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들, 학교에 가다

2013.04.01 19:45 입력 2013.04.02 02:52 수정

학교에 부는 ‘바짓바람’? 늘어가는 ‘아버지회’

아이 교육은 ‘어머니의 몫’이라는 말이 점차 변하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자녀 양육을 부담하거나 자녀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는 아버지가 많아진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체험활동과 교육기부에 나서는 아버지들이 있고, 학교에 ‘아버지회’라는 정기 모임도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경기 남양주시 호평중학교는 아버지회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이곳 아버지회는 ‘호평푸르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순우리말인 푸르내는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라는 뜻으로 부모와 자녀 간 정을 쌓으며 소통을 하자는 취지로 지어졌다.

지난해 6월 남양주시 호평중학교가 연 ‘아빠와 함께하는 1박2일 캠프’에서 아버지들이 아들들의 발을 씻겨주고 있다. | 호평중학교 제공

지난해 6월 남양주시 호평중학교가 연 ‘아빠와 함께하는 1박2일 캠프’에서 아버지들이 아들들의 발을 씻겨주고 있다. | 호평중학교 제공

▲ 아이와 함께하는 활동 외에 야간 지킴이·시설관리까지
아버지가 할 수 있는 활동들로 부모·자녀·학교 사이 소통의 폭 넓혀

호평푸르내 얘기는 지난해 6월16일 ‘아빠와 함께하는 1박2일 캠프’가 열리면서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캠프에서는 25개 가족이 참여해 운동회와 세족식, 바비큐 파티, 풍등 날리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평소 아버지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만큼 1박2일 캠프는 아빠와 자녀가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캠프가 끝나고 아버지들은 다시 모여 호평푸르내를 만들었다. 단발적 행사로 끝나지 말고 지속적으로 아이와 함께 뭔가를 할 수 있는 아버지회를 설립하자는 것이었다. 호평푸르내는 이후 월 1회의 정기 모임을 열면서 아이들과 함께 학교 주변 쓰레기 줍기나 재활용 분리 수거, 방범 순찰 등의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호평중 아버지들이 호평푸르내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과연 잘될까”라는 시선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처음에 4명밖에 안된 회원 수는 현재 50여명까지 불어났다. 아버지들이 이런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익숙지 않아 처음엔 모두들 쭈뼛거렸지만 지금은 “행복하다”고 입을 모은다. 자녀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청소년기 아이들의 심리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가끔은 아버지들끼리의 자리도 만들어진다. 또래의 자녀들을 둔 아버지들이기에 공감대는 쉽게 형성된다.

지난해 호평푸르내 대표로 활동했던 신종우씨(45)는 “(아버지회 활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주입식으로 말하거나 시간을 철저히 쓰라는 구속 같은 것도 안 하게 되면서 교육관이 많이 바뀌었다”며 “애들한테는 물론이고 아버지들에게도 이런 활동이 굉장히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지역의 자원봉사센터와 연계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벌일 예정”이라며 “아이들이 좀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자전거 탐방이나 산행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중학교 아버지회 ‘호평푸르내’ 소속 아버지들이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달 더러워진 학교 교실 벽을 다시 도색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호평중 제공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중학교 아버지회 ‘호평푸르내’ 소속 아버지들이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달 더러워진 학교 교실 벽을 다시 도색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호평중 제공

서울에서는 강남구 역삼중학교가 활발한 아버지회 활동을 하는 것으로 손꼽힌다. 역삼중은 아버지들을 대상으로 연수를 열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행복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강의를, 9월에는 ‘학교폭력 대처하기’를 주제로 아버지 강의를 열었다.

매월 세 번째 금요일은 아버지회의 정기모임이 있는 날이다. 이때 아버지회 활동에 대해 평가하고 자녀를 교육하는 데 겪는 어려움을 놓고 대화를 나눈다. 매주 평일 오후 7시30분부터 8시까지는 아버지들이 2인1조로 학교 교내를 순찰하는 야간지킴이 활동도 하고 있다. 늦게 귀가하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다. 자녀들과 함께 등산을 하는 ‘아빠와 즐거운 산행’이나 ‘아버지 마라톤 대회’도 열린다. 이런 자리에는 담임교사들도 참여하기 때문에 아버지와 담임교사가 친해질 수 있는 계기도 된다. 아버지들이 직접 분야별로 역삼중의 학생동아리 활동을 지도하기도 하고, 일일교사가 돼 진로교육을 도맡기도 한다.

지난해 역삼중 아버지회에서 회장을 맡은 송개동씨(50)는 “아이들 일에 아버지들이 적극 나선다는 게 어색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과 교감을 많이 쌓을 수 있어서 좋았다”며 “또래 자녀를 둔 주민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친목도 도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과 봉사활동을 같이하면서 아버지로서 자녀의 인성교육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서구 신곡초등학교에는 바자회를 직접 기획해 운영하고 아이들과 함께 김장을 해 불우이웃을 돕는 아버지회도 있다. 강서구 송정중학교에서는 매주 토요일 아버지와 함께 운동을 하는 ‘아토놀(아버지와 토요일에 놀자)’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서울 창도초등학교의 아버지회는 가족이 함께하는 진로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토요일마다 아이들의 진로설정에 도움이 될 만한 장소를 선정해 방문하고 있다.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 서울 양천구 목일중학교 아버지회는 지난 13일 양천경찰서와 함께 ‘아버지 순찰대’를 창설했다. 목일중 재학·졸업생 아버지 50여명으로 구성된 아버지 순찰대는 매주 수요일 저녁 1시간30분 동안 형광 조끼와 모자를 착용하고 양천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 목일중 교사와 함께 순찰활동을 벌인다. 순찰대의 슬로건은 ‘이제는 아버지가 나설 때입니다’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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