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절차 위법성’ 엄격히 따져…이상훈에 ‘면죄부’

2020.08.12 20:59 입력 2020.08.12 22:17 수정

‘삼성 노조 와해’ 2심 판결문 보니

<b>석방되는 ‘삼성 2인자’</b>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지난 10일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서울구치소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석방되는 ‘삼성 2인자’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지난 10일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서울구치소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압수수색 절차 위반 판단…외장하드 증거 채택 안 돼
“디지털 증거 이해 못해”…“최근 법원 판결 흐름” 반론도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삼성 2인자’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중하지 않은 수사절차상 위법을 이유로 법원이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있다. 반면 검찰 수사절차의 위법성을 엄격히 따지는 최근 법원 판결 흐름상 자연스럽다는 반론도 있다.

12일 ‘삼성 노조 와해’ 사건 2심 판결문을 보면,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배준현)는 1차 압수수색에서 압수된 외장하드디스크 등을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보고, 여기서 나온 ‘CFO 보고 문건’의 증거능력을 배제했다. 이에 따라 노조 와해 공작을 지시하고 보고받은 혐의를 받는 이 전 의장(당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은 2018년 2월8일 삼성전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미국 소송 비용을 대납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영장을 발부받고 수원시 삼성전자 본사 건물을 압수수색하다가 우연히 인사팀 직원 심모씨가 증거를 인멸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검찰은 심씨를 증거인멸죄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인사팀 회의실과 심씨 차량 트렁크에 숨겨진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2심 법원은 검찰이 두 가지 측면에서 압수수색 절차를 위반했다고 봤다. 첫 번째는 검찰이 증거를 압수했던 인사팀 사무실과 심씨의 개인 차량 트렁크가 영장에 적힌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사후영장을 발부받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1심 법원은 이러한 절차적 하자를 특별히 문제 삼지 않았다.

두 번째는 검찰이 심씨에게 영장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영장의 피압수자로 돼 있는 삼성전자 법인 대리인 등에게 영장을 제시했지만 심씨에겐 영장을 제시하지 않았다. 2심 법원은 대법원 판례를 들어 압수수색 장소의 관리 책임자에게 영장을 제시했더라도 증거를 소지한 사람에게서 증거를 압수하려면 그에게도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1심도 심씨에게 영장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고 봤다. 다만 1심은 심씨의 방어권이 침해받지 않았으므로 위법이 중하지 않다고 봤다. 피의자에게 영장을 제시해야 하는 이유는 방어권을 보장해주기 위한 것인데, 심씨에게 압수목록이 교부되고 진행된 모든 절차에서 참여권이 보장됐다는 것이다.

항소심은 “참여권이 보장됐다고 하더라도 영장 제시는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절차에 해당한다”고 엄격히 판단했다. 즉 절차를 어긴 것 자체가 방어권을 침해한 것이고, 중대한 위법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증거에 대한 압수수색 절차를 이해하지 못한 판결이라는 비판도 있다. 서류 증거의 경우 수사기관이 그 증거를 가져오기만 하면 되지만, 디지털 증거는 파일을 열어보고 관련된 증거를 선별해야 압수 절차가 끝난다. 검찰은 심씨와 협의해 파일을 열어보는 방식으로 총 4회에 걸쳐 내용물을 탐색했는데, 이를 보면 심씨가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장 범죄 사실과 관계없는 노조 와해 관련 증거가 탐색되지도 않았다.

법원은 디지털 증거의 위법 수집을 판단할 때 파일 탐색 과정에서 피고인 참여권이 보장됐는지 엄격히 따져왔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의 참여권이 보장됐음에도, 단지 영장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절차를 문제 삼은 것이어서 실체적 진실 규명을 외면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심씨는 영장이 집행됐다는 사실을 알고 증거 인멸을 하고 있었다. 사소한 절차상 위법을 문제 삼아 ‘이상훈 구하기’ 판결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찰 수사절차의 위법성을 엄격히 따지는 최근 법원 판결 흐름상 자연스럽다는 반론도 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되지 않은 별개 범죄 증거를 이미 발부받은 영장으로 수집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판례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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