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특별법 10년

“봄을 판다는 매춘… 난 삶의 봄과 계절의 봄, 둘 다 잃었다”

2014.09.23 22:03 입력 2014.09.24 09:40 수정
박용하 기자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성매매 얽힌 글 공모

“매춘을 풀어 말하면 봄을 파는 것이라는데, 난 그렇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해에 계절의 봄과 내 삶의 봄을 둘 다 잃어버렸다.”

콩이(가명)라는 이름의 성매매 여성이 ‘무제’로 제목을 단 수기 중 한 구절이다. ‘무제’는 부산의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이 최근 공모를 끝낸 성매매 소재 글짓기대회의 1차 심사를 통과한 작품 중 하나다. 성매매 경험 여성과 반성매매 활동가, 시민들이 써 보낸 글엔 성매매에 얽힌 여러 아픈 기억과 사연들이 담겨 있다.

경숙씨(가명)는 수필 ‘엄마에게’에서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내 기억 속의 아버지와 오빠는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가족들에게 화풀이를 했다”며 “폭력을 피하려 집을 나가 서울에서 떠돌게 됐고,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술집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과 술집 모두 경숙씨에겐 지옥이었다.

“불빛이 많은데 집을 모르겠다/ 불빛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게 내 집인지도 모르겠다/ 불빛이 되어줄 수 없어 아프고, 불빛에 가둘 수도 없어 아프고, 불빛을 가질 수도 없어 아프다.” 앤지씨(가명)는 시 ‘17’에서 집창촌 유리방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내 발은 발이 아닌가보다. 아니면 이 발이 내 것이 아니었나”란 시구에서는 자신의 몸을 타인에게 맡겨야 하는 고뇌를 드러낸다.

성매매 여성들을 보는 일반인들의 인식이 담긴 글도 있다. 정순옥씨는 수필 ‘미자 언니야, 보고 싶다’에서 어린 시절 늘 친절했던 동네 언니 미자씨와의 추억을 소회했다. 미자씨는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소위 ‘양공주’였다. 정씨 어머니는 두 사람이 어울리는 것을 보고는 만나지 못하게 했다. 정씨는 “언니가 이사가던 날, 엄마를 붙잡고 서 있는 나를 바라보던 언니의 빨개진 눈시울이 지금도 기억난다”고 적었다.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은 26일 부산 중구 광복로에서 수상작 거리전시회와 함께 시상식을 열 예정이다. 살림은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흘렀지만 성산업은 여전히 뿌리박혀 있고, 성매매 여성들은 낙인을 두려워하고 있다”며 “시민들이 성매매 현상과 피해자들에 대해 더 이해하고 인식을 바꿨으면 하는 바람에서 공모전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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