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기자, 한국에서 애 키우기 “엄마아빠가 못 돌봐 미안하고 나쁜 선생님 만날까봐 두렵다”

2015.01.16 22:14 입력 2015.01.16 22:36 수정

“출근 때마다 울상 짓는 아이… 국공립 어린이집 ‘언감생심’

폭행사건도 금방 잊혀지겠지 키워준다고 더 낳으라는 정부

교사 처우 등 보육의 질 무시 대책이라고 내놓은 게 CCTV”

아침 7시20분. 25개월 된 아이는 출근 준비를 하는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고 일어난다. 이제 단어를 엮어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한 아이는 거실로 나온다.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엄마 뭐해?”라고 연신 묻는다. “엄마 회사 가려고 준비해”라고 대답하면 바로 울상이 된다. 아이를 달래기 위해 매일 아침 말한다. “엄마는 회사 가서 즐겁게 일하고 아들은 어린이집 가서 재밌게 놀다가 밤에 만나자.” 잠시 알아듣는 듯하다. 하지만 오전 8시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집에 오시면 다시 표정이 어두워진다. 현관문을 나설 시간, 힘없이 손을 흔드는 아이를 보며 출근하는 마음은 늘 무겁다.

엄마 기자, 한국에서 애 키우기 “엄마아빠가 못 돌봐 미안하고 나쁜 선생님 만날까봐 두렵다”

인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반찬을 남겼다는 이유로 아이를 때리는 영상을 봤다.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니 가슴이 먹먹했다. 보육교사에게 맞고 겁에 질렸을 그 아이를 안고 부모는 얼마나 가슴을 쳤을까.

지난해 2월 복직했을 때 아이는 15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겨우 10㎏, 말도 거의 못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어린이집에 보낸 첫날, 문을 닫고 나와 많이 울었다. 아직 어린데 어린이집에 맡겨 미안했고, 두렵기도 했다.

잊을 만하면 어린이집 폭행·사망 사건이 터진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와 정치권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때만 ‘반짝’이다. 여당은 ‘아동학대근절특위’를 구성하고, 야당은 ‘영유아 학대 근절을 위한 대책TF’ 회의를 연다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16일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 보육교사 자격취득기준 강화, 아동학대 발생 시 어린이집 즉시 폐쇄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사후약방문식의 너무도 익숙한 대책. 기시감마저 느껴진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맞벌이가 아니면 살기 힘든 시대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려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치권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엄마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를 가보면 ‘정보가 별로 없다’며 어린이집에 대한 평가를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를 숱하게 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천 어린이집의 평가인증 점수가 95.36점이었다고 한다. 도대체 이 점수는 어떤 항목들을 합산해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다. 부모가 직접 어린이집을 평가할 수 없는 구조도 이해하기 어렵다.

임신하자마자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어 대기를 걸어놓았지만 동네에 있는 구립 어린이집 대기 순위는 아직도 400번대다. 25개월인데 400번대라면 보낼 수 없다는 얘기다. 맞벌이 부부는 1순위지만 다득점자에게 밀려 추첨 기회도 얻지 못하는 게 다반사다. 수요보다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부모는 보육교사 자질, 어린이집 시설 등 보육 환경에 대해 능동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받아주겠다면 어디든 보내야 하는 상황인데, 누가 누굴 평가한단 말인가.

<b>엄마도 아픕니다</b> 16일 인천 한 어린이집 앞에서 한 학부모가 ‘아동학대 반대’ 서명을 받다가 “내 손녀도 다른 어린이집에서 교사한테 폭행당한 적이 있다”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아이들에게 왜 이렇게 많은 폭력이 가해지느냐”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엄마도 아픕니다 16일 인천 한 어린이집 앞에서 한 학부모가 ‘아동학대 반대’ 서명을 받다가 “내 손녀도 다른 어린이집에서 교사한테 폭행당한 적이 있다”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아이들에게 왜 이렇게 많은 폭력이 가해지느냐”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준헌 기자

보육교사들의 처우도 문제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는 보육교사가 하루 평균 12시간을 일하고 월 140만원가량의 임금을 받는다고 밝혔다. 저임금·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보육교사가 아이들을 얼마나 정성껏 돌볼 수 있을까. 처음 어린이집에 등록할 때 만 1~2세반이라 교사 1명당 아이 5명을 본다고 해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만 2~3세반은 교사 1명당 아이 7명이다. 만 4세 이상이면 1명당 20명으로 늘어난다.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는 사촌동생은 “절대 내 아이는 어린이집에 맡기지 않겠다”고 했다. 교사 1명당 아이 숫자를 줄이고 보육교사들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전국 어린이집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고 한다. 보육교사 처우를 개선하고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등 근본적으로 보육의 질을 높여야 하는데도 또다시 ‘얄팍한’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무상보육은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정치권은 “국가가 키워줄 테니 걱정 말고 낳으라”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둘은 낳아야 한다’고 캠페인까지 벌였다.

정말 묻고 싶다. 아이 키우기 힘든 사회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처사인지 알기나 하느냐고. 지방에 사는 시어머님이 뉴스를 보고 “아이는 괜찮냐”고 물으셨다. 드릴 수 있는 말이 한마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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