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학칙 ‘황당한 규정’ 수두룩

2006.03.01 17:53

전국 중·고교 학칙에 비민주적·비현실적 조항이 많은 것으로 1일 드러났다. 주번에게 전교생의 생활동태를 파악하도록 하고 있거나 기업들도 없앤 보증인 제도가 남아있는 곳도 많다. 의무교육대상인 중학교에 퇴학 규정이 버젓이 남아 있고, ‘불온문서’ ‘백지동맹’ 등 군사독재 시절의 용어도 온존한다.

중·고교 학칙 ‘황당한 규정’ 수두룩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들 학칙은 상당수 학교 현장에서 대부분 사문화된 상태이지만 어처구니 없는 학칙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곳도 많았다. 교육인적자원부가 2003년부터 일선학교 자체적으로 민주적인 학생생활규정을 개정·시행토록 유도하고 있으나 이행되지 않고 있다.

◇황당한 학칙들=충남 보령 대천여고는 주번에게 전교생의 생활동태를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 경북 김천예술고 등 전국의 중·고교는 수업료 체납시 출석을 정지시키거나 퇴학시킬 수 있다는 학칙을 갖고 있다.

중·고교 학칙 ‘황당한 규정’ 수두룩

의무교육대상인 중학교의 경우 사실상의 퇴학인 ‘징계를 통한 유예’나 ‘선도 처분’ 등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서울 배화여중 등 상당수 중학교에서 퇴학처분 규정이 엄존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도 없는 ‘정치에 관여하거나 집단행동으로 수업을 방해하는 행위’ ‘학력이 열등하여 학업 이수의 가망이 없다고 인정된 자’ 등의 내용을 학칙에 포함시켜 법을 스스로 위배하고 있다.

중·고교 학칙 ‘황당한 규정’ 수두룩

대부분 고등학교는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가입하는 학생자치회 운영규정에 ‘정치목적의 사회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고 명기하고 있다. 이 규정은 학생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쉽게 정치 현실을 접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과도한 규제라는 여론이다. 서울 진명여고의 경우 ‘정치관여 행위’나 ‘임의로 서클을 만드는 행위’에 대한 처벌 등 모두 9개항의 징계 규정을 학칙에 두고 특별교육 이수나 퇴학처분이 가능토록 했다.

수업료나 입학금을 체납한 학생들을 출석정지나 퇴학처분할 수 있도록 규정한 학교도 상당수였고 학교운영지원비 등을 공납금이라는 어정쩡한 표현으로 명시해 납부를 강제하고 있기도 했다.

◇현실성 없는 구시대적 학칙=공무원 조직이나 민간기업에서 이미 수년 전 사라진 ‘보증인 제도’ 역시 중·고교에 버젓이 남아 있다. 인천 영종정보고 등 대부분 고교는 학칙에 ‘보증인은 학생의 친권자 또는 후견인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인천공항중학교 등 일부 중학교에도 이 규정이 남아 있다.

중·고교 학칙 ‘황당한 규정’ 수두룩

서울 수송중학교는 ‘징계를 받고 3개월이 경과한 후 충분히 반성하였음이 확인되면 담임교사는 해당 학생의 사면 심의를 위원회에 의뢰할 수 있다’고 해 학칙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면 용어를 사용했다. 서울 서문여고는 시대에 뒤떨어진 ‘불온문서를 은닉·탐독·제작·게시·유포하거나 백지동맹을 주장한 자를 퇴학처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 학교가 사용 중인 ‘근신’ ‘정학’이란 용어도 과거 군사정권 때나 사용되던 징계 용어다.

국가인권위에서 위헌이란 의견을 내놓은 두발규제 규정도 학교현장에서는 버젓이 남아 있다. 서울 상봉중학교는 남학생은 앞머리 5㎝ 이내의 스포츠형 머리를, 여학생은 귀밑 3㎝까지의 단정한 단발형 머리를 하도록 규정했다. 이 학교는 두발규정 외에 가방, 양말, 실내화, 액세서리 등까지 지나치게 규제해 실효성이 없는데다 비민주적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 진명여고는 유치원생들조차 익숙한 채팅을 하거나 관련 모임을 주선한 학생을 징계하도록 하고 있다.

◇일부는 민주적으로 개정해=강원, 제주도 등의 경우 지난해 8월 말까지 학교생활규정을 상당수 민주적으로 개정했다. 충남교육청 성태경 생활지도담당 장학사는 “지난해 학생생활규정을 조사·분석해 60~70개 정도의 개선사항 리스트를 만들어 일선학교에 전달했다”며 “학생·학부모·교직원이 중심이 돼 학생 규정에 대한 의견을 나누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학칙은 여전히 문제가 많다.

이재익 전교조 경북지부 학생생활부장은 “학생 징계시 학부모와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결정토록 하고 있지만 당사자들이 학칙과 교칙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교감이나 교장 등 일부 교직원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학칙 제정이나 개정 때 학생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황민주 전북 교육위원회 교육위원은 “시대가 바뀌고 제도가 변했음에도 교칙과 규정은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며 “현실에 맞게 제반 학칙을 손질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사회·전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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