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언론 통제' 시도 의혹

2019.11.01 16:47 입력 2019.11.01 22:38 수정

고교서열화 해소방안 발표 연기 놓고 포괄적 엠바고 요청

비판적인 기사 나오자 "기사 내려달라" 요구

교육부에 불리한 보도 우려했나, '언론 통제' 의혹 제기돼

교육부가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 발표를 연기하는 과정에서 언론의 비판 보도를 우려해 ‘보도 유예(엠바고)’ 요청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교육부는 한 언론이 발표 연기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게재하자 엠바고를 이유로 기사를 삭제토록 요구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발표가 연기된 배경에는 일선 시도교육청과의 협의 부족 등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교육부가 언론을 ‘통제’해 이같은 사실이 보도되는 걸 막으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지난 3월 교육신뢰회복추진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지난 3월 교육신뢰회복추진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돌연 발표 연기 뒤 “보도하지 말아달라” 요구

1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당초 지난달 30일 오전 광화문 서울청사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이 회견을 열어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이 방안에는 정부가 선언한 ‘자사고 일괄 폐지’ 등과 관련한 내용 및 일반고 역량 강화 방안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교육부는 29일 오후 늦게 돌연 “발표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전국시도교육감 협의회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교육부의 주요 정책 발표가 공개 시점에 임박해 연기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이 경우 언론들도 통상 비중있게 해당 내용을 보도한다. 자사고 폐지 문제의 경우 여론의 관심이 높은 만큼 정책 발표가 연기된 배경이나 사유 등에 대해 여러 해석과 전망 보도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교육부는 그러나 향후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이 발표되는 시점까지 ‘발표가 연기됐다는 사실’, ‘연기된 사유’ 등에 연기와 관련된 내용은 아무것도 보도하지 말아달라며 언론에 ‘포괄적 보도유예(엠바고)’를 요청했다. 엠바고가 성립되면서 대부분의 언론이 당일 연기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교육감들과 협의 미비 드러나, 교육부 또 ‘일방 통행’

교육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수능 정시 상향’ 발표를 한 뒤 교육계로부터 “일방통행식 행정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시 상향 비율을 정하는 문제만해도 이를 우려하는 현장 고교 교사와 교육단체들의 의견을 듣지 않겠다고 밝혀 논란이 이는 중이다.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이 연기된 배경도 이와 비슷했다. 초·중·고 교육과정의 경우 각 시도교육감이 관할한다. 해소 방안 발표 전에 시도교육감들과 충분한 교감과 협의가 돼야 했지만 안된 것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교육부가 발표 예정일이었던 30일에 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인 김승환 전북교육감의 참석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자사고 문제를 놓고 ‘불편한 관계’다.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 과정에서 숱한 논란이 일었고, 교육감들은 교육부에 수차례 “정부가 일괄 폐지를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교육부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다가 조국 전 법무장관 사태로 교육불평등 논란이 일자 교육부가 꺼내든 게 일괄 폐지 카드다. 김 교육감의 경우 상산고를 폐지하겠다고 했다가 교육부가 반대하고 나서면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또다른 교육계 관계자는 “오는 11월4일 시도교육감협의회가 열린다”며 “협의회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교육부가 참고해서 발표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종합해보면,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 발표가 연기된 제반 사정 등을 감안할 때 교육부에 불리한 보도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교육부가 포괄적 엠바고를 요구한 셈이다. 이에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연기 문제를 놓고)기자들이 자꾸 추측해서 쓰면 좀 그럴거 같아서....”라고 밝혔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왼쪽)이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위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오른쪽은 박백범 교육부 차관./권호욱 선임기자

김승환 전북교육감(왼쪽)이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위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오른쪽은 박백범 교육부 차관./권호욱 선임기자

■비판 기사 게재한 언론사에 “기사 내려라”

엠바고 사실을 몰랐던 한 언론사는 31일 오전 연기 사실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인터넷에 게재했다. 이에대한 언론들의 문의가 잇따르자 교육부는 해당 언론사에 전화해 “엠바고 파기니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기사가 게재된 지 12시간도 더 지난 시점이었지만 해당 매체는 기사를 삭제했다. 요구대로 기사가 삭제되자 교육부는 다시 언론에 “포괄적 엠바고를 그대로 유지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번엔 언론들이 이를 거절했다. 고교서열화 해소방안 연기에 대한 보도가 사흘이나 지난 뒤인 이날부터 나오기 시작한 이유다. 역설적으로는 모 매체의 ‘삭제된’ 기사가 아니었다면, 국민들은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이 확정돼 발표되기까지 어떤 논란과 문제가 있었는 지 모르고 넘어갈 뻔한 것이다.

교육부는 이에대해 “고교서열화 해소방안 및 일반고 역량강화 방안 연기 사안은 교육부 출입기자 간사단과 협의하여 세부 내용, 일정 연기 및 연기 사유 등을 엠바고로 설정했다”며 “기사 삭제를 요구한 것은 언론 통제가 아니라 교육부와 언론사 간의 신뢰 관계 유지와 언론사들 간의 형평성 등을 고려하여 취한 조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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