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의 눈물

인문서 출판 ‘필자’가 없다

2014.10.27 22:06 입력 2014.10.27 22:15 수정

대학 내 인문학 연구자들 ‘논문·콘퍼런스’에 얽매여

대학 내 인문학 연구자들이 ‘논문 쓰는 기계’가 되면서 한 사회의 지적 성과물들을 축적하고 유통시켜야 할 인문서 출판은 ‘필자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인문서 출판사 관계자들은 “필자를 찾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출판사 ‘천년의상상’ 선완규 대표는 27일 “책 하나를 제대로 만들어내려면 집필하는 데만 1~2년은 걸린다. 그런데 대학 연구자들에게 청탁을 하면 그 시간에 논문도 써야 하고, 콘퍼런스 준비도 해야 해 시간이 없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사월의책’ 안희곤 대표는 “전문적인 분야에서는 책을 쓸 수 있는 필자들이 국내에 몇 사람밖에 없다. 인력 자체가 한정돼 있는데 그 한정된 인력들도 논문에 매여 있다”고 밝혔다.

논문 작성에 짓눌려 있는 연구자들이 대부분 왕성하게 지적 생산물을 내놓아야 할 30~40대 소장학자들이라는 점에서 이런 현상은 출판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서출판 길’ 이승우 실장은 “한 가지 주제를 집요하게 천착해야 일가를 이룰 수 있는데 3년짜리 논문을 하나 쓰고 나면 다른 주제로 3년짜리 논문을 또 써야 하는 구조에서는 인문학의 대가가 나올 수 없다”며 “의미 있는 학술서는 나오지 않고, 아무도 보지 않는 논문만 양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필자가 부족하면 번역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번역 출판의 경우에는 필자를 섭외할 필요도 없고, 책 내는 데 걸리는 시간도 국내 도서의 절반에 불과하다. 한국은 2013년 기준 전체 도서 가운데 번역서 비중이 21.6%에 이른다. 일본은 7%, 중국은 6.6%다. 한국이 3배 이상 많다.

문제는 ‘필자 기근’이 ‘번역자 기근’과도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난도 높은 학술서의 경우에는 번역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안희곤 대표는 최근 프랑스의 과학인문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책을 출간하려다 포기했다. 3년 예정으로 번역을 맡긴 30~40대 연구자들이 논문 일정 때문에 결국 손을 뗐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전공자들이 번역해야만 하는 책들이 있지만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번역은 실적에 잡히지 않는다. 사명감만으로 번역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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