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부채질하는 영재학교

‘의대 입학사관학교’ 오명···의대 지원 제재하자 영재학교 경쟁률 하락

2023.08.22 14:41 입력 2023.08.22 18:33 수정

의약학 계열 진학 제제 강화했지만

의대 선호 심한 상황서 효과는 ‘의문’

자연계열 최상위권 학생들 지원 줄어

2024년 경쟁률 5.9대 1로 하락하기도

영재학교 입시를 위한 사교육 의존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한 학생이 21일 서울 강남구 소재 영재교육 학원으로 등원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영재학교 입시를 위한 사교육 의존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한 학생이 21일 서울 강남구 소재 영재교육 학원으로 등원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영재학교는 국가 차원에서 이공계 인재를 양성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혜택을 받는다. 다른 특목고나 자율형사립고 등에 비해서도 압도적인 예산을 지원받고 장학금 혜택도 상당하다. 전국단위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고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운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립 취지와 달리 의대 등으로 진학하려는 학생이 많다는 지적이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전국 8개 영재학교 중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제외한 7개 학교 졸업생의 의약계열 진학 현황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이 시기 전체 졸업생 2097명 중 178명(8.5%)이 의대에 진학했다. 한국과학영재학교는 2013학년도부터 의대 진학 시 아예 졸업을 유예해버리는 ‘초강수’를 쓰고 있다.

의약계열 진학이 가장 많은 영재학교는 서울과학고다. 3년간 졸업생 371명 중 88명(23.7%)이 의약계열로 진학했다. 7개 영재학교 졸업생 중 의약학 계열에 진학한 학생은 2022년 73명(9.1%), 2023년 78명(9.5%)으로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영재학교가 ‘의대 입학사관학교’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빗발치자 교육부는 2017년 영재학교에 의약학 계열 진학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학칙에 명시하도록 권고했고 2018학년도부터 일부 영재학교가 의대 진학을 제재하기 시작했다.

서울과학고는 2018학년도 신입생 모집요강부터 ‘의치한 계열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에게는 본교 지원이 적합하지 않으며 해당 계열 진학 시 불이익이 있다’ ‘재학 중 받은 장학금을 반납해야 하며 본교 교원의 추천서를 써줄 수 없다’ 등의 내용을 유의사항에 명시했다. 대전과학고, 대구과학고 등도 관련 진로 진학 지도를 하지 않기로 했다.

제재에도 불구하고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진학이 줄지는 않았다. 수시모집에서 추천서를 받는 대학 수 자체가 적고, 정시모집을 통해 의대에 진학할 수도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공계 대학에 진학했다가 진로를 바꾸거나 재수를 하면 제재할 방법이 없기도 하다.

의대 진학이 줄지 않자 2022학년도 신입생부터는 의약학 계열 제재가 더 강해졌다. 학교마다 제각각 운영하고 있던 의대 입시지원 제재방안을 통합해 영재학교 입학 후 의약학 계열에 지원하면 해당 학생의 일반고 전출을 권고하고, 연구 활동이나 영재학교 교육과정 등이 표기된 생활기록부가 아니라 일반고와 같은 형식의 생활기록부를 제공하기로 했다. 정규수업 외에 기숙사와 독서실 등의 학교 시설 사용도 막기로 했다. 이전보다 제재가 강해졌지만 해가 갈수록 의대 선호가 더 심해지는 상황에서 효과가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영재학교에서 의대에 진학하기 어렵게 한다더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영재학교 경쟁률이 하락하는 부작용도 생겼다. 지난 6월 종로학원이 2024학년도 신입생 원서접수 경쟁률을 공개한 7개 영재학교(한국과학영재학교 제외)의 경쟁률을 분석해보니 정원 내 평균 경쟁률은 5.9대 1로 지난해(6.2대 1) 보다 하락했다. 자연계열 최상위권 학생들이 ‘이공계 엘리트 코스’ 대신 ‘의대 가기 수월한 길’을 택하는 현상이 더욱 심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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