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간병통합서비스 참 좋은데···중증환자는 이용 못하나요?”

2023.05.01 16:28 입력 2023.05.02 15:32 수정

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서 간호사들이 일하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제공

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서 간호사들이 일하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제공

‘간병인 하루 13만원씩 주급 91만원. 주간 식대(약 11만원)는 별도.’

지난해 11월 중순 무렵, A씨의 시어머니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아 비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A씨 가족은 입원 초반 3주간 개인 간병인을 고용했다. 간병비는 약 300만원. A씨는 지난달 21일 기자와 통화에서 “어머님이 입원하신 때가 아버님이 농사로 바쁘실 때고 아버님 식사도 혼자 챙겨야 하는 상황이라 간병인을 짧게 고용했고 지금은 아버님과 시동생이 여건이 돼서 번갈아 간병을 하고 있다”면서 “계속 간병인을 써야 했다면 부담이 컸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픈 가족을 돌볼 개인 간병인을 고용하거나 혹은 직접 간병하느라 일을 포기하면서 겪는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간병이 장기화하면서 ‘간병 파산’에 이르는 가구도 있다. 가족 간 불화가 빈번해지고 간병 담당자의 건강도 악화한다.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에서 암 투병 중인 50대 아내를 오래 돌봐온 60대 남성이 아내를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건이 발생했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이른바 ‘간병 살인’ 사례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도입 8년… “중증환자도 이용했으면”

정부는 2016년 4월 병원 내에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지원인력이 한 팀을 꾸려 24시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이하 ‘통합병동’)를 본격 도입했다. 입원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병원 내 감염병을 예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우선 건강보험으로 재정을 지원해 개인의 간병비 부담을 대폭 줄였다. 최근 개인 간병인의 하루 인건비는 10만~15만원 선이다. 통합병동을 이용하면 부담이 하루 1만5000~2만원 수준으로 떨어진다.

간호사 인력배치 기준도 일반병동보다 낫다. 보건복지부 ‘2023년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사업지침’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통합병동은 간호사 1명당 환자 수가 5~7명이다. 종합병원은 7~12명, 병원은 10~16명이다. 통계청의 ‘한국의 사회동향 2016’ 보고서를 보면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 포함) 일반병동에서 간호사 1명이 평균 16.3명을 돌본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참 좋은데···중증환자는 이용 못하나요?”

병원 입장에서도 통합병동을 운영하면 일반병동보다 2배에 가까운 수가를 받기 때문에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참여 병원과 이용 환자 모두 만족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다만 ‘공급’이 여전히 부족하다. 통합병동은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요양·군·정신병원 제외)이 운영할 수 있는데 지난해 말 기준 대상 병상의 28% 수준인 656개 기관(7만363병상)만이 참여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 서울 지역 의료기관은 통합병동 운영에 제한이 있다. 상급종합병원과 서울 소재 의료기관은 최대 4개 병동까지만 참여할 수 있다. 환자가 쏠리는 것을 막아야 하고, 지역 중소병원의 사정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 중소병원은 의사와 마찬가지로 간호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워 통합병동 참여율이 저조한 편이다.

병상이 부족하다보니 중증 환자는 더 이용하기가 어렵다. 병원 입장에서는 중증 환자보다 상대적으로 돌보기 쉬운 경증 환자를 많이 받는 것이 수익에 도움이 된다.

수도권에 살고 있는 40대 여성 B씨는 지난해 1월 한 종합병원에서 무릎수술을 받은 후 2주간 통합병동을 이용했다. B씨는 “제가 움직이기 어려웠는데 간호사, 간호조무사 선생님들이 식사와 이동, 씻는 것까지 도와주시니까 만족도가 높았다”며 “그런데 3~4년 전 저희 어머니·아버지가 암 수술 이후 상급종합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정작 통합병동을 이용할 수 없어서 가족들이 간병을 해야 했다”고 했다. B씨는 “중증이기 때문에 좀 더 충분한 케어가 필요하고 건강상태도 세밀하게 체크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됐다”며 “통합병동을 전체 병동으로 늘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통합병동은 환자가 원한다고 모두 이용할 수 없다. 환자 동의를 얻어 주치의가 판단해 입원을 결정한다. 중증도와 질병군에 제한을 두지는 않는데 주로 경증환자가 통합병동에 입원한다. A씨는 최근에서야 시어머니가 입원한 대학병원에도 통합병동이 있다는 걸 알고, 이용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A씨는 “병원에서는 일단 통합병동은 약간의 도움이 필요한 경증환자만 대상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수도권 공공병원 통합병동에서 2016년부터 일한 20년차 간호사 C씨는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간호사 1명이 환자 10명을 돌보는데 ‘체위 변경을 2시간마다 해야 하고 석션(가래 흡입)을 계속 해줘야 하는 환자’가 있으면 다른 환자를 돌보기 어려워진다”며 중증환자를 받을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 원장은 “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실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며 “경증환자가 통합병동에 가면 중증환자는 일반병동에 배치돼 일반병동 간호사들은 더 힘들어지는 문제도 벌어진다”고 했다. 이 원장은 “병원 내 일부병동이 아니라, 전체 병동이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면 이런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간호사들 “취지는 매우 공감하는데… 간호인력 늘려야”

간호사들도 통합병동이 간호의 질을 높이고 간병비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에 병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는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면서 인력을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C씨는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여러 명의 환자가 동시에 ‘벨’을 누르면 간호사도 일을 나눠 할 수밖에 없다”며 “간호조무사도 1명당 30명을 돌본다”고 말했다. 이동이나 식사만 돕는 ‘지원인력’을 둘 수도 있는데 복지부 지침상 통합병동의 지원인력 기준은 ‘1명 이상’이다

C씨는 “제가 가족 간병을 해본 적이 있어서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통합병동이 꼭 필요하지만 간호사 입장에서는 제도적으로 인력배치가 실무와 맞지 않게 돼 있어서 통합병동이 맞나, 이런 양가감정이 든다”고 했다. 그는 “병원은 복지부 지침을 따르니까, 지침에서 인력배치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고 했다.

2017년부터 수도권 대학병원의 통합병동에서 4년간 일했던 7년차 간호사 D씨도 “처음에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돌볼 때 환자들 약 주고, 가래뽑고 이런 저런 업무를 하고 약간의 시간이 남으면 식사를 힘들어하는 환자분도 한 번 더 돌봐드렸다”면서 “대학생 때 배운 ‘전인간호’(정서적 지지)가 가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나중에는 돌볼 환자가 8~10명까지 늘었고 그러다보니까 집에 가면서 환자분께 잘 해드리지 못한 것들이 생각나 죄송한 마음도 들고 했다”고 말했다.

지역 대학병원 통합병동에서 8년째 일하는 9년차 간호사 E씨도 “저희 병원은 응급병동과 같이 운영되는데, 간호사 1명이 환자 15명을 보고 간호조무사 1명이 24~30명을 보며 지원인력은 아예 없다.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며 “병원 전체를 기준으로 병동에 인력배치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부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방안은 어떻게

문재인 정부는 2021년 9월 보건의료노조와 노·정 합의를 통해 300병상 이상 급성기 병원을 중심으로 2026년까지 통합병동을 전면 확대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시절 “요양·간병 걱정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고, 국정과제에 ‘요양·간병지원 체계 내실화’를 담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간병의 사회적 책임 확대를 위해 통합병동을 (요양병원을 포함해) 보편적 의료서비스로 전면 확대하는 정책을 수립해 추진하라”고 복지부 장관에 권고했다. 사회적 기대와 정부의 의지도 있으나, 통합병동 확대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관건은 간호인력과 재정 투입, 지역·중소병원 격차 해소 등이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는 “현재 병원들이 통합병동 간호인력을 일반병동에 배치하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통합병동은 인력배치 기준이 (일반병동보다) 나쁘지 않고 명문화돼 있기 때문에 병원의 인력배치 현황 모니터링을 강화하면 실제 노동환경이 나아져 간호사들의 이직률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병상 확대에 관해서는 “상급종합병원 및 서울 소재 병원의 ‘4개 병동’ 제한을 완화해야 할 때”라며 “현재 600여개 참여 의료기관부터 병동 단위가 아니라 전체 병동에서 서비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지역 중소병원들은 간호인력 구인난에 통합병동 확대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요양병원의 간병비 급여화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건강보험공단은 지난 2월 ‘요양병원 간병서비스 제도화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복지부는 지난달 25일 발표한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에서 통합병동 인력배치 기준을 중증 수술환자, 치매·섬망 환자 입원실(상급종합병원 등)에선 간호사 1명당 환자 4명까지, 간호조무사는 1명당 환자 8명 수준까지 줄이겠다고 했다. 지역 중소병원이 간호인력을 채용하면 지역가산을 적용해 재정지원을 하겠다고 했다. 복지부는 이런 내용을 포함해 상반기에 통합병동 관련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한다.

보건의료노조는 “제도 개선방안에는 통합병동 전면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방안, 실행시점, 예산안 등 전향적인 대책이 담겨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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