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연간 병가 일수가 고작 1.2일···“아픈데도 일 나가야 하는 시대의 야만”

2022.08.18 17:05 입력 2022.08.18 18:18 수정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한수빈 기자

한국 노동자 1명이 1년 동안 사용한 평균 병가 일수는 2019년 기준 1.2일이다. 몸이 좋지 않은데도 출근하는 이른바 ‘프리젠티즘’이 만연하다는 걸 시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과 미국만 국가 차원의 유급병가 제도를 아직 갖추지 않았다. 시범사업으로 갓 시작된 상병수당 제도를 지속시키기 위해 재원 마련 등 보완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강희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8일 열린 온라인 토론회 ‘상병수당의 후발주자, 한국과 미국의 제도 도입 현황’에서 OECD 국가별 ‘자가 보고 1인당 연간 병가 일수’에 나온 한국 노동자의 병가 일수는 1.2일이라고 밝혔다. 강 연구위원은 “정말 1.2일만 쉬어도 되는 건강한 근로자를 가진 나라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며 “사실상 많은 노동자가 아픈 상태에서 일하고 있을 수 있고, 생산성 손실이나 직장 내 위험이 매우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국 연간 병가일수를 보면 영국 4.2일, 이탈리아 5.9일, 미국 7.4일, 캐나다 8.5일, 프랑스 9.2일, 독일 11.7일 등이다.

고용주가 제공하는 유급병가를 실제 사용하는 비율도 낮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7~9월 상병수당 시범사업 방안을 연구하면서 취업자·실업자 등 8000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상용직의 유급병가 실제 사용률은 50.7%였다. 임시직은 20.7%, 일용직은 14.9%로 더 떨어졌다. 사업장 규모별 격차도 컸다. 300인 이상에선 65.8%였는데 5인 미만에선 29.4%에 그쳤다. 강 연구위원은 “사업장마다 다른 태도를 평균적으로 맞추려면 열악한 곳에 대해 정부가 더 많은 지원을 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OECD 국가별 자가 보고 1인당 연간 병가 일수

OECD 국가별 자가 보고 1인당 연간 병가 일수

한국엔 국가 단위 유급병가 제도가 아직 없다.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지난 7월 막 첫발을 뗐을 뿐이다. 서울 종로구 등 6개 지역에 3가지 모형을 1년 동안 적용하는 등 시범사업을 3년간 해본 다음 2025년 전면 도입하는 게 목표다. 상병수당 도입은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도 선정됐다. 2020년 코로나19 유행이 닥치고 ‘아플 때 쉴 권리’가 전 사회적 화두가 되면서 나타난 변화다.

OECD 국가 중 유급병가 제도가 없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뿐이다. 미국은 10개 주와 각 사업장에서 개별적으로 병가를 시행 중인데, 코로나19 확산 이후 연방 차원의 유급병가 제도 도입을 추진하다가 유보했다. 김태근 미국 아델파이대학교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미국의 유급병가 제도를 설명하며 “21세기에 들어서 22년이 지났는데 아직 내가 혹은 가족이 아픈데도 일을 나가야 한다는 것은 시대의 비극 혹은 야만”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상병수당 역시 확립 여부가 아직 불투명하다. 상병수당이 도입돼도 휴가를 보장하지 않는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실제 적용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있다. 자영업자까지 포함할 땐 소득을 파악하는 문제가 걸림돌이 된다. 강 연구위원은 “재원을 마련하는 데 있어 소득 파악이 매우 중요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된다”며 “유럽 국가들에선 부정수급 등 도덕적 해이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수 보건사회연구원장은 “중요한 사회보장 제도들이 사회적 위기 속에서 도입되는데, 코로나19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이 무뎌지면서 동력이 얼마나 유지될지가 걱정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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