운 혐의로 기소된다. 하지만 황옥은 법정에서 자신이 조선총독부의 밀정으로 의열단에 침투한 것이라고 했다. 의열단원이 도움을 거듭 요구하며 “우리와 함께했던 일 저쪽으로 넘어가면 형도 어려워지니까”라고 하자, 황옥은 “너희 편인 척 접근하는 게 내 일이야. 내가 밀정이야 밀정. 히가시도 허락한 일이라니까”라고 했다. 하지만 영화는 황옥을 김원봉과 만난 뒤부터 의열단과 입장을 같이한 인물로 그렸다. 황옥은 극중 히가시 부장을 비롯한 경무부 관료들을 몰살하고, 마침내 총독부에도 폭탄을 설치한다. 의열단을 부정하는 법정 진술도 사전에 계획된 것으로 설명한다. 실체가 불투명한 황옥에 대해 한인섭 서울대 교수는 “친일과 애국 사이의 경계선상에서 행동했다”고 평가했다(<식민지 법정에서 독립을 변론하다>). 그는 조선과 일본의 이중간첩일지 모른다.

김원봉과 황옥은 광복 이후 북한으로 갔다. 황옥은 반민특위에서 일하다가 6·25 때 납북됐다. 북한 정보요원이 남한으로 위장 귀순하는 이야기가 <이중간첩>이다. 주인공 림병호(한석규)는 남한에 침투하려 가혹한 고문을 견딘다.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도주할 때 북한이 총상을 입혔지만, 이 정도는 쇼라고 여겼다. 남한 중앙정보부 요원은 추궁한다. “야 이 개새끼야 내려온 목적이 있을 것 아냐.” “자유가 그리워서 왔습니다.” “자유? 자유가 뭔데. 이쪽에도 그딴 거 없어. 정보조사부에서 일했다는 새끼가 그것도 모른다는 게 말이나 돼!” 그러다 백승철 국장(천호진)에게 “정윤희 한 번 보러 왔습니다”라고 하고서야 풀려난다. 그런 말을 믿었다기보다 그를 이용하려 했을 것이다. 림병호는 사소한 북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남한의 핵심 정보를 북한에 넘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용가치가 떨어지고 조국(북한)과 조직(정보부)이 모두 자신을 버리려 한다. 그는 머나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탈출해 평범하게 살지만 두 해 만에 배후를 짐작하기 힘든 현지인에게 살해당한다.

국가는 제도의 총합, 개인은 대상

한국사람의 청구권을 한국정부가
소멸시키지 못한다는 한국법원과
한국정부가 소멸했다는 일본기업
결국 남는 건 개인과 국가 관계
이를 국가 대결로 바꾼 게 ‘이적’

두 영화가 애국과 변절을 묻듯
강제 동원 미수금 등 갈등 본질은
‘국가 대 국가’ 아닌 ‘국가 대 개인’

두 영화는 국가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어땠을까.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한 인물 가운데 북접 계통의 이용구가 있다. 경기도 이천에서 농민군 수천을 모아 관아를 습격하고, 남북접이 연합한 공주전투에서는 손병희의 참모장이었다. 1898년 최시형이 관군에 붙잡혀 교수형됐을 때 이용구도 다리가 부러지는 고문을 당하며 사형을 기다렸다. 이때 동학교도들이 감옥을 습격해 이용구를 구출했다. 동학이 해체되면서 반외세파는 천도교로, 반봉건파는 일진회로 크게 갈린다. 1909년 “한·일 양국이 합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성명서를 써서 순종, 통감부, 내각에 보내고 전국에 배포한 일진회 핵심이 이용구다. 1905년 일본에 외교권을 넘겨야 한다는 선언서를 발표해 조선의 식민지화를 재촉한 것도 그이다. “낡고 부패한 조선왕조의 수탈에 다시 시달리느니, 어쩌면 세련된 착취일지도 모르지만 일본에 기대를 걸어보려는 심정 아니었겠나.” 양반의 노예로 죽도록 일해도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하던 이용구 같은 사람에게 조선과 일본, 조국과 외세가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어느 정치학자는 말했다.

국가는 제도의 총합이며, 개인은 제도의 대상이다. 사법제도 연구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도면회 대전대 교수는 우리나라 형사사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식민지화 이전 한국의 재판제도가 조선 후기와 다를 바 없는 민중 수탈의 도구였다는 점, 이토 히로부미가 통감 부임 후 한국 재판제도의 ‘개혁’에 가장 공력을 기울였던 이유가 한국 민중의 환심을 사서 종국적으로 한국을 병탄하려는 데 있었다.” 도면회 교수는 한국(조선)이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지를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그는 “형사재판제도의 보수반동화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원인중의 하나(다). 갑오개혁기에 형사재판제도가 근대적으로 개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기에 보수반동화함으로써 민의 생명과 권리를 지켜주지 못한 점, 이로 인해 일제의 재판제도 개혁이 한국인들에게 상당한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고 말한다(<한국근대형사재판제도사>). 이렇게 식민지화에 성공한 일제는 이후 본토와 다른 가혹한 형사사법으로 전환했고, 여기서 더욱 악화한 것이 현재 검찰제도다.

국가와 국민은 불멸의 숙명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은 제도를 만들고 국가를 형성한다. 이 과정은 개인들 사이의 치열한 투쟁이다. 근대국가의 시작인 프랑스혁명이 대표적이다. <프랑스혁명사> 저자인 알베르 소불은 근대 국가를 소유권과 선거권 등을 두고 벌인 투쟁의 결과물로 설명한다. “국민, 이것은 기만적인 용어 가운데 하나였다. 사실상 국민적 현실의 사회적 내용은 혁명의 추세에 따라 변화했다. (중략) 국민은 소유권의 기반과 재산 제한 선거제라는 좁은 틀을 통하여 인식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인민대중을 배제했다. (중략) 1789년에 부르주아지가 권리의 평등을 내세운 것은 단지 특권계급의 특권을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고쳐 말했다. 부르주아지 혁명은 부르주아지 국가를 만들었다고 했다. “조국은 하나의 현실이라기보다 오히려 풍성한 열망을 지닌 추상적 개념이었다. (중략) 조국은 이제 절대적이고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토지를 뜻했다. (중략) 프랑스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이다.”

두 영화에서 조국은 크게 다르지 않다. 조국에 대한 애국심은 자신을 버리는 것으로 입증된다. 영화 <이중간첩>의 고정간첩 청천강은 중앙정보부에 붙잡혀 고문을 받자 벽에 머리를 박아 목숨을 끊는다. <밀정>에서 의열단원 김우진도 총독부 경무부에서 고문이 시작되자 자기 혀를 깨문다. 이런 국가는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을 처단하면서 동시에 귀순자의 충성심을 확인한다. 일제 총독부는 의열단을 고문하는 데 조선인 밀정 황옥을 동원하고, 한국 정보부는 고정간첩을 고문하는 데 북한 귀순자 림병호를 이용했다. 하지만 조국이든 변절이든 모호하다. <밀정>의 또 다른 조선인 총독부 경찰 하시모토는 황옥의 총에 죽어가면서 소리친다. “변절자 새끼야.” 하시모토에게 조국은 일본이고 조선의 편으로 돌아간 황옥은 배신자이다. <이중간첩> 백승철 국장은 림병호를 앞에 두고 탈북한 사람들, 즉 림병호를 비난한다. “대부분 자기만 살겠다고 내려온 쓰레기 같은 녀석들.” 김일성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자유 대한으로 넘어와도 우리 국민이 되지 못한다.

대법원은 지난해 강제동원 사건 판결로 일본 기업에 불법행위에 따른 배상 의무를 지웠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 불법행위 부분은 해결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판결이 나온 배경에는 원고들이 2012년 대법원의 잠정 판결 이후 미수금(未收金) 부분을 취하한 과정이 있다. 1965년 당시 우리 정부의 협정 해설에는 “피징용자의 미수금 및 보상금 (중략) 각종 청구 등이 모두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멸케 되는 것”이라고 돼 있다. 그래서 2018년 대법원 최종 판결도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을 청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위와 같은 위자료를 청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미수금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일본 정부는 1946년 조선인에 대한 미불임금, 퇴직금, 유가증권 등을 지방 법무국에 공탁했다. 1947년에는 반환되지 않은 우편저금통장 저금을 원부 소관청에서 일괄 보관했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조선인도 후생연금에 가입시켰는데, 이 연금 탈퇴 수당금도 있다. 이 밖에 수많은 미수금이 있다. 박정희 정부가 1975년에 일부 보상했는데 국가가 포기한 미수금 액수에는 비교할 수도 없이 적다.

그리고 2008년에야 강제동원희생자지원법에 따라 1엔을 겨우 2000원으로 계산해 줬다. 한국은행 사실조회에서는 금값을 기준으로 14만배의 가치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당초 일본 기업을 상대로 미수금도 요구했던 것이다. 이 지원법에 대해 2010년 서울행정법원 오석준 재판부가 위헌제청을 했다. “(국가가 개인의 청구권을 없앤) 한일청구권협정이 위헌이라면 개인들이 일본에 직접 미수금을 청구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강제동원희생자지원법이 정한 미수금 지원금은 인도적인 지원금에 불과하다. 액수가 아무리 적어도 문제가 없게 된다. 하지만 한일청구권협정이 합헌이라면 (개인의 청구권을 가져간)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에게 정당한 보상, 완전한 보상을 해야 한다. 현재 희생자지원법이 정한 턱없이 적은 미수금은 부당한 것이다.” 2015년 헌법재판소는 청구권협정에 대해서는 각하하고 지원법은 합헌이라고 했다. 이런 애매한 결론은 앞서 2011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 양국에서 해석상 불일치 상태인데도 정부가 이를 해결하지 않고 있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의 연장선이다.

결국 지금 벌어지는 이 복잡한 갈등은 ‘국가 대 국가’가 아니라 ‘국가 대 개인’에서 비롯된다. 국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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