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해저터널 경제성 없지만…동북아 경제권 차원서 장기 검토해야”

2021.04.06 21:56 입력 2021.04.06 23:24 수정

안병민 한반도경제협력원장

안병민 한반도경제협력원장이 지난달 31일 경향신문사에서 한·일해저터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 원장은 “한·일해저터널은 경제성과 기술 면에서 매우 힘든 과제이지만, 무엇보다 한·일 간 역사문제를 푸는 공감대 형성이 먼저”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안병민 한반도경제협력원장이 지난달 31일 경향신문사에서 한·일해저터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 원장은 “한·일해저터널은 경제성과 기술 면에서 매우 힘든 과제이지만, 무엇보다 한·일 간 역사문제를 푸는 공감대 형성이 먼저”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출신의 교통·물류 전문가다. 2004년 남·북·러 3각 철도회담 대표도 지냈다. 노무현 정부의 의뢰를 받아 2003년 국내 처음으로 한·일해저터널의 타당성을 살펴본 연구의 책임자였다. 일본 쓰쿠바대 대학원을 나온 안 원장은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민간위원 등을 맡았다.

4·7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지난 2월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느닷없이 한·일해저터널 카드를 꺼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친일매국노당’이란 원색적 비난이 나왔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일본의 대륙 진출 야심에 이용된다. 친일 DNA의 발동”이라고 깎아내렸다.

처음으로 한·일해저터널 구상이 수면 위로 나온 건 약 80년 전 일제강점기였다. 그후 일본 민간기업에서 다시 제안한 시점도 40년이 지났다. 한·일해저터널은 단지 부산에 불리하냐, 유리하냐는 차원을 넘어선다. 한·일 갈등을 논외로 한다면, 동북아 국제질서가 다시 짜이는 원대한 사안이다. 역사의 뿌리까지 맥락을 짚어 내려가자면, 해양세력인 ‘섬나라’ 일본을 대륙세력으로 편입시키는 대사건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이런 국내외 정치·경제 문제를 넘어 기술상 걸림돌이 더 크다. 유로터널보다 몇배나 긴 해저를 관통해야 하는 한·일해저터널은 세계 최장이 될 것이다. 중간에 활성단층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져 더욱 간단찮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31일 교통·물류 전문가인 안병민 한반도경제협력원장(62)을 만나 한·일해저터널이 동북아 경제협력 틀 속에서 갖는 의미와 기술적 난제 등을 물어봤다. 안 원장은 2003년 국내 처음으로 국토교통부 의뢰로 한·일해저터널을 깊이 들여다본 전문가다.

안 원장은 “지금 일본은 한·일해저터널에 별 관심도 없는 상태로, 장기적인 국가적 과제의 하나로 남겨둔 수준”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 “건설비가 1980년대 당시 20조원 정도로 해도 비용·편익(B/C)이 가장 좋은 게 0.5 수준이었고, 지금은 100조원 정도 들어 한마디로 경제성이 없다”고 평가했다.

한·일해저터널 비판론자들은 임진왜란 때 ‘정명가도’(명나라를 정벌하는 데 필요한 길을 빌려달라고 조선에 요구한 것)나 일제강점기 때 ‘대동아공영권’ 같은 침략행위의 연장선으로 경계한다. 안 원장은 “한·일관계의 새로운 발돋움을 위한 역사적 공감대 없이는 해저터널은 전혀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해묵은 역사 갈등을 딛고 동북아의 ‘21세기판 실크로드’를 이을 수 있을지부터 한·일 간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기술적으로 가능은 한가

2003년 검토 때 비용·편익 0.4 정도
지금은 100조원 들고 0.2로 더 줄어
해협에 활단층 있다면 거의 불가능

- 해저터널이 국내엔 생소하다.

“사실은 1932년 동양 최초로 해저터널이 우리나라에 만들어졌다. 바로 통영터널이다. 길이 483m로, 수심 13.5m 아래에 일제가 팠다. 양옆에 방파제를 쌓아서 바닷물을 뺀 뒤 거푸집을 만들어 콘크리트로 덮는 식으로 건설했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한·일해저터널 경제성 없지만…동북아 경제권 차원서 장기 검토해야” 이미지 크게 보기

- 한·일해저터널은 언제 구상했나.

“우리랑 북한, 중국, 유럽, 미국 등은 좌우 철로 폭이 1435㎜인 표준궤를 쓴다. 러시아(1520㎜)는 그보다 넓은 광궤이고, 일본은 1067㎜로 협궤다. 일제가 중국을 먹으려고 하는데 표준궤니까, 우리한테도 그렇게 건설한 거다. 일본에서 열차로 서쪽으론 서울~베이징(중국)~투르판(신장위구르)~터키로 가고, 남쪽으론 베이징~싱가포르로 가자는 계획을 1938~1940년에 수립했다. 그 당시 규슈와 한반도를 해저터널로 연결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 역시 일제 침략이 배경이군요.

“그 뒤 일본 정부 차원에서 1941년 계획을 수립하고 1954년까지 건설하려고 당시 거금인 5억5600만엔의 예산까지 책정했다. 기초조사를 하는 단계에서 일제가 패망했다.”

- 당시 그런 구상을 했다니 놀랍다.

“그때 이미 중앙아시아 횡단철도 계획을 세웠다. 일본 본토와 규슈 연결지역에 칸몬터널을 건설하는 건 물론이고 홋카이도를 넘어 사할린, 러시아 본토까지 터널로 연결하려고 했다. 터널 5개를 만들어 동북아시아를 순환하는 철길을 잇는다는 구상을 1940년대에 했다. 물론 대동아공영권의 일환이다.”

- 40년 지나 왜 다시 나왔을까.

“일제 패망 후 조용하다가 갑자기 최대 건설사인 오바야시구미가 기관지인 ‘길’에서 ‘유라시아 드라이브웨이’ 구상을 제안했다. 40년 만에 해저터널로 연결하는 구상을 민간기업이 내놓은 것이다. 당시 새로운 시장을 찾는 구상으로 보였다.”

- 그 제안은 어떻게 됐나.

“1981년 통일교 문선명 총재가 서울에서 국제평화회의를 하면서 한·일해저터널 얘기를 했다. 통일교에서 일·한터널조사위원회를 설립해 규슈와 쓰시마의 육상과 해역을 조사했다. 1986년에는 일본 사가현의 해저 410m 구간의 굴착까지 해봤다. 2006년에도 2차 공사를 재개해서 547m를 팠다. 거제도에도 지질조사를 하느라 5군데 구멍을 뚫었다. 직접 현장에도 가봤다.”

해묵은 역사갈등 속 논란

대동아공영권의 연장 비판 있지만
‘순혈주의’ 바라는 일본서도 “반대”
감정 대응 아닌 교통으로 접근해야

- 일본의 경제침략 도구일까.

“사실은 민간 차원에서 대마도(쓰시마)를 싱가포르처럼 동아시아의 십자로 역할을 하는 큰 거점으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에서 나왔다. 대마도와 옆에 있는 이키라는 섬에 뉴아일랜드 구상이라고, 실리콘밸리를 만들자는 거였다.”

- 터널 노선은 어떤가.

“1941년 일본이 노선 스케치를 했다. 하카다에서 대마도~거제도랑, 대마도~부산으로 그렸다. 1980년 일본에서 자체 제안된 노선도 거제도로 2개, 부산으로 하나 해서 3개 안이 나왔다. 거제도 쪽 노선 A는 209㎞, B는 217㎞, 부산 쪽 C는 231㎞ 길이다. 쓰시마 육상 구간을 빼면 해저 길이는 서로 비슷하다. 다만 수심이 깊은 곳은 C가 220m이다. A는 150m로 얕다.”

- 수심이 중요한가. 어차피 해저인데.

“깊으면 수압도 크고, 건설비가 훨씬 많이 든다. 해저터널은 사고가 나면 큰 일 난다. 20~30㎞마다 해수면 위로 환기 등 안전을 위해 연결되는 인공섬을 만들어야 한다. 한·일해저터널 구간이라면 인공섬이 3~4개 정도는 필요하다. 그래서 수심이 큰 문제다.”

- 한국 내 논의는 어떤가.

“우리는 크게 3차례 있었다. 2003년 필요성이 있는지 제가 연구를 했고, 2009년 부산시 의뢰로 부산발전연구원에서 부산과 후쿠오카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다음으로 통일교 의뢰로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있던 시장경제연구원이 2011년에 연구한 정도다.”

- 연구 결과는 어땠나.

“나는 2003년 연구 책임자로 일본에서 나온 A·B·C 노선을 검토했다. 일·한터널연구회가 제시한 건설비 20조원으로 하더라도 가장 좋은 비용 대 편익이 0.4~0.5 정도다(1이 넘어야 경제성이 있다). 지금은 100조원은 들 텐데, 그러면 비용 대 편익이 0.2 정도 나올 거다. 즉 경제성이 없다는 뜻이다.”

- 기술적으로 가능은 한가.

“아직 지형조사가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대한해협과 쓰시마해협 두쪽 모두 활성단층이 있다. 그걸 어떻게 피하느냐가 가장 큰 문제다. 정확한 조사를 해야 한다. 활성단층이 있다면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본다.”

- 일본이 해저터널을 원하나.

“부산시민도 반대가 많은 편인데, 일본은 2018년 조사 때 반대가 88%나 됐다. ‘섬나라 순혈주의’로 잘 살고 있는데 남한이 적화되면 공산주의가 바로 들어온다고 걱정한다. 병균이나 나쁜 것도 들어오고 해서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많다. (두 달 전) 김종인 위원장이 얘기하고 나서 일본 누리꾼 조사를 보니 98%나 반대하고 난리다.”

- 의외다. 대륙 진출을 원하지 않나.

“자기네들은 동아시아 국가가 아니라 태평양 국가라고 생각한다. 남·북·중·러가 아니라, 호주·미국과 관련 있다고 여긴다. 역사적으로도 자긍심이 대단하다. 영국도 유럽이 아니듯, 일본도 아시아에서 같은 개념이다.”

- 일본의 움직임은 어떤가.

“2003년 3월 자민당이 ‘꿈실현 21세기 회의’(나라만들기 꿈실현 검토위원회)의 국민제안으로 미래 100년의 꿈을 공모했다. 그중에 한·일해저터널이 있다. 그해 7월 자민당 외교조사회에서 한·일해저터널 건설 기술에 대한 청문회도 가졌고,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답이 나왔다.”

- 과거사 때문에 어렵지 않나.

“터널의 일본 출발지가 사가현 가라쓰로 구상돼 있다. 한자로는 당진(唐津)이다. 여기에 나고야성이 있다. 바로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위해 배를 띄운 곳이다. 하필 왜 여기에 터널을 파려고 할까. 이러니까 일본에 혹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 부산에는 타격이 클 것이라는데.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철도를 통해서 공간이 살해됐다’고 했다. 스웨덴 말뫼가 조선업 사양화 후 쪽박을 찰 뻔했다. 그러나 바다 건너 덴마크의 외뢰순과 터널, 교량으로 연결해 되살아났다. 이처럼 초국경 광역경제권 개념이 앞으로 중요해질 것이다. 부산은 서울이 아니라 후쿠오카와 가깝다. 앞으로 국경 개념이 점점 허물어지면서 광역경제권으로 뭉치며, 터널·교량 같은 교통망 역할이 커질 수 있다.”

- 그래도 일본은 경계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너무 감정적으로 접근하다보니 일본이나 우리나 본말이 전도돼 있다. 그러니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 등이 자꾸 일어난다. 긴 시간을 두고 충분히 검토해야 할 사안 같다.”

안 원장은 말미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성을 쌓고 사는 자 반드시 망하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돌궐제국을 부흥시킨 명장 톤유쿠크의 비문에 적힌 글귀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한·일해저터널 경제성 없지만…동북아 경제권 차원서 장기 검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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