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공보물 돌리다 집배원이 또 쓰러졌다

2014.06.01 21:53

배달하기 안 좋은 지역, 점심 못 먹고 하루 16시간 노동

선거철 특별소통기간 불구 동료 도움 못 받아… 뇌출혈 참변

연간 노동시간 타 업종보다 30% 많지만 정부는 ‘나몰라라’

지난달 21일 오전 부산 동구 범일동의 한 아파트 정문 앞. 선거공보물을 배달하던 23년차 집배원 ㄱ씨(46)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ㄱ씨는 아파트 관리소 직원의 신고로 병원에 이송돼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하지만 현재까지 지인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ㄱ씨가 일하던 범일동은 집배원들 사이에서는 ‘배달하기 안 좋은 구역’으로 유명하다. 1년 전부터 이 구역을 맡은 ㄱ씨는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며 인력 충원과 구역 변경을 요청했다. 하지만 동료 집배원들이 ㄱ씨의 업무를 분담해주는 ‘겸배’를 하라는 지시만 돌아왔다. ㄱ씨가 더욱 힘들어진 것은 ‘6·4 지방선거’를 앞둔 ‘특별소통기간’이 시작되면서부터다. 대부분의 지방우정청은 지난달 중순부터 6월4일까지를 특별소통기간으로 정했다. 선거공보물을 제 날짜에 정확하게 배달하기 위해서다. 특별소통기간은 설, 추석 등 명절 선물이 대규모로 오갈 때와 선거기간 등을 앞두고 지정된다. ‘집배원 중대재해 해결을 위한 연대모임’ 관계자는 “이미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던 ㄱ씨가 특별소통기간이 되면서 다른 동료들이 배달을 도와주지 못하자 더욱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고, 결국 쓰러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소통기간이 되면 집배원들 사이에는 ‘누구 하나 죽거나 다치겠다’는 말이 돈다. 인력 충원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업무량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집배원 연대모임이 2011~2013년 집배원들의 재해사고 경위서를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특별소통기간에 총 110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2012년에는 전북에서 19대 국회의원 선거 특별소통기간에 우편물 폭주에 의한 교통사고로 집배원이 사망했고, 2013년 설 특별소통기간에도 전남 서광주우체국의 한 집배원이 택시에 치여 사망했다.

집배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집배원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지난해 말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발표한 ‘집배원 노동자의 노동재해·직업병 실태 및 건강권 확보방안’을 보면, 집배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3379시간으로 다른 노동자 평균 노동시간보다 1100~1200시간 이상 많다. 비수기에도 하루 노동시간이 10.8시간이며, 특별소통기간에는 15.3시간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의 이진우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하루 평균 15~16시간에 달하는 집배원들의 과도한 근무는 운전을 많이 하는 집배원들의 교통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조사 결과 일반 노동자들보다 집배원 노동자의 뇌심혈관계 질환 유병률이 19배 높았고, 이 상황에서도 정부가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비정상적”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들은 전문인력 충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서울의 한 우체국에서 20년째 근무해온 집배원 ㄴ씨는 “선거공보물은 집집마다 정확히 넣어줘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신주소에 적응도 안된 상황에서 아르바이트생이나 비배달인력을 지원해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조영관 변호사는 “집배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인력 증대는 전반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그에 앞서 선거 특별소통기간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선거기간은 물량도 정확하게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력을 미리 증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선거는 국민 주권 행사를 위해 필요한 민주주의의 핵심 행사인데, 이를 위해 필요한 지원을 정부가 예산을 핑계로 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