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업무보고 한번도 못해, 온갖 모욕…식물위원장 왜하나”
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61·서울대 법대 교수)은 사퇴를 발표한 지난달 30일 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정부가 인권의 가치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국제사회에서 인권 선진국으로서 한국의 위신이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직 임기가 4개월 남았는데.
“온갖 모욕을 받으면서까지 식물위원장 4개월 해서 뭐하나.”
-인권위 내에서는 사퇴가 예고된 것처럼 알려져 있는데.
“3월에 인권위가 강제 축소됐을 때 사표를 내려고 했다. 사퇴 성명서까지 영어로 써 놓고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서 준비를 마쳤다. 사무총장이 조직 안정을 위해 물러나면 안 된다고 극구 말려서 물러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사퇴하는 것이 옳았던 것 같다.”
-지금을 사퇴 시기로 택한 이유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이기 때문이다. 내가 물러나고 차기 위원장이 세계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회장국이 되기를 바란다.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납득할 만한 인물을 차기 위원장으로 뽑으면 회장 선출을 도울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돕는 게 어렵지 않겠나.”
-ICC 회장국은 어떤 의미가 있나.
“정말 큰 의미가 있다. 인권 선진국으로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ICC 회장국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업무보고할 때 이런 부분을 전하고 싶었는데 업무보고조차 하지 못했다. 인권은 수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을 이 정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인권위 축소 과정에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 3월31일 인권위 축소 직제 개정령과 관련해서 국무회의에 불려 다니는 바람에 사회를 보기로 했던 국가인권기구 총회에 못 갔다.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인권 선진국으로서 한국의 위신이 많이 떨어졌다. 그런데 국제 회의에 무슨 낯짝으로 갈 수 있겠는가.”
-위원장으로 조직이 축소된 데 대해 힘들었나.
“20% 조직 축소를 하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의 자리가 줄어들면서 아픔을 많이 당하고 그것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장으로서 마음이 메고 아팠다.”
-다시 서울대 교수로 돌아가나.
“교수 정년이 아직 4년 남았다. 인권위 위원장으로 있었을 때의 일들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싶다. 당분간은 집에서 쉬면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애들과 놀아주고, 등산도 다니고 싶다.”